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원희 목사(한국성지미디어 원장)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단 6:1)
성경에는 고대 페르시아(바사) 고레스 왕에서부터 다리오, 아하수에로, 아닥사스다 왕까지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는데, 바로 이 왕들이 통치했던 흔적들이 페르세폴리스에 있다.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 왕조의 두 번째 수도인 페르세폴리스는 이란 쉬라즈 북동쪽으로 50여 km 떨어진 마르브다슈트(Marvdasht) 평원에 있는, 오늘날 이란에서 가장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유적지다. 페르세폴리스라는 명칭은 서양인들이 붙인 이름으로 ‘페르시아의 도시’(The City of Persian)라는 뜻이다.
고대 바사 제국에는 세 곳에 왕궁이 있었다. 날씨가 따뜻한 아와즈(Ahwaz)에 있는 겨울 궁전 수산, 서늘한 날씨의 여름 궁전 하마단(스 6:2의 악메다 궁), 그리고 봄 궁전 페르세폴리스가 있다. 페르세폴리스는 평원보다 약간 높은 언덕인 1770m 고지에 약 12만 8천 평방미터(460X280m) 규모로 주로 신년 행사용으로 사용됐다. 그래서 해마다 신년이 되면 이곳에서 유명한 노루즈(Noruz) 행사가 열렸으며, 이때 전 세계의 피정복 국가 사절단들이 선물을 가지고 와서 바사 왕에게 바쳤다.
지금도 이곳의 왕의 보좌가 있는 아파다나(Apadana)로 오르는 계단 옆으로는 각국 사절단이 자기 나라의 복장을 입고 특산물을 가져오는 부조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 옆에 안내판에는 사절단이 누구이며, 어디서 왔으며, 무슨 선물을 가져왔는지까지 새겨 놓았다. 아파다나 계단을 올라가면 대왕을 알현하는 궁전이 있다. 이 방은 높이 19m되는 돌기둥들 36개 위에 서까래를 놓고 지붕을 얹어 만들었는데, 알렉산더에 의해 파괴된 이후 현재 13개의 기둥만이 남아 있다.
수많은 페르시아(바사)의 속국 사신들이 각기 공물을 들고 찾아오는 부조를 보며 다시 한 번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생각해 봤다. 성경은 이스라엘의 징계를 위해 앗수르를 사용하시고, 앗수르의 징계를 위해 바벨론을, 바벨론의 징계를 위해 페르시아를 사용하신 하나님을 말하고 있다. 이제 폐허로 남은 다리오 왕의 궁전을 바라보며, 마지막 남은 자를 통해 구원을 완성하는 주님의 역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 우리 각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자.
“바사 왕 고레스 제삼 년에 한 일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나타났는데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환상을 깨달으니라”(단 10:1)
수사(수산)는 오늘날 이란 남쪽 울라이(Ulai) 강 상류 바벨론 동쪽 320㎞ 지점에 위치한 옛 엘람의 수도로서, 현재 지명은 슈스(Shush)이다. B.C. 4000년경부터 엘람(Elan) 민족이 거주해 신석기 문화를 이룩한 이곳은 로트터스가 발견한 아닥사스다 2세(B.C. 405~358)의 비문을 통해 그 위치가 확인됐다. 지리적으로 메소포타미아에 연이어 있어 문화가 크게 발달해 설형 문자와 12진법이 채용됐다. 정치적으로 메소포타미아와 깊은 관련을 맺으며 여러 왕조가 변천했고, 군사적으로는 일진일퇴의 역사를 되풀이했다.
다니엘 선지자의 무덤은 사두르(Shaur) 강둑의 동쪽에 위치해 있다. 바로 그 동쪽에 수사(Susa)의 큰 둔덕(mound)이 솟아있다. 다니엘이 두 개의 뿔을 가진 숫양에 대한 꿈을 꾸었던 곳이 바로 수산 궁이었다. 이슬람 자료에 의하면, 아랍 무슬림들이 A.D. 7세기에 그 도시를 점령했을 때, 수산 성에서 선지자의 유물이 들어있는 관을 발견했다. 이것을 발견한 것을 알고 나서, 칼리프 오마르(Omar)는 사두르(Shaur) 강이 일시적으로 강의 흐름이 바뀌었고, 관이 강 속에 매장됐다고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는 없다. 더욱이 선지자의 유물들이(만약 그것들이 정말 선지자 다니엘의 것이라면) 현재의 묘로 옮겨졌을 때에 관한 어떤 기록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수사의 거민들과 그 주변의 지역들은 그 유물들의 진정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그것이 가뭄 때에 비를 내리는 힘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놀랄만한 치유력을 갖고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이곳 관리인은 내가 멀리 한국에서 왔다며, 지하에 있는 다니엘 가묘도 보게 해 줘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오늘날 수스(성경의 수산)에 있는 이 다니엘 묘가 비록 가묘이기는 하지만 다니엘의 석관 앞에서 여러 명의 왕들을 겪으면서도 변함없는 신앙을 가졌던 그의 절개 있는 신앙을 되새겨 본다. 하나님은 오늘도 변함없는 우리의 신앙을 기뻐하신다.
페르세폴리스에 있는 다리오 왕궁 터
수사의 다니엘 가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