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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무명한 듯하나 유명한 베다니의 한 여인

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마태복음 26장에서부터 28장까지는 마태복음 전체 구조와 흐름으로 볼 때 마지막 부분일 뿐 아니라,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 절정을 보여 주는 중요한 본문이다. 구조적으로도 그렇지만 내용적으로 예수님의 공생애 목표를 보여 주기도 하고, 결론을 말하기도 한다. 그것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다.


무명의 여인이 반전의 인물로
마태복음 결론부에 해당하는 26장은 유대 사회의 종교지도자들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는 것으로(마 26:3~5) 시작된다. 상황이 어둡고 절망적이다. 하지만 당황스럽기까지 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26장 6절 이하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하는 이름 없는 한 여인이 등장한다.***
여인의 등장은 모든 면에서 큰 대조를 이룬다. 예수님을 향해 너무나도 상반되는 두 부류의 인물이 나란히 등장하기 때문이다. 성경이 이같이 기록된 것은 분명 하나님의 의도다. 여인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예수님의 생애에 있어 결론을 다루는 부분에 현저한 대비를 보여 주는 인물로 등장한 것일까?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식사하시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마 26:7). 이 사건은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보고 분개했다(마 26:8). 그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옥합이 비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 분노할 만했다. 그 돈의 규모는 종교지도자들은 물론 당시 팔레스타인 통치자들도 풀지 못하는 가난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였다. 제자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것을 비싼 값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마 26:9).  
그러나 이 사건은 깜짝 놀랄 상황으로 전개됐다. 예수님께서 율법이 명시한 ‘구제’를 외친 자들이 아니라 무명의 여인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 여자가 내 몸에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하여 함이니라”(마 26:12). 그녀의 행동이 제자들이 분노한 것처럼 ‘허비’(26:8)이기는커녕 오히려 예수님의 죽음을 위한 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지닌 가치를 알았던 여인
예수님의 죽음은 사실 마태복음 첫 장부터 드러났다.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그 구원을 이루기 위해 가셔야 할 길이 십자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자 ‘인자의 죽음’을 분명히 밝히기 시작하셨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살아나야 할 것을… 나타내시니”(마 16:21, 참조 마 17:22~23, 20:17~19).
예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 땅에 태어나시고 사신 이유는 죽기 위한 것이었다. 죄가 없으시기에 우리 죄를 대신할 수 있는 자격으로 대속의 제물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죽음보다 큰 ‘허비’는 없었고, 예수님의 죽음보다 고귀하고 값진 것도 없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생명이며, 그래서 십자가는 복음이다. 무명의 여인은 바로 이와 같은 위대한 진실을 봤다. 유대의 지도자뿐 아니라 제자들조차 아직 보지 못했던 것을 말이다.


복음에 눈을 뜬 유명한 여인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 26:13).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행한 허비가 복음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 무엇이 복음인가? 복음은 예수님이시요, 예수님의 죽음이다. 그녀는 복음인 예수님의 죽음을 준비한 것이었다(마 26:12).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는’ 지도자들(마 26:3~4)과 ‘예수를 넘겨주려는’ 제자(마 26:14~15) 사이에서 그녀는 대속 제물로 죽으실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다.
이 무명의 여인은 복음에 눈뜬 인물이었다. 복음에 눈을 뜨자 그녀는 무명한 자 같으나 실상은 유명한 베다니의 한 여인이 됐다(참조 고전 6:9).
2016년의 마지막 달, 마태복음 묵상을 마무리하면서 복음이신 예수님의 죽음에 새롭게 눈뜨는 은혜를 누리자. 혼자 말씀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무명한 자 같을지라도 복음 때문에 영원히 유명한 자가 되는 복이 있기를 간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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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6절 이하와 마가복음 14장 3절 이하 본문에는 여인의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 반면, 요한복음 12장 3절은 그녀의 이름을 마리아로 기록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이 향유를 부은 그녀가 마리아임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태는 아마도 그녀의 이름보다 믿음이 기억되기를 바랐기에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