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말세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이 세상의 종말이 앞당겨지기를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말세를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본을 보여 주셨는지를 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12월에 묵상할 마태복음의 마지막 부분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종말의 삶에 대한 가르침과 십자가를 통해 성경의 모든 예언을 이루셔서 종말을 시작하신 일이 기록돼 있습니다.
말세를 사는 제자들의 사명(24~25장)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님의 비판, 그리고 성전이 무너지리라는 예언(23장)은 제자들에게도 충격이었습니다. 유대인에게 세상의 중심은 예루살렘 성전이며, 성전 파괴(23:38)는 곧 세상의 종말이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언제 이 일이 임할지 질문합니다(24:2~3).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제자들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성전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의 기존 질서가 무너지겠지만, 이는 종말의 예표일 뿐 세상의 끝은 아니었습니다(24:6). 다만 구약의 이스라엘 시대가 끝나고, 신약의 교회 시대가 열릴 뿐입니다.
물론 세상의 종말은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치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산모가 호된 진통을 여러 번 겪듯이, 세상에는 성전이 무너지는 것과 같은 격변이 이어지겠지만 아직은 끝이 아닙니다.
소위 자칭 그리스도라 하는 자들이 나타나고 전쟁과 기근, 지진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반복해서 일어날 일들일 뿐, 세상의 끝은 아닙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예상하지 못한 때에 이뤄질 것입니다(24:36~44).
예수님께서는 종말을 살아가는 제자들에게 여러 비유로 가르치십니다. 우선 재림의 시기를 예상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충성되고 지혜로운 종(24:45~47)과 여분의 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25:1~13)는 모두 주인(신랑)이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을 염두에 둔 사람들입니다. 이에 비해 악한 종은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예상했고(24:48~51),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신랑이 ‘금방 오리라’고 예상했기에 천국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제자들은 ‘언제 주님이 다시 오시는가?’가 아니라 ‘주님께서 내게 무엇을 맡기셨는가?’에 집중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종(25:14~23)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집중하는 자가 천국에 합당합니다. ‘사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재림 때에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본 의인(양)을 칭찬하고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25:31~40).
이에 비해 악인(염소)으로 구분된 이들은 약한 자들을 핍박한 게 아니라 단지 돌보지 않았을 뿐입니다(25:41~46). 마치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놓았던 악한 종처럼, 염소로 구분된 자들은 소극적인 태도로 맡겨진 사명을 실천하지 않아 ‘마귀에게 예비된 영원한 불’에 던져지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제자라면, 적극적으로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엄중하게 선언되고 있습니다.
말씀을 성취하는 그리스도(26~27장)
이제 본격적으로 예수님께서는 예언을 성취하시고, 구약 시대를 마감하십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다윗의 후손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하셔서 그 대적을 심판하심으로 새롭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리라고 예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 예언을 성취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은 당시 사람들의 기대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은 왕(그리스도)으로 즉위하시는 대관식이며, 다윗의 왕조가 회복된 사건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예수님은 기름 부음을 받으시는데, 왕궁이 아니라 베다니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서, 대제사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 여인에 의해 이뤄집니다(26:6~13). 마태는 이 사건의 앞뒤에 예수님을 죽이려 모의하는 자들(26:1~5, 14~16)에 대해 기록하는데, 이는 “세상이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시 2:2)하리라는 예언이 성취됐음을 보여 줍니다.
말씀의 성취는 예수님께서 전적으로 주도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떡과 포도주로 새 언약을 맺으심으로써 성전에서 드려질 모든 제사를 완성하십니다(26:26~29). 또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했던 것처럼, 제자들이 배신하고 흩어지며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아셨지만(26:25, 31~34), 성경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 제자들에게는 구원의 잔을 주시고, 자신은 죽음의 잔을 받으셨습니다(26:28, 39).
반면, 제자들은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의 처음이자 마지막 부탁마저 들어드리지 못했고,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끝까지 함께하겠다던 맹세를 저버리며 뿔뿔이 흩어지고 맙니다(26:40~46, 56). 그런데 예수님께서 아무 저항 없이 잡히시고, 제자들이 허무하게 흩어진 일 역시 성경 예언의 성취입니다(26:54).
이후 대제사장은 자신의 집에서, 베드로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고백했던 것과 같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임을 확정합니다(26:63~65). 역설적으로, 원래 그 고백을 했던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의 제자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맙니다(16:16, 26:69~75).
