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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오늘 본문에서는 앗수르를 배반한 두 나라의 왕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남 유다의 왕 히스기야고, 또 한 사람은 북 이스라엘의 왕 호세아입니다. 영토의 크기나 인구로 볼 때, 남 유다보다 북 이스라엘이 훨씬 더 강대한 나라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두 나라가 모두 앗수르를 배반했지만 작은 나라였던 유다는 형통하고 유다보다 훨씬 큰 나라였던 이스라엘은 멸망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를 두 나라가 함께 등졌는데 어떻게 더 작은 나라가 오히려 형통할 수 있었는지 살펴봅시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유다에서 히스기야가 왕이 된 것은 이스라엘에서 호세아가 왕이 된 지 얼마만의 일이었습니까?(1절) 히스기야와 호세아의 재위 기간은 서로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2, 9~10절)
2. 당시 최강대국은 앗수르였습니다. 앗수르와 유다, 이스라엘의 관계는 어떠했습니까? (7, 9절, 참고 17:4)
3. 히스기야와 호세아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3~6, 12절)
4. 히스기야의 운명과 호세아의 운명은 어떻게 차이가 납니까?(8~10절)
5. 외교정책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 차이가 없었고, 유다가 이스라엘에 비해 더 작은 나라였음에도 히스기야가 호세아보다 형통했던 원인은 결국 무엇입니까?
6.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봅시다. 참된 형통을 누릴 만큼 하나님을 의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형통을 누릴 수 있기 위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을 섬기지 않는 믿음의 삶을 살도록 함께 기도합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세상의 재물이나 힘에 의지하여 평안을 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자기 처세술로 세상을 헤쳐 나가려는 시도만큼 무모한 것이 없습니다. 참된 형통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만을 의뢰하고 그분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하겠다는 분명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사실 남 유다 왕 히스기야가 모세의 놋뱀을 부수고 “느후스단”(놋조각)이라고 부른 것은 왕으로서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만이 높임을 받으셔야 한다는 원칙에서 결코 떠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기에 형통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반면, 북 이스라엘 왕 호세아에게서는 그 어떤 순종의 결단도 찾아볼 수 없었고, 결국 그와 이스라엘은 멸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순종의 결단이야말로 우리를 참된 형통으로 이끄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