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그들이 한마음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동맹하니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하갈인이며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블레셋과 두로 사람이요”(시 83:5~7)
이스마엘과 미디안
둥그런 해안가, 홍해 끝 항구를 이집트, 이스라엘, 요르단이 분할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요르단의 아카바 항구에서 남쪽으로 조금만 가면 사우디아라비아가 나오니, 이곳은 결국 4개 국의 접경지대인 셈이다.
고대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던 곳은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 자손과 미디안 사람들이 살던 광야 지대다. 유목민으로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동하며 살던 그들은 이스라엘이 약해질 때마다 요단 강을 넘어 침공했다.
에서의 후손, 에돔
성경에서 ‘왕의 대로’라고 하는 길은 광야라고 하지만 사실은 높은 산지다. 해발 900m가 넘는 산지는 붉은 빛을 띤다. 그중에서도 붉은 모래가 많은 세일 산지를 보면 에서가 생각난다. 에서는 붉은 빛깔의 피부 때문에 ‘에돔’이라고 불렸다. 그리고 그의 후손이 정착한 지역이 ‘에돔’이라는 나라가 됐다. 에돔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는 페트라다. 사도 바울은 회심하자마자 이곳에서 3년 동안 복음을 전하다가 도망자 신세가 된다.
그러나 에돔의 원래 수도는 페트라의 북쪽에 위치한 보스라다. 신약성경에 에돔이 이주해 ‘이두매’라는 사람들로 불렸는데, 그중 한 가문은 로마 권력을 잘 잡아 대대로 로마가 내려 준 분봉왕이 된다. 바로 그 가문 이름이 헤롯이며, 이들은 출애굽부터 예수님과 사도 바울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대적이 됐다.
발락과 메사의 모압
이스라엘에서는 볼 수 없는 큰 강이 나타났다. 세렛 강이다. 왕의 대로에서 가장 어려운 지점 중 하나인 이 강을 넘기 위해서는 족히 이틀은 걸려야 할 것 같다. 강바닥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거대한 산지가 보이는데, 이곳이 바로 모압이다. 유다 왕 여호사밧과 북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연합해 모압을 치러 왔을 때, 이렇게 높은 곳에서 진을 친 모압을 바라봤을 것이다.
높은 곳에서 아래로 내려오니 매우 덥다. 이스라엘과 모압의 전쟁 당시 물이 떨어졌다. 그때 엘리사가 거문고 소리를 들으면서 기도하자 골짜기에 물이 흘러내려 왔다. 멀리서 연합군을 바라봤던 모압은 그 물을 내분으로 인한 피로 착각하고 성급하게 내려왔다가 대패를 당하고, 그들의 수도 길하레셋으로 도망했다(참조 왕하 3장).
출애굽 때부터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데려다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다. 그래서 모압의 누구도 이스라엘 성회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나 한 여인, 룻은 베들레헴 보아스에 접붙여 다윗과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에 붙어 최고의 열매를 맺은 사건이 이것이 아닐까!
롯의 또 다른 후손, 암몬
평지를 따라 얼마를 달렸을까. 세렛 강과 규모가 비슷한 아르논 강을 넘자 길르앗 지역이 나타났다. 그런데 이곳은 암몬과의 경계가 애매하다. 길르앗의 절반되는 얍복 강물은 암몬족의 수도 랍바암몬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두 지역 간에는 분쟁이 많았다.
사사 입다는 암몬과의 국경분쟁으로 설전을 벌이다가 전쟁을 치렀다. 현재 요르단의 수도인 암만은 암몬의 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이 도시의 중앙에 고대 랍바암몬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한 후 후환을 없애려 그의 남편을 죽게 만들었던 전쟁터이기도 하다.
에덴의 동쪽에 서서
신기한 것은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이고, 에돔은 이삭의 아들 에서의 후손이다. 모두 약속에 동참했지만 약속을 얻지 못한 백성들이다. 예루살렘을 에덴으로 생각한 유대인의 시각으로 볼 때 모압과 암몬, 에돔의 위치는 ‘에덴의 동쪽’이다.
느보 산에서 올라 가나안 땅을 내려다본다. 길르앗의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환경이 좋다는 이유로 가나안을 포기하고 이곳에 머물렀고, 결국에 그 후손은 수많은 환난을 겪다 사라져 버렸다. 이 같은 성경 속 사건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해답이 성경에 분명하게 나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