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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이세벨은 신약에서도 자주 인용되는 악인의 대명사입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을 섬길 마음이 전혀 없었던 이세벨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도살하며 의도적으로 하나님께 반역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왕이었던 남편을 압도하는 정치력과 능력으로 세상에 군림했지만, 회개의 기회를 놓치며 파국의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며 패역한 마음의 끌림대로 끝까지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선언하셨더라도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심판 예고가 있으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서 운명론적으로 지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는 태도입니다. 패망으로 치닫는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 우리 삶의 반면교사를 삼아 봅시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유다의 아하시야 왕이 예후에게 죽임을 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27절) 예후의 불같은 성격과 추진력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참고 대하 22:7)
2. 아합의 아들 요람뿐만 아니라 아합의 외손자인 아하시야가 왜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당합니까?(27~29절, 참고 왕상 21:27~29)
3. 예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최후를 예감한 이세벨의 행동을 볼 때 그녀가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까?(30~31절) 예후에게 “시므리여 평안하냐”고 인사하는 이세벨의 의도는 무엇일까요?(31절, 참고 왕상 16:9~18)
4. 이세벨의 죽음 이후 예후의 재빠른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세벨의 시신에 일어난 일은 무엇입니까?(34~37절) 그렇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참고 왕상 21:23)
5. 다른 사람과 대립 관계에 있을 때 내가 대처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상대방의 폐부를 찌르는 말로 자신의 위상을 세우려 한 적은 없습니까?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6. 자신에게 주어질 지도자의 자리를 가정해 보고 어떤 리더십으로 공동체를 섬기고 인도할 수 있을지 서로 의견을 나누어 봅시다. 공동체에서 끝까지 신임받고 인정받는 리더십은 어떤 것일까요?
삶의 열매를 거두며
절제절명의 위기에서 지인들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믿었던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가고 오히려 자신을 파멸시키는 데 힘을 내는 것을 보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입니다. 인간관계 속에서 생기는 문제를 보며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절대적 사랑을 주었음에도 철저히 배신의 길을 걸어가는 피조물을 볼 때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은 그런 사람들에게도 기회를 계속 주시지만, 그 기회가 영원하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