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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유목민의 사랑 실천

과월호 보기 이문범 교수(사랑누리교회, 총신대학원 성지연구소)

헤브론, 예배를 드린 거룩한 땅
목축하며 떠돌이로 살았던 유목민 아브라함은 창세기 13장부터 19장까지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나무에 머물렀다. 헤브론은 해발 1000m로 유대 산지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그러나 예루살렘부터 서서히 경사가 올라가기 때문에 높은 줄 모르고 가기 일쑤다. 그러다가 가파른 경사의 남쪽 네게브로 내려갈 때에야 얼마나 올라왔는지 알 수 있다.
이곳은 다른 지역보다 높아서 지나가는 구름이 걸려 비가 많아, 포도 농사하기에 좋은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주변에 포도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포도를 보면 12정탐꾼이 생각나지만, 사실 이곳에 처음 도착한 인물은 아브라함이었다. 그는 헤브론의 마므레 상수리나무 숲에 도착해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 이후 이곳은 거룩한 장소가 됐고, 이스라엘의 선산이 된다.

 

유목민의 법, 손님 대접과 피의 보복
아브라함은 유목민이다. 사실 유목민에게는 2가지 법이 있다. 첫째는 손님 대접이요, 둘째는 피의 보복이다. 이 정신은 마므레에 살던 아브라함을 통해 알 수 있다.
뜨거운 햇살이 비치며 포도가 익어 갈 때, 세 사람이 지나간다. 장막 문에 앉았던 아브라함은 달려가서 그들을 영접해 물을 마시게 하고, 최고의 음식으로 대접을 했다. 이 일을 두고 히브리서 저자는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라고 말한다.
사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이미 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당시 유목민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는 아브라함의 손님 대접을 통해 그에게 은혜가 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대접한 이들은 천사들과 하나님이었기 때문이다. 거처가 없는 유목민 생활을 하며 누군가를 대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군인지, 적인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자신의 것을 내어 대접한다는 것은 사랑의 시작, 법의 시작이다.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을 우리는 ‘족장의 도로’라고 부른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많이 사용한 길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4장에서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그돌라오멜의 군대에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구하러 이 길을 걷는다. 수만 명을 상대로 318명을 데리고 가는 아브라함, 분명 숫자상으로는 감당이 안되는 싸움이다.
그러나 그는 머리의 계산보다 유목민의 법에 순종해 이 길을 따라 걸었다. 친족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적과 싸우는 아브라함의 모습은 분명 피의 보복을 실현하기 위한 모습이다.
하지만 피의 보복이라는 유목민의 법 안에는 또 다른 숨은 뜻이 있다. 가장 가까운 친족이 어려움을 당한 동족을 구해주는 것은 한편으로는 피의 보복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업을 이어가기 위한 기업 무름의 정신이다. 이성적으로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 싸움을 하러 가는 아브라함의 모습에는 조카 롯에 대한 사랑과 롯의 기업을 기꺼이 이어가겠다는 결단이 있다.
과연 아브라함은 족장의 도로를 따라 베들레헴을 지났을 때, 후에 자신이 보인 기업 무름과 비슷한 모습을 실현하는 보아스의 존재를 예상할 수 있었을까? 또한 보아스를 통해 다윗 왕조가 세워지고, 장차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이라는 것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사랑과 공의의 정신
지나는 길에 유목민이 우리 차량을 가로막는다. 자신들이 대접하는 것을 먹고 가라는 것이다. 시간은 없지만 유목민의 기꺼운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 멈춰섰다. 조금 있다 보니 빵을 구워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빵 한 조각에 담긴 사랑, 광야 한복판에서 누리는 최고의 호사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빵을 굽는 그들의 손을 보니 손바닥만 하얗고 손등은 검다. 거기에 파리 떼가 붙어있는 치즈덩어리를 손으로 휘저으며 자른다. 아! 고맙지만 이거 못 먹는다고 해야 하나? 그러나 한편으로 피의 보복이라는 유목민의 법이 생각난다. 물론 호의를 거절하는 것에 대한 보복은 없겠지만, 괜히 찜찜한 마음에 얼른 먹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를 향한 손님 대접의 정신이 오늘날 그들을 지탱해 온 사랑의 실천이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모습을 성경에서 찾아보면, 사랑과 공의의 정신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사랑을 나타내시고, 또한 죽음으로 그 사랑을 실천하셨다. 우리도 이와 같은 유목민의 정신을 우리 삶 가운데서 실천하며, 예수님의 그 사랑을 이어가는 데 노력하는 주님의 제자가 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