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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5월

레위인, 어린양의 대속과 이스라엘을 대표한 소명자

과월호 보기 박삼열 목사(사랑의교회)

민수기를 묵상할 때 레위인을 생각하지 않고는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또한 레위인의 역할과 의미를 따져 보기에 민수기 만한 성경도 없다. 민수기에서 만나는 레위인 혹은 레위 지파의 기원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셋째로 태어난 ‘연합’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레위에서 비롯된다(창 29:34). 레위인에 대해 철저하게 살펴보려면 당연히 창세기부터 봐야 하지만, 이 글에서는 민수기 본문에 초점을 두고 탐구하는 동시에 성경 전체 맥락을 벗어나지 않도록 했다.



레위인의 인물됨은 곧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모세와 함께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일차 목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내산에 도착해 그곳에서 9개월 정도의 시간을 보낸다(참조 출 19:1; 민 10:11~12). 이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계명과 율법을 받는다.
시내산에서의 사건들이 매우 놀랍고 소중했지만 그들은 그곳에 머물기 위해 출애굽한 것이 아니었다. 시내산은 반드시 당도해야 할 곳이었지만,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한 중간 지점일 뿐이었다(참조 히 4:1, 11:14).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진정한 목적지인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민수기는 매우 중요하다.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 민수기 앞부분에서 돋보이는 인물은 바로 레위인들이다. 그들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오늘날에는 우리 믿는 자들이 레위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민수기를 통해 레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작업은 민수기 이해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소유다
민수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레위인의 정체성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대신했다. 하나님께서 레위인에 대해 분명하게 반복해 말씀하신 것 중 하나가 “레위인은 내 것”이다. “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레위인을 택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 태를 열어 태어난 모든 자를 대신하게 하였은즉 레위인은 내 것이라”(민 3:12, 참조 민 3:41, 45). 즉, 레위인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씀이다.
레위인이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한다는 말 속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이 전제돼 있다.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참조 렘 31:9). 레위인은 생후 1개월 이상의 모든 남자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했다. “레위 자손을 그들의 조상의 가문과 종족을 따라 계수하되 일 개월 이상 된 남자를 다 계수하라”(민 3:15, 참조 민 3:40).



어린양의 대속적 죽음과 구원의 상징
둘째, 레위인의 정체성을 알 수 있는 사항은 출애굽 사건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을 위해서 당시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어야 했고, 이때 이스라엘 백성은 어린양의 피로 죽음을 면했을 뿐 아니라 애굽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참조 출 12:21~36).
민수기는 이 사건에 근거해 레위인의 정체성을 설명했다. “…내가 애굽 땅에서 모든 처음 태어난 자를 치던 날에 그들을 내게 구별하였음이라 이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 모든 처음 태어난 자 대신 레위인을 취하였느니라”(민 8:17~18, 참조 민 3:12~13).
즉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구원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장자의 죽음 재앙 가운데서 장자를 대신한 어린양의 피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살리신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장자들을 대신해 레위인을 자신의 것으로 삼으셨고, 레위인은 이스라엘이 어린양의 대속적 죽음으로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인물들로 존재하게 됐다.
그러므로 레위인은 철저히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는 데에 의미가 있다. 백성을 대신하기 때문에 대표성도 갖는다. 민수기에서 레위인들은 크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과, 또 그들이 어린양의 죽음으로 애굽에서 해방됐다는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역할로 상징된다. 그런 그들의 역할은 바로 성막의 직무다.
말하자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것이다. 그들이 모두 성막의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없으니 레위인이 대표로 대신한 것이다. 따라서 레위인은 스스로 의미를 지닌 인물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해 쓰임받은 지파라 자만이나 교만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민수기에서 만나는 레위인의 삶을 통해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소명도 새롭게 만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