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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4월

웅장하고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

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지혜의 왕 솔로몬의 자취를 찾아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왕상 9:15).
솔로몬의 자취를 따라 해변 길을 달려 본다. 먼저 북쪽 갈릴리 산지 위 솔로몬의 병거 성, 하솔을 찾았다. 하솔 왕 야빈의 집터 위에 솔로몬의 흔적이 보인다.
이어서 한 시간이나 내려왔을까? 이스르엘 골짜기의 남서쪽 갈멜 산 기슭에 자리 잡은 므깃도를 돌아봤다. 요한계시록 16장 16절에서 마지막 전쟁이 일어날 상징적인 장소로 지목된 아마겟돈이 바로 이곳이다.
그리고 또 한 시간을 달려 유다 산지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게셀을 방문했다. 여기도 솔로몬의 흔적이 선명하다. 열왕기상 9장 15절에서 솔로몬은 하솔, 므깃도, 게셀을 건축했다고 한다.

 

융성한 문화를 짐작하게 하는 병거 성
이 성들의 특징은 모두 병거 성이라는 점이다. 이 세 군데의 성에서 ‘솔로몬 문’이라는 특별한 성문 형태가 발견됐는데, 솔로몬 사후 3천 년 가까이 지났는데도 아직까지 솔로몬의 문보다 화려한 성문 유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 위용이 대단하다. 
병거 성을 지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솔로몬은 다윗과 달리, 말과 병거를 갖춘 군사력을 키웠다. 모세는 왕이 세워지면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했지만(신 17:16), 솔로몬은 국가의 안전과 부흥을 위해 병거를 애굽에서 사들였다. 그것을 병거 성에 두고 무기 무역까지 했다. 결국 이 일은 부메랑 역할을 해, 솔로몬에게서 병거를 구입한 아람이 강성해져 솔로몬의 후손을 짓밟기도 했다.

 

웅장하고 화려했던 왕궁
게셀에서 산지로 올라와 예루살렘의 동쪽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을 바라본다. 남쪽은 왕궁이 있던 다윗 성, 북쪽은 여호와의 성전 터가 보인다. 그리고 다윗 성을 계단식으로 쌓은 밀로와 전체를 두른 예루살렘 성이 보인다.
지금의 성벽 위치는 당시와 다르지만 그때를 추억하기에 충분하다. 그 전경을 보며 열왕기상 6장에 기록된 설계대로 솔로몬이 세운 웅장한 성전과 열왕기상 7장대로 지어진 솔로몬 왕궁의 화려함도 상상해 본다.

 

우상 숭배로 국가 분열을 자초한 불순종
그러나 여기서도 솔로몬의 중대한 과오를 볼 수 있다.
“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신 17:17).
감람산 남쪽 자락 다윗 성 맞은편으로 멸망 산을 마주하니 솔로몬 말년에 온갖 우상들을 섬기기 위해 세웠던 무수한 신전들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주변 나라들과 평화를 이루기 위해 정략결혼을 해서 무려 1천 명의 아내를 뒀던 솔로몬은 결국 이방 신들의 영향을 받고 우상을 숭배하게 됐다. 특히 그들이 가져온 우상들로 가득한 신전들이 다윗 성 동쪽에 즐비해 있다.
게다가 솔로몬은 성전에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는 말씀을 무시하고, 송아지가 떠받치고 있는 물두멍을 만들어 후대에 금송아지 상을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을 위해 은금은 많이 두면서 백성에게는 과도하게 세금을 거두고, 아셀 지파가 있던 가불 땅을 팔아먹기도 했다.

 

지혜의 왕 솔로몬은 재임 초기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고 큰 복을 누렸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면서 말씀을 어기고 자신의 지혜로 판단하며 불순종했다. 말을 많이 두고, 수많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해 우상을 섬기는 신전들을 세웠으며, 자신을 위한 은금을 축적하기 위해 백성을 힘들게 했다.
지혜와 명예, 부귀와 영광까지 모든 면에서 부족함 없었던 솔로몬. 그러나 그가 하나님 한 분에게서 멀어지자, 끝내 나라를 분열시키는 무서운 부작용을 낳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