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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불신 세상을 이끄는 지배적인 가치가 있다면 아마도 ‘투자할 만한 가치’라는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높은 가치로서 존중되지만 반대로 투자 가치가 없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 세상의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의 구조는 투자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고 관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눈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은 완전히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자들의 시선은 한 여인이 보여 준 예수님께 대한 헌신조차 세상의 잣대로 판단해 버립니다. 여인의 섬김은 낭비라는 것입니다. 과연 여인의 섬김은 낭비였을까요? 아니면 둘도 없는 소중한 섬김이었을까요? 그 평가는 세상이 아닌 예수님께서 하십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3절)
->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음.
2. 여인의 행동에 대해 사람들이 보인 반응은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4~5절)
※ 데나리온 : 로마인들이 발행했던 은전으로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치 삯 즉, 300데나리온은 노동자의 거의 일 년 연봉에 해당하는 금액
-> 어떤 사람들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서 화를 냈다. 그 이유는 향유를 허비했다는 것이다. 그 향유의 가치는 대략 계산해도 300데나리온으로 굉장히 값비싼 것이었기에, 그것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었는데 낭비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다.
3. 사람들이 여인의 행동에 대해서 보인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실제로 우리가 그 현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반응했으리라 생각합니까?
-> ‘어떤 사람들’은 제자들 중에 몇 사람을 지칭하는데, 그들은 죄인과 세리의 친구(2:15)로서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에게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고 있었고, 식사 장소 역시 소외되고 가난한 나병환자 시몬의 집이었다. 그러므로 여인의 행동은 누가 보더라도 낭비로 여겨졌을 것이다. 당시 정황에서는 여인에 대한 제자들의 비판이 옳게 보였을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각자가 그 현장에서 보였을 반응들을 나눠 보자.
4. 여인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와 약속은 무엇이며(6, 9절), 그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7~8절)
-> 예수님은 제자들의 신랄한 비판에 대해서 여인을 가만 두라고 말씀하시며, 그 일은 좋은 일이라는 평가를 내리신다. 그 이유는 가난한 자들은 언제라도 도울 수 있으나 예수님은 항상 함께 계시지 않을 것이므로 지금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가치 있는 일임을 말씀하고 계신다. 심지어 여인이 향유를 부은 행동은 여인이 알았는지 몰랐는지 드러나 있지 않지만,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일이라는 놀라운 평가를 내리신다. 따라서 그 여인의 온전한 섬김도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동시에 기억하게 될 것이라는 놀라운 선언을 하신다.
5. 신앙생활 중에 예수님을 섬기는 일이 거룩한 허비로 보일 수 있는 일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불신자들에게나 심지어 예수를 믿는 동료나 가족들에게조차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이 오해받거나 비판받았던 경험이 있습니까?
6. 여인이 드린 거룩한 허비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전해진 아름다운 미덕이 되었듯이, 우리의 개인적인 삶을 통해서나 공동체를 통해서 복음과 함께 나눌 만한 섬김의 미덕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생각해 보고 실천하도록 합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미성숙한 그리스도인들조차 가난한 이들을 돕고, 복음을 위한 헌신이 얼마나 귀중한 줄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묻습니다. 가난한 이들을 돕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재정의 청지기로서 재정 관리의 효율적인 시스템으로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리고 교회의 부흥을 위한 가장 좋은 프로그램은 무엇입니까? 물론 필요한 질문들입니다. 우리의 헌신이 낭비되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질문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에 우리의 관심이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평가는 세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효율이나 효과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섬김을 통해서 어떤 열매를 맺는지보다 우리의 섬김이 예수님을 사랑하기에 이뤄지는 일인지, 그 동기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