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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북 이스라엘 왕국은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때에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합니다. 불과 몇 십 년 전에 아람을 비롯한 주변 나라들과 피를 말리는 전쟁을 치렀지만 백성들은 그때의 참혹한 상황을 다 잊어버렸습니다. 번영의 시대를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쟁과 기근과 환난은 더 이상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고난 중에 잠깐 회개하는 듯했으나 그들의 삶은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타락의 길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런 백성들에게 모든 것이 잘되어 가는 듯한 상황에서 앞으로 닥쳐올 환난을 예언하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호세아는 이러한 시대에 심판의 메시지를 전할 특별한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남다른 사명을 감당케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그 자신의 삶을 전폭적으로 바치도록 하심으로 시대를 깨우게 하셨습니다. 그 눈물 나는 사연을 말씀을 통해 살펴봅시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호세아가 활동한 시기를 어떻게 묘사합니까? 그 시대의 사회적, 경제적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세아 자신에 대해서는 무엇이라 말합니까?(1, 2b절)
1. 가이드
- 북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왕이 통치할 때였는데, 그는 북 이스라엘의 창건자인 여로보암과 동명이인이었다. 여로보암이 통치하던 시기는 정치적, 경제적으로 북 이스라엘이 최전성기의 궤도에 오른 때이다.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던 때(BC 722년)와 히스기야가 즉위하던 때(BC 729년) 사이에 활동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북 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한 선지자였음에도 그는 남 유다의 왕들을 언급하며 다윗의 족보로 구원이 통합될 것을 이야기한다(참고 3:5).
- 호세아는 다른 선지자들과는 달리 자신의 아버지 이름 말고는 최소한의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의 이름은 명확하게 고멜이라고 기록한다. 초반부에 고멜을 통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강조하려 하면서도 자신에 대해서 최소한으로 말하려 하는 점이 대조를 이룬다.
2. 호세아 아내의 이름은 무엇입니까?(3절) 하나님이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인과 함께 살라고 명령하신 것은 실제 사건일까요, 아니면 상징적인 이야기일까요?
2. 가이드
- 고멜이라는 여자의 실제 이름이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직접적이고도 개인적인 호세아의 경험이 예언의 주요 소재가 됨을 추측할 수 있다. 예레미야의 경우 토기장이 집을 방문하고 밭을 매입하는 등(렘 18:1~12; 32:7~25)의 상징적인 행동이 예언에 포함되어 있으나, 호세아의 경우는 더욱 직접적이고 실증적인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 호세아가 이런 행동을 실제로 할 수 있었을까, 없었을까를 질문함으로 본문을 이해하려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 어쨌든 호세아서가 다른 선지서와 차별되는 점이 이것에 있다고 보아야 하겠다.
3. 호세아가 고멜을 통해 낳은 세 자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3~9절) 그 이름의 뜻은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은 자녀들의 이름을 그렇게 지으라고 하셨을까요?
3. 가이드
- 장남의 이름은 “이스르엘”이며, 이는 북 이스라엘 지방의 한 도시를 나타내는 이름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합 왕가를 멸망시켰지만(왕하 9:7~10:28), 순종 이후에 더 패역한 죄를 지음으로 북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을 불러왔다고 볼 수 있다(4절). 차녀의 이름은 “로루하마”이며, 이는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이 이름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더 이상 용서하지 않을 것을 말씀하신다. 막내아들의 이름은 “로암미”이며, 내 백성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미 우상 숭배를 하며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는다는 뜻이다.
- 호세아가 3남매를 고멜을 통해 낳았다는 사실을 언급함으로, 이 이야기가 단순히 상징적이고 영적인 사건으로만 묘사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추측케 한다. 하나님은 호세아와 고멜의 결혼을 통해 낳은 자녀들의 이름을 직접 지어 주시면서 우상 숭배(영적 간음)의 결과가 어떠할지를 실제적이고 충격적인 형태로 보여 주신다. 하나님은 호세아의 자녀들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살아 있는 증거와 메시지를 주려 하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축복의 자녀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의 예언으로 사용된다는 것은 부모로서 매우 괴로운 일이지만, 음란한 고멜을 아내로 맞아들인 호세아가 자녀의 이름을 짓는 일에도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4. 호세아 개인의 아픔을 통해 이스라엘에 대한 저주를 선포하시는 한편, 하나님은 어떤 소망을 곧이어 제시하십니까?(10~11절) 이 말씀은 앞 절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에 대한 예언과 어떤 차별성을 보여 줍니까?(11절)
4. 가이드
- 4, 6절의 예언에서는 이스라엘 “족속”이라는 점이 강조되고, 10~11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으로 번역되어 분명한 차이점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정치적 통치 단위인 족속, 나라에 대해 저주하시고는 곧이어 회복을 선포하시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하나님은 예언의 대상을 분명히 달리하심으로 차별성을 두셨다고 할 수 있다. 7절에 유다 족속의 구원에 대한 예언에서도 활과 칼과 군대를 통한 구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이야기하심으로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의 성취를 보게 하신다(창 22:17~18).
5. 하나님과 내가 결혼한 부부 관계라고 할 때, 남편이신 하나님을 대하는 지금 내 모습은 어떠합니까? 신실합니까, 아니면 부정한 모습도 있습니까?
6.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나 죄악으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나누어 봅시다. 혹시 지나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회복을 경험한 계기가 있다면 간증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선각자라는 사명의 자리는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겪지 않아도 될,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통찰하고 예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구약의 다른 선지자들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예언 사역을 감당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메시지를 그냥 말로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자신의 삶에 직접 녹여 내릴 것을 요구받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더 중요한 가치인 가정을, 시대를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진노의 예표로 사용해야 한다는 점은 참으로 감당하기 힘든 짐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심판의 예언으로만 끝났다면 호세아는 아마 이 사역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예언은 반드시 회복의 예언으로 연결됩니다. 자녀인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저주가 아니라 평안이요 복이었던 것입니다. 호세아 개인에게 큰 아픔일 수 있었던 사명은 하나님이 이루실 회복과 구원 계획으로 말미암아 감당할 만한 사역이 되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