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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8월

완강하게 하시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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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세상에는 분명 악인들과 악한 구조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합니다. 이를 바라보며 우리는 자주 ‘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악을 내버려 두시는가? 세상의 악한 구조적 모순 역시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섭리자이심에도 불구하고, 이 죄를 내버려 두시는 이유는 분명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에서 죄와 부조리를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때로는 세상에 악을 내버려 두심으로써 더 크게 일하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깨달아가는 시간을 갖기 바랍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하나님께서 애굽에 이런 재앙들을 내리신 두 가지 이유는 무엇입니까?(1~2절)
-> 첫째는 애굽인들에게 표징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며, 둘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 표징을 전하기 위해서다.

2. 여러 재앙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관되게 바로에게 요구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는 그 재앙들에도 불구하고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3, 7, 10~11절)
-> 하나님께서는 여러 재앙들을 통해 바로에게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내셨다. 그러나 바로는 하나님의 말씀에 응하지 않았고, 신하들은 애굽이 망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그는 그 사실을 부정하며 모세의 요구에 타협안을 제시하는 등 독선에 빠져 있었다.

3. 메뚜기 재앙이 몰아닥치자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어떤 태도를 보입니까?(16~17절) 그리고 그 재앙이 그치자 어떤 모습을 보입니까?(20절)
-> 모세와 아론을 찾아 자신이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달라고 하며, 메뚜기 재앙을 그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 재앙이 그치자 다시 완악한 마음을 품고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다.

4. 하나님께서는 왜 바로가 이렇게 행하도록 내버려 두셨다고 생각합니까?
-> 여러 생각들을 나눠볼 수 있도록 한다. 바로의 악함을 내버려 두심으로써 하나님의 선하심이 드러났으며, 인간이 얼마나 악하며 신실하지 못한지가 드러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권능과 심판이 준비됐다.

5. 바로와 같은 악인들과 사회, 문화적인 부조리까지도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계심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세상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합니까? 각자가 처한 곳에서 일어나는 여러 부조리한 일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고 있습니까?(참조 롬 9:17~18)
-> 우리 주위에 악한 자들이 살고 있고 우리가 악한 문화 가운데 사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으며, 언젠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을 인정한다면 오래 참음으로써 하나님의 섭리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각자의 삶 가운데 겪는 어려움들이 무엇인지 나누고, 그것을 어떻게 인내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6.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이 혼재하는 이 세상에서 뜻하신 계획을 통해 역사를 이끌고 계십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때, 우리는 삶에서 당하는 고난과 고통을 새로운 시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각자의 삶 가운데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지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며 서로 격려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나일 강이 피로 변하는 재앙부터 본문의 메뚜기 재앙에 이르기까지 바로는 일관되게 완악했습니다. 그의 악함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큰 위협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악함을 통해서 자신의 위대한 능력을 드러내셨습니다. 재앙의 시간 동안, 바로도,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팔을 봤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악한 문화조차 하나님의 영광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악인들에 의해 희생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이 결국 세상을 이기는 참된 승리로 변하게 하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악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세상에 살지만,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소망이 오늘도 우리를 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