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원희 목사(한국성지미디어 원장)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행 1:13)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1~4)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죽은 지 3일 만에 부활하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고 말씀하셨다.
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승천하셨다.
이를 기념해 세운 승천 기념 건물은 380년경 지붕이 없는 8각형이었다. 그 후 십자군이 재수축했고, 1187년에는 모슬렘 교도에 의해 지붕에 돔(Dome)이 씌워졌다. 건물 중앙에는 승천 때 밟은 발자국이 남겨졌다고 전해지는 바위가 있다.
그리고 주님의 약속에 따라 마가의 다락방(The Upper Room)에서 120명쯤 되는 제자들이 힘써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이 임했다. 성령이 임한 곳에는 14세기경에 세워진 마가의 다락방이 있다.
예루살렘 성벽을 시온 문으로 나가서 조금만 걸어가면 오른쪽으로 크리스천교회가 크게 서 있고, 다윗 왕의 무덤 입구 바로 왼편에 이층 석조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 이층에 이르는 계단을 올라가면 큰 방이 있는데, 이 방을 지나 다윗 왕의 가묘가 있는 위층에 올라가면 마가의 다락방이 모습을 드러낸다(눅 22:7~38).
마가의 다락방에 이르는 돌계단은 수백 년동안 오르내리는 무수한 사람의 발길에 의해 층계가 닳아서 계단 돌들이 움푹 패여 있다. 다락방의 크기는 120명이 모일 만한 꽤 큰 방이다(행 1:15). 십자군 시대에 중수된 다락방은 내부가 유럽 고대 건축 양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치식 건축으로, 방 가운데 3개의 기둥이 서 있고, 주위의 벽에 있는 기둥들과 연결된 곡선으로 아치를 이뤄 천장을 받치고 있다.
에피파니우스 주교(310~436)가 남긴 글에 의하면, 하드리아누스 왕이 2세기에 예루살렘으로 왔을 때 이 다락방 자리에 교회의 유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 후 비잔틴시대인 331년에서 349년에 교회가 지어졌으나 614년 페르시아에 의해 파괴됐다.
오늘날의 건물은 14세기 들어 가톨릭에서 사이프러스의 예술가를 통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이 다락방은 성경에서와 같이 위층에 자리한 방으로 그 크기는 가로 15.3m, 세로 9.4m이며, 14세기 건축 양식인 고딕식의 창문이 있다. 이 방의 남쪽 정면 벽에 장식된 회교식 제단은 한동안 이곳이 회교의 사원으로 사용됐던 것을 보여준다.
이 다락방의 동쪽 벽에 붙어 있는 8개의 계단을 올라가면 조그마한 방이 두 개 나온다. 동남쪽 방은 기도실로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방, 동북쪽 방은 한때 회교도들에 의해 다윗의 묘비가 북쪽 벽에 세워졌던 방이다.
이처럼 다락방은 예수님께서 베푸신 최후 만찬의 장소요, 성찬식이 창설된 기독교 예식의 본산지다. 또한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성찬예식을 제정하시고, 마지막으로 유월절 식사를 하신 곳이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신 곳(요 20:19~29)도 이곳 다락방으로 판단된다.
성지순례 시 빠짐없이 들르는 이곳에서 나는 언제나 찬송가 185장(새 311장) ‘내 너를 위하여’를 부른다. 찬송가 가사처럼 주님께서는 내게 이렇게 질문하신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대답은 찬송가 141장(새 143장) 5절로 주님께 고백한다. “늘 울어도 눈물로써 못 갚을 줄 알아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 바칩니다.”
그렇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주신 주님께 우리가 무엇을 드릴 수 있겠는가? 그저 몸밖에 드릴 것 없어 이 몸을 드릴 뿐이다. 이것이 마가의 다락방에서의 내 고백이자 성지순례를 인도하는 자로서 순례객들에게 전하는 주님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