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담임 목사, 《역사지리로 보는 성경》 저자)
유대광야의 양은 돌을 먹고 산다?
예루살렘에서 지프를 타고 유대광야라 불리는 예루살렘 동쪽 광야로 들어갔다. 산과 골짜기는 있는데,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 울퉁불퉁한 광야뿐이다. 이 광야의 특이한 광경은 양 떼가 많다는 점이다. 이런 곳에서 무엇을 먹는지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어, 한 순례자는 “유대광야의 양 떼는 돌을 먹고 산다”라고 기록했을 정도다. 자세히 보니 궁금증이 풀린다. 이곳저곳에 건초가 보인다. 우기인 겨울에 난 풀이 건기 때 말라 건초가 됐고, 양은 이 풀을 먹는다.
반 대머리 같은 유대광야
유대광야를 가장 넓게 전망할 수 있는 아사셀산 위에 섰다. 대속죄일에 아사셀 염소를 낭떠러지에서 죽게 해 속죄물을 삼았다는 산이다. 동쪽은 넓은 광야, 서쪽 능선에는 감람산 숲이 보인다. 이스라엘은 남과 북의 긴 산맥으로 형성됐으며, 가장 북쪽은 갈릴리산지, 중부는 에브라임산지, 남부를 유대산지라고 부른다. 서쪽에는 지중해라는 대해가 있고, 동쪽에는 아라비아사막이 위치한다. 그러므로 서풍이 불면 비가 와서 유대산지의 서쪽을 푸르게 만들지만, 동풍이 불면 산지의 동쪽을 대머리로 만든다.
유대산지를 위에서 보면 서쪽은 풍성하고, 동쪽은 언제나 광야다. 유대광야는 폭이 24km 정도 되는데 3에서 5단계의 경사지로 이뤄졌으며, 1200m의 고도차가 난다. 특히 마지막 사해 앞에서는 400m에 이르는 절벽을 내려가야 한다. 또한 유대광야에는 골짜기가 많은데, 예루살렘이 있는 산 능선지역에서 내린 비가 기드론골짜기와 같은 와디를 통해 흘러내려 깊은 골짜기를 형성한다.
산지의 물은 광야로 스며들어 사해 앞에서 샘으로 터져 나오기도 하는데, 다윗이 사울을 피해 도피처로 삼았던 엔게디가 대표적인 유대광야의 오아시스라 할 수 있다.
얼마 후 도착한 골짜기에는 양의 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은 우기에 골짜기를 통해 흘러오는 물을 받아 저장해서 여름 동안 사용하는 저수조다. 당연히 물이 귀할 수밖에 없다.
목자만 의지하는 유대광야의 양
양은 색맹이라 멀리서는 건초와 흙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때 목자가 미리 봐 둔 초지로 양을 인도한다. 양은 기억력도 좋지 않아 집이나 목을 축일 시냇물도 목자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 거기다 양의 뿔은 돌돌 말려 공격을 할 수도 없고, 잘 달리지도 못한다.
양이 약하기에 목자는 물을 얻으러 들어간 깊은 골짜기에서 특히 긴장한다. 긴 지팡이와 근접전을 할 수 있는 짧은 막대기로 무장하고 혹시 물가에서 나타날 하이에나, 늑대, 표범 심지어 사자나 곰과 대결할 준비를 한다. 이처럼 양들은 유대광야에서 살아남으려면 목자를 의지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윗이 외치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라는 말은 “여호와는 나의 생명”이라는 고백이요, “나는 여호와를 떠나서 하루도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고백과 같다.
예수님의 ‘길 잃은 한 마리 양의 비유’는 유대광야를 배경으로 한다. 양이 길을 잃는다는 것은 목숨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뜻하며, 어떻게든 양을 구하려는 목자의 마음은 예수님의 심정을 의미한다.
그렇게 광야에서 살아 돌아온 양의 우리는 안전한 피난처가 된다. 안전이 확보되지 않으면 절대로 눕지 않는 양들은 우리 안에서 비로소 쉰다. 이때도 목자가 양을 지켜 줘야 한다. 밤이 되면 양을 노리는 들짐승에게서 양을 보호하기 위해 목자는 우리 앞에서 잠을 잔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 양의 문이 돼 친히 지켜 주시는 선한 목자가 바로 예수님이시다(요 10:7,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