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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교회의 급속한 부흥을 경험한 세대는 오늘날의 교회를 보고 침체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복음이 더 이상 사회로 침투하지 못하고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듣고 있는 가운데, 은혜의 샘이 고갈됐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모습을 목격한 제자들도 하나님의 역사가 이제 끝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구세주로 믿고 그분을 따른 만큼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제자들에게 절망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이런 절망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예수가 죽었다는 소식으로 가득한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외칩니다. 군중이 보기에 바보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선포하도록 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복음 전도의 원동력을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종교 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없애려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25~32절) 그들은 무엇을 두려워합니까?(28절)
->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다시 전했기 때문에 그들을 없애려고 했다. 사도들의 가르침에 동조한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책임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돌릴까 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2. 가말리엘이 종교 지도자들에게 제시한 방안은 무엇이며, 종교 지도자들이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 설득력 있는 근거는 무엇입니까?(38~39절)
-> 가말리엘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사도들을 상관하지 말라고 제안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도우시지 않는 운동은 언제나 무위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3. 사도들이 받은 처벌은 그들이 어떤 신분으로 취급받은 것을 보여 줍니까? 이에 대해 사도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40~41절)
->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채찍질하고 풀어준다. 이것은 사도들을 죄를 범한 괴수로 최급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한 고난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이를 기뻐했다.
4. 사도들은 예수님의 명령대로 복음을 전했지만 고난을 당합니다. 그들이 고난도 기쁨으로 여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참조 벧전 4:12~13)
->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고난에 동참하는 자들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영광 받으실 때 이에 동참하게 된다.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고난당하시고 영광 받으신 모습을 보면서 그와 동일한 길을 갈 수 있는 특권을 귀히 여긴 것이다.
5.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모욕적인 취급을 받았지만, 복음은 계속해서 확산되고, 심지어 제사장들 가운데서도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이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전할 때 받는 모욕을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습니까?
6. 우리가 복음을 전하기로 작정한 사람이 교회로 올 때까지 복음 전도에 낙심하지 않고 힘쓰기 위해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전도 대상자를 교회로 인도할 계획을 서로 나눠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사도들을 처벌하기 위한 의회가 열렸을 때, 가말리엘은 지혜로운 제안을 합니다. 그는 만약 사도들의 계획과 활동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망하고 말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더욱 널리 확산됐습니다. 이 일이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의 말을 부정한 제사장들 가운데에서도 많은 이들이 회심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많은 고난과 비웃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난이 복음의 확산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며 복음 전도자의 길을 기쁨으로 완주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을 보며, 복음을 거부한 자들이 주님께서 돌아가는 역사가 일어나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한 주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