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마음의 문을 열며
아름다움은 사실 하나님의 속성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에는 많은 긍정적 효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호감을 가지게도 하고 끌리게도 합니다. 또한 즐거움과 기쁨을 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죄악으로 오염된
이 땅에서의 아름다움은 한계가 있으며 완벽하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 안에 진실함이 없는 아름다움, 속과 달리 겉만
아름다운 것은 때로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암논을 죽인 압살롬이 참 아름다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후 전개되는 상황은 압살롬의 아름다움과 상관없는
모습입니다. 과연 압살롬의 아름다움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그 아름다움은 얼마나 진실했을까요?
진정한 용서도 화해도 없는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본문을 보며 함께 생각하고 나눠 봅시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압살롬의 아름다움은 어느 정도였습니까? 특히 그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부분은 어디입니까?(25~26절)
-> 온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압살롬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았고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었다. 특히 그의 머리
털이 왕의 저울로 달았을 때 이백 세겔이나 될 정도로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2. 이렇게 아름다운 압살롬은 지금 어디에 있으며, 얼마 동안이나 다윗 왕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까?(28절)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24절)
-> 압살롬은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2년 동안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는 다윗 왕이 명령하기를 그의 얼굴을 보지
않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3. 압살롬은 다윗 왕을 만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쓰게 됩니까?(29~30절)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이후에 하는 행동이나
말을 볼 때 그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참조 13:28, 14:30, 32)
-> 압살롬은 처음에 요압을 왕에게 보내 왕을 만날 요량으로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지만 요압은 만나주지 않는다. 이에
그의 관심을 끌기 위해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르게 된다. 이러한 행동들을 볼 때 압살롬은 일을 매우 치밀하게 계획하고
행하는 사람이지만 자기가 옳다고 생각할 때는 살인도 서슴지 않는 사람이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밭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이 언제든지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고, 형제를 죽이고도 왕 앞에서 죄가 있는지 없는지 보자고 할 정도
로 뻔뻔한 자라고 할 수 있다.
4. 결국 압살롬과 다윗은 화해했습니다. 그러나 이 화해는 다윗의 아들에 대한 절제 없는 사랑과 압살롬의 가책 없는 범죄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진행된 화해입니다. 33절 말씀을 보면 어떤 느낌을 갖게 됩니까?
-> 먼저 다윗의 공정하지 않은 처사가 안타깝다. 범죄에 대한 징계가 우선되어야 하는데 다윗은 그저 보지 않으려고 할 뿐
아름다운 아들 압살롬에 대해 징계하지 않는다. 압살롬에게는 그의 치밀함과 거침없는 성격이 느껴지며 몸과 함께 마음이
아름답지 못할 때 어떤 치명적인 일들이 일어나는지 두려운 마음마저 들게 된다.
5. 본문 속의 다윗에게는 어떤 부분이 부족해 보입니까? 또한 압살롬은 하나님의 긍휼을 입기 위해 어떻게 행동해야 했을까요? 우리 안에는 다윗과 같은 실수, 압살롬과 같은 생각이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고 함께 나눠 봅시다.
-> 다윗에게는 인간적인 우유부단한 사랑보다 앞서는 정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그가 한 나라의 왕이라면 더욱 그러
한 부분이 필요하다. 그리고 만약 압살롬이 하나님 앞에 죄를 고백하고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해 겸손한 마음을 가졌다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었을 것이다.
6.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왕, 모든 것을 가진 왕자도 실수하고 교만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회복되어야 할 공의와 더욱
겸손한 생활을 위해 한 주간 무엇을 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해 봅시다. 가정과 일터, 관계의 영역 안에서 구체적으로 결단
하고 이를 위해 함께 기도한 후 반드시 실천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예루살렘으로 온 압살롬에게서는 분노와 광기가 느껴질 뿐 실상 죄에 대한 회개와 안타까움, 겸손함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결국 그는 자신의 책략으로 목적을 달성합니다. 다시 왕과 화해를 하며 그가 활동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결국 멸망의 길이었습니다. 압살롬과 다윗을 바라보며 우리는 겸손과 공의를 생각하게 됩니다. 주께서 주신 것에 대한 겸손함, 주께서 주신 말씀의 기준을 굳건히 세우는 공의가 우리 안에 더욱 넘쳐야 할 것입니다.
한 주간 우리의 죄에 대해 민감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말과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보여 주려는 마음을 주 앞에 겸손히
내려놓는 시간을 가집시다. 우리의 겉과 속이 주 예수를 더욱 닮아 진정 아름다운 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