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사람들이 소망 없이 사는 이유는 신뢰할 수 없는 자신을 의지하고, 헛된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회복은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일입니다. 그러기에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은 사라지고, 참과 거짓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혼돈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놀랍게도 이런 모습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했으며, 요엘과 미가가 살았던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요엘과 미가를 통해 말씀하신 참된 회복이란 무엇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함께 묵상하며 깨닫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요엘과 미가의 주요 메시지
요엘은 메뚜기 재앙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도록 촉구합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에 담긴 의미대로 ‘여호와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위해 힘썼는데, 그의 메시지는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돌아가야만 참된 회복이 일어남을 알게 합니다. 요엘이 말하는 이스라엘의 참된 회복은 하나님의 영이 임해서, 열방을 심판함으로써 성취됩니다. 미가는 이사야와 동시대인으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합니다. 미가서는 ‘심판’, ‘정화와 소망’, ‘하나님과 메시아 왕국의 확립’으로 정리되는데, 하나님의 왕국과 메시아가 나타남으로써 온전한 회복이 이뤄짐을 드러냅니다.
성전에 모여 부르짖으라(욜 1:1~2:17)
요엘은 “브두엘의 아들”이라는 호칭 외에 정확한 설명이 나와 있지 않습니다. 요엘이 사역했던 시대는 불확실하나, 기록된 내용을 보면, 바벨론 포로 후기가 시대적 배경으로 보입니다. 요엘은 메뚜기 재앙을 토대로 언약을 기초로 사는 삶과 고난의 의미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동안 누리던 세상의 즐거움과 평안을, 절망과 근심으로 바꿔 놓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경제적 기반은 완전히 파괴돼, 성전에 예물도 드릴 수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욜 1:1~12).
이런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요엘이 백성에게 요구한 것은 금식을 정하고, 성회로 모여 함께 회개하며 부르짖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금식을 통한 기도는 오직 인간만이 드릴 수 있는 거룩한 행위로써, 하나님만 의지하겠다는 철저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결국 요엘은 금식을 통해 부르짖는 기도만이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 의지해 살았던 지난날을 돌이키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유일한 길임을 선포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옷을 찢는 것은 비통함을 나타내는 행위인데, 이는 어느 순간 이스라엘 백성에게 형식적인 행위로 굳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는 것입니다(욜 1:13~2:17).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의 날이 두려운 날이 아닌 승리의 날로 여겨지려면, 자기 백성에게 고통까지 허락하시면서 돌이키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결국 회개만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여호와께서 거하시게 하라(욜 2:18~3:21)
요엘은 모든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갔을 때, 하나님께서 메뚜기 떼를 없애시고, 새 포도주와 기름으로 그들을 풍족히 먹이실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결국 국가적 위기 사태를 해결하시는 분이 여호와이시기에, 백성은 재앙으로 인해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욜 2:18~26).
그 후 하나님께서는 고통의 아픔을 깨닫고 돌이켜 부르짖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는 때에 모든 차별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면, 백성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됩니다. 결국 전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으로 인해 최후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포도주와 젖이 흐르고, 시내에 물이 흐르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나오는 축복은 오직 하나님께서 거하셔야만 가능합니다(욜 2:27~3:21). 그러므로 이방 민족을 통해 보여 주셨던 심판의 잣대에서 벗어나 회복의 능력을 경험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내 안에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있도록 항상 거룩함을 지켜야 합니다.
앞서 행하시는 이를 따르라(미 1:1~2:13)
미가는 모레셋 출신으로, 요람, 아하스, 히스기야 통치 시대에 여호와의 주권과 유일성에 대해 선포한 선지자입니다. 당시 상황을 보면 앗수르의 팽창과 위협은 남유다 입장에서 큰 숙제였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미가는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하나님의 백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합니다.
미가는 백성의 우상 숭배와 지도자들의 죄악에 대해 냉철하게 지적합니다. 당시 지도자들은 앗수르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대처를 도외시하고 백성을 수탈하며 악을 행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공동체의 존립과 국가의 근간을 훼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한 개혁 없이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습니다(미 1:1~2:11).
이때 미가는 회복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은 자들을 모으시고, 선두에 서서 길을 여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길을 연다는 것은 불의와 억압과 착취가 일상화된 악한 현실을 왕이신 여호와께서 직접 앞서 행하심으로 변화시키시겠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앞서 일하실 때 비로소 회복이 시작됩니다.
여호와의 도를 배우고 행하라(미 3:1~5:15)
미가는 정의와 선을 바로 세워야 할 지도자들이 백성을 수탈하며,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모습을 지적합니다. 지도자는 백성을 돌볼 특권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 특권을 백성을 죽이는 데 사용했으니,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리 없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성전 건물과 예루살렘 성벽을 신뢰했으며, 하나님께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습니다(미 3:1~12).
이런 그들에게 미가는 성전과 예루살렘성이 파괴될 것이라는 말씀을 전합니다. 또한 성전이 무너진 시온산에 이방 사람들이 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듣는 일이 일어날 것을 선언합니다. 결국 진정한 회복은 성전 자체가 아니라, 그곳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통해 이뤄짐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칼을 쳐서 보습을,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재판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오직 이 세상의 참된 평화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음을 알게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저는 자, 쫓겨난 자, 환난받은 자들이 함께 모여, 강한 나라를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를 배우고 행하는 자라면, 자신의 상황과 상관없이 진정한 회복을 누리게 됩니다(미 4:1~13).
또한 미가는 이스라엘을 회복시킬 메시아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스라엘의 성전, 성벽, 종교 질서, 제사 의식 등이 파괴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장차 메시아를 통해 새로운 토대를 세우실 것을 선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백성이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참된 이스라엘을 세우실 것인데, 이렇게 메시아를 통해 재건되는 왕국이야말로 진정한 회복의 완성입니다(미 5:1~15).
주만을 믿음으로 고백하라(미 6:1~7:20)
미가는 산과 땅을 증인으로 세우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어기신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출애굽 사건, 발락이 발람을 고용해 저주하게 만든 일 등을 통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도우셨는지를 바로 보게 합니다(미 6: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정의를 행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물론, 부정부패도 저지르지 않습니다. 또한 의미 없는 종교 행위로 전락한 예배를 그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미 6:6~16). 하지만 현시점의 이스라엘은 안타깝기 그지없는 모습일 뿐입니다.
미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자가 없음에 절망하면서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며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미 7:18)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만이 진정한 회복을 일으킬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회복의 시작과 완성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받은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실 회복을 기대하며, 말씀과 찬양, 기도로 무장돼야 합니다. 이렇게 이 땅의 남은 자로 살며 하나님께 돌아가는 자들은, 여호와의 날에 완전한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완전한 회복의 날을 소망하며, 경건한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