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느헤미야, 똥문에 서다
예루살렘 남쪽에서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다 보면 영어로 ‘덩∼게이트’를 지난다. 우리말로 ‘똥문’이다. 알렉산더는 주전 333년에 페르시아(바사)를 정복했고, 100여 년 전인 주전 444년에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는 야밤을 틈타 성경에는 ‘분문’이라고 하는 똥문을 지났다(느 2:13). 분문은 제사를 드리기 위해 동물을 잡을 때 나오는 배설물을 버리러 가는 문이기 때문에 ‘똥문’이라 불렸다. 느헤미야는 다 불타 버린 이 문을 지나면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에스라에서 느헤미야까지
느헤미야가 도착하기 전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복잡한 일들을 살펴보자.
● 주전 465년, 유다를 다스리던 페르시아 아하수에로 왕의 독살과 아닥사스다 왕 등극.
● 주전 460년, 이집트(애굽)가 페르시아에 반기를 들고 아테네 함대 지원.
● 주전 458년, 아닥사스다 왕은 메가비주스 장군을 스파르타에 보내 아테네를 치도록 하는 정치적 술수를 부리는 동시에 이집트 반란 진압용 함선 제작. 이집트로 가는 길목에 있는 강 건너편 지역의 안정을 위해 에스라를 귀환시켜 유다 주변 지역 안정화 꾀함.
● 주전 454년, 페르시아 메가비주스 장군이 이집트 반란 진압.
● 주전 448년, 그리스와 아테네 사이에 칼리아스 평화 조약 체결.
● 강 건너편에서 메가비주스 장군이 페르시아에 대항. 예루살렘 성 건설이 고발당한 장면을 고려할 때(스 4:12~19), 이 반란에 유다 지역도 동참했을 가능성이 있음.
● 주전 446년, 아닥사스다 즉위 20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들음.
● 주전 445년, 느헤미야는 음력 1월까지 기다렸다가 왕에게 성벽 재건을 부탁.
● 주전 444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총독으로 도착해 52일 만에 성벽을 완성함.
성경에 바사로 기록된 페르시아는 이집트(애굽)가 반란을 일으키자 에스라를 파견했고, 그 사이 여러 사건이 있었으며, 예루살렘 성벽은 완공되지도 못하고 불타 버렸다. 그곳에 오늘날의 경호실장과 같은 페르시아의 술 맡은 관원 느헤미야가 왕의 도움을 받아 성벽을 건설하러 온 것이다.
위협 속에서 쌓은 성벽
느헤미야가 만난 가장 큰 장애물은 기후도, 물자도 아니었다. 바로 주변 민족들의 반대였다. 먼저 북쪽에는 사마리아의 수장 산발랏이, 동쪽에는 암몬의 도비야, 남쪽은 아라비아의 게셈이, 서쪽에는 아스돗 사람들이 목숨까지 노리는 방해 공작을 펼쳤다.
이런 위협 때문에 성벽을 쌓는 사람들은 한 손에는 무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작업을 하면서 52일을 지냈다. 느헤미야의 헌신과 백성의 협조, 특히 학사 에스라의 말씀과 정신적 지원은 유다를 강하게 해 ‘보이는 성벽’과 ‘보이지 않는 성벽’을 함께 쌓을 수 있게 했다. 이들은 성벽의 완성으로 방해받지 않고 온전한 예배를 드리게 됐다. 에스라와 느헤미야 말씀은 구약의 사도행전이다. 예루살렘의 확장은 곧 복음의 확장이기도 했다.
예루살렘 성의 가장 남쪽 문, 똥문에 서서 느헤미야를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간구하던 느헤미야의 기도가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는 소리와 함께 메아리친다.
“옛적에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범죄하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 흩을 것이요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느 1:8~9).
느헤미야와 같은 인물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확장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