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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자유를 얻은 자들이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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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며

에리히 프롬이 『자유로부터의 도피』라는 책에서 지적했듯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며 싸웠던 유럽인들은 정작 근대 사회에 와서는 자유를 버리고 나치즘이나 파시즘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실제로는 자유에 대해 잘 모르고, 그것을 누리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입니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자유를 주신 분입니다.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자유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란 무엇일까요? 성도로서 자유를 누리는 자는 어떤 삶을 사는 사람들인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말씀의 씨를 뿌리며
1.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무엇을 위해 부르심을 입었습니까? 이때 그들이 하지 말아야 할 행동과 행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13절)


2. ‘자유’와 ‘종노릇’은 서로 모순된 것인데, 바울이 이런 가르침을 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14~15절)


3. 자유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기 위해 따라야 할 것은 무엇이며, 이는 어떤 삶을 의미합니까? 이런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나타나는 결과는 무엇입니까?(16~18절, 참조 22~23절)


4. 자유를 위해 부름받은 사람은 율법의 규정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으로 종노릇하는 삶과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에서 무엇을 느낍니까?


5.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란 윤리적 방종을 의미하지 않으며, 율법에 얽매이지 않지만 성령의 인도하심을 누리며 사랑으로 섬기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까?


6. 혹시 자신이 윤리적 방종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 또는 반대로 율법주의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분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자유를 누리는 삶을 살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생각해 봅시다.


삶의 열매를 거두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제 죄나 율법이 우리를 좌지우지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자유에 대해 잘 알지 못하면 자유와 방종을 구분하지 못해 죄의 영향력 아래로 들어가거나, 반대로 자유는 너무 불편하니 차라리 구체적이고 세세한 규칙들을 정해 달라고 요구하며 율법의 지배 아래로 들어가기도 합니다. 이런 반응은 사람이 육체의 욕심, 곧 인간의 죄성에 붙잡혀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 안에서 깨어 있지 않으면 교회 내에 이런 양극단, 즉 방종이나 율법주의가 자라나기 쉽습니다. 각자의 삶과 공동체의 모습을 살펴보며, 참된 자유를 누리는 성도와 공동체로서 변화돼야 할 부분은 없는지 점검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