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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2월

슬픔을 넘고 바벨론까지 이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

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

오직 여호와 한 분만이 참되고 유일한 신이요, 그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기준 위에 세워진 민족, 그리고 그런 역사와 신앙 전통을 이어 그 토대 위에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 그런데 어느 날, 그들은 모든 것의 중심이던 성전이 눈앞에서 불타 무너지고, 민족이 우상의 나라 군대 앞에 처참하게 멸망하는 모습을 보고 겪었다.
그것은 꿈에서조차 감히 있을 수 없는 상상 불가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엄연한 현실이었다. 그리고 그 현장에 이번 달 묵상하는 다니엘서 본문에 등장하는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있었다.


궁극적 아픔을 아는 사람들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문자 그대로 ‘뜻을 정한’ 신앙의 동지들이다(단 1:8). 이들이 뜻을 세우는 믿음의 동지로 설 수 있었던 데에는 그들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아픔, 그 아픔을 넘어선 슬픔의 현실이 놓여 있었다.
다니엘서는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과 성전 파괴 및 유린당하는 모습을 기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1:1~2).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한’ 사람들, 즉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를 소개한다(1:3~7). 이들이 목숨을 담보하면서까지 ‘왕의 음식’(1:15)을 거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아마도 ‘예레미야의 눈물’(참조 애 3:48~50)이 자신들의 음식이 됐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세 친구들이 언제부터 뜻을 세운 믿음의 동지였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 그 정체성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멸망의 슬픔을 당한 뒤, 곧 궁극적 아픔을 겪은 후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첫 번째 방법, 기도로
눈물이 강을 이룬(참조 애 2:18) 이 궁극적 슬픔을 건너 온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절망밖에는 할 것이 없는 무너진 조국의 현실, 이에 반해 결코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이교의 힘, 바벨론이라는 현실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어찌해서 이들은 그 분명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또 자신들이 그동안 쌓은 지식과 지혜를 따라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도리어 그 거대한 현실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을까? 
답은 기도다. 이들은 적국의 땅에서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향해 창문을 열고,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다니엘(6:10)과 함께 기도했다. 이 기도의 방법은 ‘진노하고 통분하여 모든 지혜자들을 죽이라’(2:12)는 왕의 명령이 내려지는 일촉즉발의 위기 앞에서도 해법으로 작용했고, 마침내 죽음까지 이기게 했다(2:17~49). 본문은 이처럼 기도를 삶의 방법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을 ‘믿음’이라고 말한다.


두번째 방법, 믿음으로

궁극적 슬픔을 알면서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과거의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 수 있었던 또 하나의 방법은 믿음이다. 참소자들의 덫임을 알고도 하나님 따르기를 멈추지 않았던 이들 신앙의 동지들은 결국 풀무형의 사형수들로 던져졌다(3:19~23). 곁에 있던 사형 집행관들을 집어삼킬 정도로 뜨거운 풀무불이었지만 이들은 옷자락 하나, 머리카락 하나 그을리지 않은 채 살아나온다.
이들을 살린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셨고, 그분을 향한 믿음이 그들 삶의 방법이었다.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3:16)라는 이들의 당찬 고백에서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믿음의 수준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침을 받는다.
마침내 힘의 대제국 바벨론이 포로로 끌고 온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참 믿음 앞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우리 눈에 보이는 힘이 얼마나 허망한지, 여호와를 향한 참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한눈에 보여 준다.
결국 참 믿음이 이겼다. 기도가 답이었다. 기도와 믿음은 과거 흔적만으로는 무가치하다. 이 둘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삶의 방법일 때에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무너지는 예루살렘과 성전을 봤기에 슬픔의 눈물을 그칠 수 없었지만, 기도와 주님을 향한 믿음을 중단할 수 없었다. 다니엘서를 묵상하며 이 같은 영성을 회복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