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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과학이 발전한 시대를 사는 사람만이 죽은 자의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세상은 부활을 부인하는 자들로 가득합니다. 심지어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확신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부활의 희소식을 어떤 마음으로 전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복음을 우습게 여길까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한 적은 없습니까? 그리스도의 부활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보라고 반박당할까 봐 주눅 든 적은 없습니까?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담대히 선포하지 못하면 기독교의 믿음은 하찮은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보냄을 받은 자들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 앞에서 사도들이 어떻게 복음을 외쳤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본문에 기록된 사도들이란 누구를 가리킵니까? 그들은 누구에 의해서 어떤 이유로 갇히게 됩니까?(1∼3절, 13절)
-> 사도들이란 베드로와 요한을 가리킨다. 그들은 제사장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붙잡히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들어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난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2. 제사장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부활한 사실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이 문제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참조 23:6~8)
-> 제사장들은 사두개파의 일원이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23:8) 사도들의 말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고 위기를 느껴 사도들을 체포한 것이다.
3. 사도들은 공회에서 누구의 이름으로 병자를 고치고, 죽은 자의 부활을 선포했다고 말합니까? 종교 지도자들은 왜 사도들을 풀어 주게 됩니까?(10절, 13~14절)
->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이 행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했다고 고백한다. 공회에 모인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의 담대함과 학식, 그리고 기적의 장본인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어서 그들을 풀어 준다.
4. 당시에 정치적, 사회적 권세까지도 함께 갖고 있던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들의 모습을 볼 때 무엇을 느낍니까?
5. 우리 주변 사람들은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그들의 비난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우리 마음에 어떤 영향이 있습니까? 그에 대해 지금까지 어떤 방법으로 대처해 왔습니까?
6. 복음을 증거하는 일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입니다. 이번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담대히 선포하기 위해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무엇을 실천하겠습니까?
삶의 열매를 거두며
사도들은 성령이 충만해 종교 지도자들 앞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합니다. 학식이 많고 정치적, 사회적 권세까지 갖고 있던 지도자들 앞에서도 전혀 주눅 들거나 위축되지 않은 모습으로 담대히 복음을 선포합니다. 이처럼 사도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을 때에 하나님의 역사도 함께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종교 지도자들은 비난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제외한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같은 유식한 과학주의자들, 물질만능주의자들, 인본주의자들 앞에 서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도 복음은 능력이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생명의 진리임을 굳게 믿는 모습으로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있는 복음의 능력을 확신하고 이를 담대히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