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담임목사, 《역사지리로 보는 성경》 저자)
여호수아가 받은 의외의 기업
예루살렘에서 족장의 도로(60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8km를 향한 후, 서쪽 벧호론 길(443번 도로)을 따라 20km 내려가, 다시 모디인 일리트 방향으로 북진해 20km를 가면 ‘딤낫 세라’라는 마을에 도착한다.
‘딤낫 헤레스’로도 불리는 딤낫 세라는 ‘태양이 머무는 곳’이라는 의미로 이름답게 해가 지는 지중해를 바라볼 수 있다. 이곳은 여호수아가 각 지파의 땅 분배를 마친 후에 자신의 영지로 요구한 지역이다(수 19:49~50).
여호수아 14장 6~9절에는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와 갈렙에게 그들이 밟는 땅을 영원히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여호수아는 먼저 갈렙의 요구대로 도피성이자 아브라함-이삭-야곱의 무덤이 있는 선산을 그에게 기업으로 줬다. 그다음, 자신의 차례가 돼 어디든지 얻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여호수아는 어디를 택했을까? 예상으로는 도피성이 있는 세겜이나 성막이 있는 실로여야 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딤낫 세라를 택했다. 사실 딤낫 세라는 깡촌에 농경지라고는 깊은 골짜기의 얼마 안 되는 밭이 전부인 곳이었다. 그는 작은 산골 마을을 자신의 영지로 삼아, 이곳에서 살다 죽었다(수 24:29~30).
편한 땅보다 광야 개척을 선택하다
그는 왜 딤낫 세라를 택하고, 그곳에서 살았을까? 이는 자신이 친족들에게 말한 것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함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요단강을 건넌 후 이스라엘의 큰 두 지도자였고, 그들이 속한 에브라임과 유다 지파는 북쪽과 남쪽을 책임지는 대표 지파였다. 갈렙은 남쪽 넓은 지역과 중심 도시인 헤브론을 차지했다.
그런데 여호수아가 속한 에브라임 지파가 분배받은 땅은 산지여서 험하고 마을이 적었다. 그러다 보니 에브라임과 므낫세, 즉 요셉 지파는 여호수아에게 자신들이 받은 땅이 유다에 비해 열악하고 작다며 항의했다(수 17:14). 그때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에브라임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수 17:15)고 말한다.
이후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편한 곳을 택하지 않고 삼림에 올라가 개척했다. 그의 실천력이 딤낫 세라 땅 곳곳에 남겨져 있다고 생각하니, 주변의 돌 하나하나가 새롭게 느껴진다. 깡촌은 그의 실천적인 삶이 어려 있는 성지가 된다.
딤낫 세라의 서쪽 10km에는 여로보암왕의 고향 스레다가 위치하고, 9km 지점에는 아리마대 요셉의 고향 아리마대가 위치한다. 모두 요셉 지파였으리라 추정되며, 여호수아의 후손으로 큰 자취를 남긴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광야, 무에서 유를 창조한 믿음의 후예
이스라엘 초대 수상 벤구리온은 독립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전쟁에서 남쪽 광야를 차지했는데, 그 후 정치를 하며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고 광야를 개척하자고 외쳤다. 그리고 그는 수상직에서 물러난 뒤 평생 광야를 개간하다가 그곳에 묻혔다.
엔 아브닷이라는 국립 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그의 묘지는 그곳에 묻힌 어떤 정치인보다 많은 사람이 찾아와서 그를 기린다. 그는 평생 “유대 청년들아, 아무것도 없는 이 광야를 개척하자. 무에서 유를 창조하자”라고 외쳤고 그대로 살았다. 벤구리온이야말로 여호수아의 후예이다. 그의 마음을 품고 많은 젊은이들이 광야를 개척했다. 이처럼 현대 기독교가 힘을 잃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선포된 대로, 믿은 대로, 말한 대로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