그러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의 연약함에서 느껴지는 안타까움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수난을 당하시리라는 예언이 그대로 이뤄졌다는 사실은 부활의 예언 역시 이뤄지리라는 기대와 확신을 갖게 합니다.
구약에서 수없이 예언된 다윗의 후손이 그 대적을 심판하리라는 말씀 역시 그대로 이뤄집니다. 우선 배반자 가룟 유다는 스스로 목매 죽습니다(27:3~5).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유다가 성전에 던져 넣은 은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삼은 것 역시 말씀의 실현입니다(27:9~10). 이스라엘의 대적이었던 로마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임을 확인했고(27:11), 유대인들의 요구에 굴복해 예수님을 십자가, 곧 그 왕좌에 앉으시게 합니다(27:26).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눈에는 비참하기 짝이 없는 십자가의 대관식을 묵묵히 진행해 가셨습니다. 군대의 사열 대신 병사들의 조롱하는 경배를 받으셨고(27:27~30), 그 보좌, 십자가의 양옆에는 강도들이 자리했습니다(27:38). 백성들은 기쁨의 환호성 대신 욕설과 조롱을 퍼부었습니다(27:39~44).
그러나 이 십자가의 대관식이야말로 진정한 영광의 사건이요,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주의 날에 있으리라는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하게”(암 8:9) 하는 일이 일어나고(27:45), 하나님께 버림받은 의인의 외침이 하늘에 상달돼(27:46) 성소 휘장이 위에서 아래로 찢어지고, 땅이 진동하며 죽었던 성도들이 다시 일어나는 놀라운 사건이 벌어집니다(27:51~53). 백부장이 예수님께서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하는 모습은 세상의 권세가 십자가, 그 보좌에 앉으신 예수님께 굴복했음을 보여 줍니다(27:54).
마태복음의 시작과 끝에 요셉이 등장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합니다(1:18~19, 27:57). 두 사람은 모두 문자적인 순종이 아닌 율법의 참된 의미를 알고 순종한 의인들이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예수님을 애굽으로 인도했듯이(2:13~15),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을 무덤으로 인도해(27:57~60) 다시 세상에 나타나시도록 준비합니다.
이에 비해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막기 위해 빌라도의 힘을 빌립니다(27:64). 그들은 성전과 율법의 대표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막으려고 로마의 권세를 의지하는 악인의 대표입니다. 결국 군병들이 무덤 앞에서 시체를 지키는, 산 자가 죽은 자를 지키는 희극이 벌어지고 맙니다. 그런데 이는 대관식을 마친 왕이 그 처소에 들었을 때 군병들이 호위하는 모습입니다. 악인들은 어떻게든 예수님의 부활을 막으려 했지만, 그것은 예수님의 왕 되심을 더욱 확고하게 선포하는 데 사용될 뿐이었습니다.
새 시대를 여는 그리스도(28장)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일어난 이변들은 곧 세상의 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됨을 알립니다. 새 시대를 여는 자들은 바로 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세상에 알려 새 시대, 곧 천국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증인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는 두 종류의 증인들이 나타났는데, 하나는 천사들의 격려를 받은 여인들이며(28:5~7), 다른 하나는 대제사장의 회유를 받은 경비병들입니다(28:12~14). 여인들은 열한 제자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며 갈릴리로 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했고, 경비병들은 돈과 정치적 권세에 굴복해 유대인들에게 거짓을 전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권세를 업은 대제사장은 유대인들을 거짓으로 현혹했지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의 복음은 모든 민족에게 향합니다(28:18~20). 제자들은 비록 두려워했고 부족했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실 것을 믿고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쳐 지키게 할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처음 시작처럼 주님의 함께하심에 대한 선언으로 마무리됩니다(28:20, 1:23). 이스라엘이 세계를 소유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선언으로 거룩한 나라를 이뤘던 것처럼(출 19:5),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신다는 선언에 의해 새 이스라엘과 교회가 새 시대를 열어가게 됐습니다.
이제 2016년을 보내고, 새롭게 열리는 한 해를 준비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의 역사를 마감하시고 새 역사를 여셨던 것처럼 우리도 과거의 아쉬웠던 모습을 청산하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순종함으로 말씀을 성취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