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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7월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렘 1, 29, 32장)

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담임목사, 《역사지리로 보는 성경》 저자)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땅, 아나돗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4km 정도 떨어진 곳에 ‘아나타’라는 아랍인 마을이 있는데, 이곳이 아나돗이다. 마을 입구에는 ‘이스라엘 시민은 출입을 금한다’라는 문구가 크게 쓰여 있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내 얼굴이 신분증이 될 것이라고 믿고, 마을로 들어섰다.
이슬람교 사원과 주변을 둘러보고 있을 때, 외국인을 구경하러 왔는지 많은 아이들이 몰려왔다. 반갑게 인사하고 운전석에 앉는 순간, ‘와장창’하고 자동차 뒷 유리가 깨졌다. 한 청년이 팔레스타인지역의 초록 번호판이 아닌, 이스라엘의 노랑 번호판을 달고 들어온 내게 반감을 품어 돌을 던진 것이다. 어린 딸이 함께 타고 있어서 위험한 상황이었다. 밖으로 나가 얼굴을 보이고, 트렁크를 열어 비상시 사용하려 했던 아랍인 두건을 들자, 아랍 청년은 아쉬운 듯, 왜 그것을 보여 주지 않았느냐는 표정이다. 그렇게 호되게 당한 후, 아나돗을 나왔다. 예루살렘에서 사역했던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의 마음이 느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지정학적 중요 정거장, 아나돗
이스라엘산지의 주요 도시인 헤브론, 베들레헴, 예루살렘, 벧엘, 세겜 등을 연결하는 길은 족장들이 많이 다녔다고 해서 ‘족장 길’이라 부른다. 아나돗은 예루살렘 북쪽으로 향하는 족장 길 동쪽 우회 도로의 중요 정거장이다. 예루살렘에서 아나돗을 거쳐 벧엘로 올라가는 길은, 여리고로 내려가는 여러 길과 연결돼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다.
이사야 선지자는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으로 진군할 때 북쪽 믹마스와 아나돗을 지났음을 전한다(사 10:30). 예수님께서는 여리고에서 수가성으로 향하실 때 이 길을 이용하셨다(요 4:3~4). 또한 베다니에서 나사로를 살리신 후, 에브라임으로 피신하실 때도(요 11:53~54) 아나돗을 지나셨다.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
아나돗은 원래 베냐민 지파의 영토였으나 이후 아론 자손에게 주어졌다(수 21:18). 또한 다윗의 피난 생활을 도왔던 아비아달 제사장이 솔로몬에 의해 유배당한 도시였다(왕상 2:26). 사무엘상 4장은 이스라엘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 엘리 제사장 집안이 남쪽으로 이주해 놉에 성막을 두고 살았지만, 이후 사울왕의 박해로 85명의 제사장이 죽고 남은 후손은 아나돗에 머물며 재야의 제사장으로 살았다고 전해진다(삼상 22:18). 그 후손 중 한 사람이 예레미야다(렘 1:1).
예레미야는 고향 아나돗 사람들에게 예언을 금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렘 11:21). 느헤미야 시절에는 이곳에 베냐민 지파 사람 128명이 살았고(느 11:32), 이후에도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꾸준히 사람들이 거주했다. 현대에는 유적을 채 발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유적이 묻혀 있다.


예수님과 예레미야의 눈물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몰락한 제사장 가문의 선지자였다. 그는 예루살렘이 멸망당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벨론에 항복해 죗값을 치르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돌이키지 않았고, 오히려 그를 죽이려 했다.
예루살렘에서 남쪽 8km 지점에서 태어난 예수님도 예루살렘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그들이 멸망의 길을 가자, 예루살렘을 바라보시고 우셨다(눅 19:41).
아나돗을 바라볼 때, 예수님과 예레미야의 기도와 눈물이 전해진다. 모든 영광을 버리고 자신의 백성에게 나아가, 눈물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랐던 예수님과 예레미야의 기도가, 지금 우리가 드려야 할 기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