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마태복음은 ‘천국(하늘나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는 ‘하늘에 세워질 나라’가 아니라 이 땅 위에 세워질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로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을 의미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통해 이스라엘이 새롭게 됨으로써 새로운 시대, 곧 천국의 시대가 열렸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 천국의 시대가 누구를 통해 어떤 모습으로 열리게 됐는지를 설명합니다.
세상으로 파송된 제자들을 통해 세워질 천국(10장)
천국은 예수님과 같은 권세를 가진 그분의 제자들이 세상에 파송됨으로써 세워집니다. 마태복음 9장까지의 내용에서는 예수님께서 홀로 사역하셨지만, 이제 새로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열두 제자를 파송하심으로써 천국을 이 땅에 도래시키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추수할 일꾼’(9:38)으로서 권능을 받아(10:1)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집니다.
천국이 새롭게 된 이스라엘이라는 사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방인이 아닌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 가라고 하신 것에서 잘 나타납니다. 이는 유대인들만을 구원하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새롭게 세우실 참 이스라엘이 구약 이스라엘의 전통을 잇는, ‘먼저는 유대인’(롬 1:16)을 구원하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제자들의 사명은 바로 천국의 도래를 선포하는 것으로서, 대가를 받고 일하는 여느 직업과는 달랐습니다(10:8). 제자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만으로 먹고살면서 세상에 복음을 전했습니다(10:10).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는 행동 강령은 이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됩니다(10:18, 22).
제자들은 ‘이리 가운데 보내진 양’과 같아서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10:16). 그러나 이는 세상을 두려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10:26). 제자들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천국 복음을 최우선순위에 두고 살게 되며(10:34~38), 그들이 세상에서 포기한 것들보다 더 큰 상을 받게 됩니다(10:42).
세상을 침노할 천국(11~12장)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보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지를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모습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예언들이 성취되고 새 시대가 열렸음을 보여 줍니다(11:2~6).
유대인들은 그리스도가 나타나 군대를 결집해 세상 나라, 곧 로마로부터 독립을 얻어낼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상에 도래하게 하신 천국은 군사적으로 세상을 침노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상식과 불합리한 질서, 그리고 기득권을 쳐서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오랜 세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던 영적 특권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말씀을 따르지 않았고, 세례 요한은 물론 예수님의 말씀과 기적도 비난하며 따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지역의 유대인 도시들이 수많은 권능을 보고서도 믿지 않았음을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말씀합니다(11:21~24). 그러나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가르침, 곧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버리고 자유와 쉼을 누리게 됩니다(11:29~30).
새로운 가치관이 등장하면 기득권자들이 반발해 갈등이 일어나게 마련입니다. 갈등은 특히 안식일 규정을 중심으로 첨예하게 드러납니다. 바리새인들은 길을 가다가 밭의 이삭을 조금 잘라 먹는 것도 추수와 타작이며, 의료행위 역시 의사가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이므로 안식일에는 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12:2, 10).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불합리하고 비인간적인 주장을 비난하시며, 안식일에도 치유 사역을 계속하셨습니다. 이에 할 말을 잃은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권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로부터 왔다고 비난하며, 수많은 기적들을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12:24, 38). 이것이야말로 성령, 곧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로서 용서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12:31~32). 결국 유대인들은 선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자들이 되고 맙니다(12:41~45).
이후 예수님께서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을 때 하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12:50)라는 말씀은 천국이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성향을 갖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천국은 이와 같이 세상을 침노합니다.
천국의 형태와 본질(13장)
13장은 천국이 세상에 어떤 모습으로 임하는지를 명확하게 가르쳐 줍니다. 한마디로 천국은 ‘뒤섞여 있고, 눈에 잘 띄지 않는’ 존재입니다. 천국은 모든 이에게 선포되지만, 그중 일부인 ‘좋은 땅’에 해당되는 사람들만 받아들여 열매를 맺습니다(13:1~23). 그렇기에 좋은 씨앗과 같은 천국의 아들들은 세상에서 가라지와 같은 악한 자의 아들들과 함께 뒤섞여 그 사이에서 영적 전투를 감당해야만 합니다(13:24~30, 36~43).
