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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9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삶

과월호 보기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향기를 세상에 온전히 드러내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구별돼야 하고, 세상이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함으로 무장해, 세상에 도전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당시 고린도지역은 우상 숭배와 음란한 문화가 도처에 깔려 있어서, 거룩함을 온전히 지켜 내며 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을 가르칩니다. 고린도전서 9~16장을 묵상하면서,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복음에 참여하는 자의 모습(고전 9:1~27)
바울은 먼저 자신에게 경제적, 업무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도권이 있음을 주장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율법에도 인정된 자신의 사도적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복음 전파에 장애가 되지 않으려고 힘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바울은 유대인·이방인·약한 자들에게 각각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야 할지도 기술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섬세하게 배려합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답게 오직 복음에 집중하며, 영혼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스스로 종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또한 바울은 복음에 참여하는 자라면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 모든 면에서 절제하며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처럼 바울은 세상에서 구별된 그리스도인은 모든 가치 선택에 있어서 복음 전파를 가장 우선에 두고, 자신의 몸을 쳐서라도 이를 행해야 함을 몸소 보여 줍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고전 10:1~11:16)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구별되려면, 무엇을 용납하고 배격할 것인가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당시 고린도지역에는 우상 숭배를 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시장에서 매매되는 고기들 대부분이 우상 숭배 의식을 거친 고기였습니다. 이로 인해 고린도교회 안에서는 이 고기를 먹는 것에 대한 옳고 그름에 관한 논쟁이 발생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교만하지 말고 항상 넘어질 수 있음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사실 바울은 우상에게 아무 능력이 없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죄가 스며들지 못하도록 철저히 자신을 구별해야 하기 때문에, 신전 앞에서 벌어지는 우상 숭배 의식에 참여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의식에 참여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따를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허락하실 것을 믿고 구별된 행동을 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10:1~22).
반면,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사 먹거나 불신자의 집에 초대받았을 경우에는, 음식이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었는지를 묻지 말고 먹으라고 가르칩니다. 음식이 제물로 사용됐는지를 따지는 순간, 복음 전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들과 사회적 관계를 가지면서도, 항상 자신이 구별된 자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지를 기준으로 판단한다면,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해야 할 행위가 무엇인지 분별하게 됩니다(10:23~11:1).
바울은 여자의 예배드리는 복장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당시 문화에서는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으면 부도덕한 여인으로 여겨졌기에,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는 것은 교회의 질서와 덕을 세우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전통이었습니다.
바울은 남녀가 동등하다는 정신을 가르치면서(11:11~12), 교회 안에 질서와 덕을 세우는 것이 우선임을 전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용납하고 무엇을 배격해야 하는지를 판단할 때는, 교회의 질서와 덕을 세우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의 여부가 그 기준이 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만찬, 합당한 태도로(고전 11:17~34)
바울은 성만찬에서 무질서한 모습을 지적합니다. 당시 몇몇 부자들은 성만찬모임에서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에만 급급했는데, 바울은 이 같은 행위가 세속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위이며, 교회를 업신여기고 가난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성만찬을 행할 때마다 예수님의 죽음을 온전히 기념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가 분별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죄를 지어서는 안 되며, 성만찬을 통해 성도의 교제가 온전히 이뤄져야 함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성만찬을 통해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항상 다른 성도를 배려하며 성찬에 합당하게 먹고 마시는 자가 돼야 합니다.


은사, 품위와 질서로(고전 12:1~14:40)
고린도교회에는 기독교적 은사가 아닌 이방 종교에서 받은 영감으로 교회를 어지럽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영적인 은사를 분별하는 가장 중요한 표준을, ‘예수를 주로 고백하느냐’라는 문제로 정리합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는 자만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은사를 사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는 오직 성령께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각 사람에게 다양하게 허락하셨습니다. 바울은 은사에 대한 이해를 위해 몸과 지체들 간의 관계에 대해 설명합니다. 몸의 각 지체는 서로 다른 기능을 맡고 있지만, 한 몸이기 때문에 상호 보완하며 서로 도와야 하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의 은사 사용도 경쟁이 아닌 조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은사에 따른 서열이나 차별은 있을 수 없으며, 각 사람은 자신에게 주신 은사와 직분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랑장’으로 유명한 13장도 이와 같은 문맥적 의미를 토대로 기술됩니다. 성령의 은사가 조화롭게 사용되기 위해서는, 사랑에 기반을 둬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사랑 없이 은사를 사용하면, 이 땅에 세워진 교회의 본래 기능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각기 다른 배경과 능력을 가진 지체들이 모인 교회 공동체가, 사랑으로 섬기면서 한 몸이 될 때, 교회는 비로소 세상을 향한 본질적 기능을 제대로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14장에서는 방언과 예언의 은사에 대해 말합니다. 즉 방언도 좋은 은사이지만, 예언이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은사이므로 예언의 은사를 더 사모하라고 가르칩니다. 바울은 은사 사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기준을 ‘교회의 질서와 덕을 세우는 것’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라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 품위 있고 질서 있는 은사 사용만이 교회를 살립니다.


부활, 소망의 감격으로(고전 15:1~58)
바울은 하나님의 영광과 교회의 덕을 세우는 방향으로 은사를 사용하려면, 부활신앙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칩니다.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부활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이 있었는데, 바울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수많은 증인들이 있었음을 소개하며, 부활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 강조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첫 열매이시며, 이를 믿는 자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그날 살아날 것이기 때문에, 부활을 믿는 자는 소망 있는 삶을 살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바울이 자신 있게 “나는 날마다 죽노라”(31절)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도 부활에 대한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이토록 부활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은, 부활한 몸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부활을 통해, 썩을 수밖에 없는 흙에 속한 육의 모습을 뛰어넘어, 하늘에 속한 자로 썩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됨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부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지금의 질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질서로 변화됨을 소망하면서, 죽음에 대한 걱정은 버리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며, 하나님께 승리의 찬양을 올려 드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 됨을 위해 힘쓰라(고전 16:1~24)
바울은 16장에서 성도를 위한 연보와 사역자 디모데에 대한 부탁, 향후 방문 계획, 권면 및 인사의 글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바울이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었던 것은 섬김과 헌신을 바탕으로 한 교회의 연합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 안에서 형성된 교회의 연합에 대해 중요성을 밝히며, 대다수가 가난한 유대인으로 구성돼 있는 예루살렘교회 성도를 돕는데 힘쓰자고 권면합니다. 바울의 이 같은 권면은 대부분 이방인으로 구성된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가슴을 울리며, 섬기고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에서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 살려면, 항상 복음에 참여하는 자로 준비돼야 합니다. 이를 위해,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복음 전파에 더 유익한 것을 고민하며, 무엇을 먹든지, 어떤 은사를 사용하든지 간에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부활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이 땅의 것에 집중하지 않으며 영원한 삶을 사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묵상을 통해, 이와 같은 삶의 자세를 갖추고, 교회의 질서와 덕, 하나 됨을 완성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