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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2:38~44 (참조 12:28~34)
마음의 문을 열며
헌금을 하거나, 주일 성수나 교회에서 봉사하며 얼마간의 시간과 노력을 들여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만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이만하면 되겠지’ 하는 기준은 어디에 기초한 것일까요? 혹시 우리의 감정과 경험에 기초한 것인가요, 아니면 사람들의 평판인가요?
성경은 예수님이 최종적인 판결의 권위자임을 분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사실을 자주 잊어버립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섬김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헌신의 깊이는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도전해 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예수님께서 가르치실 때에 서기관들의 어떤 점을 비판하셨습니까?(38~40절)
->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율법선생이라는 것을 과시함),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것,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것과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것을 비판하셨다.
2. 왜 서기관들은 더 큰 심판을 받을 대상이 된다고 생각합니까?(40절) 그들이 평소에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내용들과 관련지어 볼 때 그들의 죄의 중함은 어느 정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까?(참조 12:33; 마 23:3~4; 약 3:1~2)
-> 서기관들은 율법에 관한 지식을 이용해 예수님께 덫을 놓으려 했을 정도로 율법에 정통한 자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기관들의 본질적인 문제는 지식의 많음이 아닌 오히려 그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 이중적인 태도에 있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서기관의 가르침은 받되 그 행위는 본받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야고보 사도 역시 가르친 대로 살지 않는 선생 된 자들이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3. 예수님께서 헌금함에 봉헌하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옮기셨을 때 목격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과부의 봉헌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어떠합니까?(41~44절)
-> 부자들과 과부가 봉헌하는 장면을 목격하셨다. 부자들은 많이 봉헌했지만 그들의 액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과부가 봉헌한 금액이 유대 화폐의 가장 작은 단위인 두 렙돈에 불과한 것이 공개됐고, 예수님은 그 여인이 드린 헌금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다고 평가하셨다. 그녀가 가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다.
4. 당시 과부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볼 때, 그녀의 헌신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합니까?(44절) 왜 한 렙돈이 아닌 두 렙돈을 드렸을까요? 자유롭게 생각을 나눠 봅시다.
-> 당시의 과부는 ‘사회적 배려자’였다. 지금처럼 사회보장제도나 공공기금이 전무했던 당시로서 여성은 아버지, 남편 혹은 아들의 사회경제적 지원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참조 눅 18:1~5). 이 과부는 생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유지하기 어려웠던 ‘가난한’ 여인이었다. 그런 형편의 그녀가 생계 전부를 봉헌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헌신의 행위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이 먹이고 입혀 주실 것을 신뢰했으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으므로, 생활비 전부를 드리고 생을 마감하기 위해서, 서기관들이 헌금을 강요했기 때문에 등등.
5. 앞서 외식적인 서기관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이 있었기에 ‘생활비 전부’를 봉헌한 과부의 헌신은 더욱 두드러져 보입니다. 우리 내면에도 종교적 또는 사회적으로 화려한 옷 안에 감춘 외식과 욕심, 자기 안위적 태도는 없습니까?
-> 서기관들의 가장 큰 죄악은 ‘위선’이었다. 주일 성수하고 적당한 헌금을 드리면서 종교라는 의식 속에 진심으로 이웃을 섬기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관심을 갖지 않는 우리의 내면을 점검해 보자.
6. 가난한 중에도 자신의 전부를 드릴 수 있었던 과부의 헌신을 본받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헌신적 태도를 배우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변화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겠습니까?
삶의 열매를 거두며
예수님은 화려한 옷과 높은 자리에 앉아 문안 받기를 좋아한 서기관들의 위선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가난한 과부의 수준 높은 헌신을 주목해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과부보다 더 많은 헌금을 했지만 과부의 헌신을 더 높게 평가하십니다. 그것은 헌금과 주일 성수와 같은 우리의 종교적인 생활의 이면에 감추어진 동기와 목적을 주님께서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동시에 우리의 헌신이 그 분량이나 결과와 관계없이 어떤 형편 속에서 드린 것인지 그 내면의 정성과 태도를 주목하십니다. 과연 주님은 우리가 드리는 모습을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물질과 시간, 마음과 에너지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드리고 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