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7년 07월

우리 아버지 하나님

과월호 보기


마음의 문을 열며

어느 시대, 어느 지역, 어느 집단에나 비슷한 이들끼리 세력을 형성하고 자신들과 다른 이들을 배척하는 악한 성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도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주어지며, 이방인이 구원을 얻으려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유대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성도 대부분이 이방인이었던 갈라디아교회는 이런 가르침을 접하자 지금껏 살아오던 방식을 바꿔 유대인처럼 살아야 하는지를 놓고 큰 혼란에 빠집니다. 바울이 이 소식을 듣고 쓴 갈라디아서의 서두만 봐도 그가 무엇을 가르칠지를 짐작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가르치고자 한 진리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바울은 하나님을 어떤 분이라고 말합니까? 또 그리스도께서는 누구를 건지시고, 누구의 죄를 대속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까?(1, 3~4절)


2. 유대인인 바울이 이방인인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바울은 자신이 누구로 인해 사도가 됐음을 밝힙니까? 또한 그가 강하게 부인한 것은 무엇이며, 그가 이 같은 사실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1절)


4. 당시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개에 비유할 정도로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인 바울이 이방인인 갈라디아 사람들을 멀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5. 복음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치적 입장이나 문화적 차이, 지역감정이나 빈부와 사회적 격차 등 모든 인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한 형제입니다. 우리 안에는 인간적 기준을 잣대로 차별하는 모습은 없습니까?


6. 우리 교회와 공동체 구성원들이 서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이번 한 주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일을 나눠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유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을 기준으로 삼고, 이방인들에게 자신들과 같이 되라고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복음을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주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됐다는 말은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지금 그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로부터 났고, 예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안에서 출신 배경이나 사회적 지위, 정치적 성향 등의 차이는 서로 인정하고 포용해야 할 요소이지, 서로를 나누는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나와 다른 사람, 우리와 다른 사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돌아보고, 판단하기보다 포용하는 것을 먼저 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