그러나 이런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비록 현재는 천국이 겨자씨 한 알, 가루 서 말에 들어간 누룩같이 작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지만 결국은 세상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힘을 갖습니다(13:31~33). 그러므로 이 천국은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소유해야 할 보물입니다(13:44~46). 물론 현재는 천국에 속할 자와 속하지 않을 자들이 뒤섞여 있지만, 마지막 날에는 그들이 분리될 것입니다(13:47~50).
유대인이라고 해서, 예수님과 가깝게 지냈다고 해서 천국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던 사람들,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건에서 이 사실이 잘 드러납니다(13:53~58). 천국은 오직 믿어 영접하는 자들의 것입니다.
세상 나라와 천국의 차이(14~15장)
이제 천국과 세상 나라가 어떻게 다른지 선명하게 드러나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먼저 세상 권세를 대표하는 헤롯과 예수님이 대조됩니다. 분봉 왕 헤롯은 모든 권세를 다 가진 것 같지만 실상은 두려워하고 주위의 눈치를 보는,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존재입니다(14:1~9). 그가 벌인 잔치는 선지자 세례 요한의 머리가 소반에 담긴, 하나님의 원수됨이 확증된 죽음의 잔치였습니다(14:10~11).
그에 비해 예수님께서는 왕궁이 아니라 빈 들에서 생명 잔치를 벌이십니다. 헤롯처럼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수많은 무리를 섬기는 왕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십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사건을 재현한 것입니다(14:13~21).
또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배에서 바람과 물결로 고생할 때에 물 위를 걸어 그들에게 오시고,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홍해를 가르시고,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먹이시며, 요단 강을 멈추게 하셨던 “I AM”(14:27),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십니다(14:24~33).
이후 유대인들의 종교적 권세와 대조해 천국의 권세가 설명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유대인들이 종교적인 율례, 관습, 전통은 지키면서도 정작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을 지적하십니다(15:3~14). 그들은 표면적인 율법을 지키는 데 모든 관심을 기울였지만, 정작 문제는 자신들의 내면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습니다(15:16~20).
결국 천국은 이방인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구원은 귀신 들린 딸이 있는 가나안 여인과 같은 유대인들이 보기에 가장 부정한 존재지만 자신을 낮추며 오직 믿음으로 은혜를 간구하는 자에게 돌아갑니다(15:21~28). 그리고 유대인에게 주어진 오병이어의 기적과 같은, 이방인들도 함께 참여했을 것으로 보이는 칠병이어의 잔치가 벌어지고, ‘이스라엘의 하나님’(15:31)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15:29~39).
“예수는 그리스도”, 그 참 의미(16장)
다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 즉 그리스도라는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합니다(16:1). 그들은 수많은 치유와 기적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과 동행했던 제자들마저 ‘빵’의 문제에 붙잡혀 예수님의 진의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보입니다(16:7). 결국 더욱 확실한 표적, 곧 요나의 표적(16:4)이 필요했습니다. 병 고침과 귀신 축출, 오병이어, 칠병이어와 같은 놀라운 기적들도 완전한 그리스도의 표적이 될 수 없음이 드러납니다.
이런 무지는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이뤄진 베드로의 고백을 시작으로 하나씩 깨지기 시작합니다.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의 말과는 상관없이, 예수님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합니다. 이 고백은 교회의 기틀이 되고, 천국의 혜택과 권세를 누릴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16:16~19). 그리고 이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교회가 바로 새로운 이스라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제자들의 무지가 다 없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가르치셨는데, 방금 바른 고백을 했던 베드로가 이에 반기를 들다가 예수님께로부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책망을 듣습니다(16:21~23). 그들은 아직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과정은 바로 그 의미를 밝혀가는 시간이 됩니다.
지금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천국을 선포하며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권세가 세상을 침노하고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것을 목격하는 삶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 모두 이 사명을 발견하고, 함께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거룩한 주의 백성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