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원희 목사(한국성지미디어 원장)
이스라엘과 화친한 기브온
“크게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기브온은 왕도와 같은 큰 성임이요 아이보다 크고 그 사람들은 다 강함이라”(수 10:2)
기브온의 뜻은 ‘언덕 위의 도시’이다.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서쪽 8㎞ 지점인 현재의 에즈 집(ej-Jib)이다. 해발 약 792m의 산악 지대의 구릉지에 세워진 이 성읍이 성경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여호수아에 의한 중부 가나안 정복과 관련돼 있다(수 9:1~21).
여리고 성과 아이 성 등이 함락된 후 기브온 주민들은 자신들의 도시도 여호수아에게 공격당할 것을 두려워해, 먼 데서 온 사람처럼 꾸미고 책략적인 평화조약을 체결했다(수 9:3~17). 그 후에 그들의 기만책이 드러났으나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의무를 지켰고, 그들을 아모리 족속 연합군의 공격으로부터도 보호해 멸망을 면하게 했다(수 10:1~15). 특히 여호수아가 아모리 족속을 격퇴시킬 때 태양이 기브온 위에 머무르고, 달이 아얄론 골짜기에 머무는(수 10:12~13) 전무후무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후 다윗이 이곳에서 블레셋을 물리쳤으며, 그의 군대 장관 요압과 사울의 군대 사이의 전쟁도 기브온 못가에서 일어났다(삼하 2:12~17). 이 싸움의 결과로 이 지역은 헬갓핫수림(‘날카로운 칼의 밭’이란 뜻)이라 불렸다. 사울의 일곱 아들들은 기브온 거민을 살해한 연유로 인해 다윗 때 기브온 사람들에 의해 목매달려 죽임을 당했다(삼하 21:1~9). 솔로몬 때에는 일천 번제를 이곳 기브온에서 드렸다(왕상 3:4~15). 이후 바벨론 귀환 때인 B.C. 5세기경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도운 사람들 중에는 기브온 사람들이 포함돼 있었다(느 3:7).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수아 9장 7절과 11장 19절에서 히위 사람이라고 불렸다. 베냐민 지파의 여러 도시들을 열거하고 있는 여호수아 18장 25~26절에는 그비라와 브에롯은 물론 미스베, 라마 등도 기브온과 함께 수록돼 있다.
오늘날에는 욥바, 아얄론, 벧호론, 여리고로 이어지는 동서 도로변에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그러나 아랍인 마을로 옛 성서 시대의 기브온을 찾아가는 것은 주위 환경이 많이 변해 쉽지 않다. 나는 오래전 이곳 기브온의 못가를 찾아 사울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것을 회상하며 오늘날 이 팔레스틴 지역에 하루속히 평화가 깃들기를 기원했다.
여호수아에 의해 멸망당한 하솔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죽이고”(수 11:10)
하솔은 갈릴리 호수 북쪽 16㎞ 지점, 옛 훌레호 남서쪽 8㎞ 지점에 있는 텔 엘 케다(T. el-Qedah)이다. 이곳은 요단 계곡을 따라 남으로 내려오는 길목과 다메섹에서 므깃도로 이어지는 당시 국제적인 도로변에 위치해 있어 성경 시대에도 많은 전투가 벌어졌다. 이곳은 발굴을 통해 힉소스 족의 전형적인 흙벽돌 벽에서 여호수아 당시에 멸망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가나안 족속의 신전도 발굴됐다.
하솔은 고대 가나안의 왕이 있던 왕도였다. 여호수아가 남쪽 지역에 있는 성읍들을 차례로 격파하자 북쪽 지역의 하솔 왕 야빈은 마돈, 시므론, 악삽 등 주위에 있는 성읍들과 연합군을 형성해 메롬 물가에서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진을 쳤지만 오히려 여호수아에게 패했다(수 11:1~15).
고고학 발굴은 B.C. 13세기 당시에 파괴된 증거를 보여 준다. 사사 시대에는 드보라가 이끄는 바락 장군의 군대가 이곳 하솔 군대를 전멸시킨 후 완전히 정복했고, 솔로몬 왕 때는 갈릴리 북방 요새로 강화됐는데, 당시의 마구간 터를 보면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아합 왕(B.C. 869~850년)은 이 도시를 재건해 그 후계자들까지 계속 사용했다. 그리고 여로보암 2세 때에는 부유층 상인들이 소유했던 건물들에서 갈릴리 지방 최초의 히브리어 명각이 발견됐다.
이 도시 위에는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3세가 멸망시킨 도시의 유적이 있었다. 후에 이 도시는 재건됐으나 B.C. 7세기 초에 버려졌다. 그리고 페르시아 때에는 성채로 사용됐으며, 헬레니즘 때에 마지막 성채로 사용됐다.
오늘날 이곳에서 발굴된 가나안 족속의 신전 모형은 많은 유물들과 함께 바로 북쪽에 있는 키부츠인 아예렛 하사하르(Ayelet ha-Shahar)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이곳 정상에서 보면 훌레 골짜기와 헬몬 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나안 족속의 머리(왕도)와도 같은 하솔이 여호수아에 의해 점령당한 후 이스라엘의 가나안 1차 점령은 실질적으로 마무리됐다. 그런 하솔의 유적지를 바라보며,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섭리를 새삼 깨닫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