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5년 08월

하나님의 백성이 무너지는 이유

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1월부터 7월까지 묵상한 여호수아서와 사도행전에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 곧 이스라엘과 교회가 어떻게 세상을 이기고 정복해 갔는지가 기록돼 있습니다. 8월부터는 사사기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영적 암흑기를 살펴보려 합니다.
사사기 묵상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영적 침체는 왜 왔고,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결과에 이르는지에 대한 것이고, 둘째는 이런 영적 침체 가운데 있는 자신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고, 어떤 사람을 세우시며, 어떤 모습으로 구원하시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리더십의 위기, 흐려지는 언약(1:1~3:11)
사사기 1장의 첫 부분(‘여호수아가 죽은 후에’)은 여호수아서(‘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1장의 첫 부분을 연상시킵니다. 하지만 사사기는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와 그 당시 세대를 온전한 모습으로 이어받지 못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사사기에는 모세나 여호수아와 같은 ‘여호와의 종’(수 1:1, 24:29)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리더십은 유다 지파에게 주어졌지만, 유다 지파는 온 이스라엘을 이끌 만한 리더십이 없었는지 시므온 지파와만 함께 전투에 임합니다(1:3). 이들은 가나안 족속들을 정벌하지만(1:11~15), 철 병거 앞에서 물러났기에 그 승리는 완벽하지 못했습니다(1:19).
그래도 남쪽의 유다 지파는 사명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편이었습니다. 북쪽으로 갈수록 사명의식은 약해져만 갑니다. 중부 지역의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가나안 족속을 용납하기 시작합니다(1:22~29). 북부의 아셀, 납달리는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1:32~33)했을 정도입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그들을 꾸짖자 이스라엘은 그 앞에서 소리 높여 울기도 했지만(2:1~5), 이후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세웠던 수많은 기념비들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고, 신앙의 전수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2:6~10).
이스라엘은 결과적으로 영적 악순환에 빠져듭니다.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기며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께서는 이에 진노하셔서 이스라엘이 주변 민족들에게 노략을 당하게 하십니다. 고통으로 인해 이스라엘이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워 구원하셨지만, 그 사사가 죽으면 리더십도 사라졌고 이스라엘은 다시 타락합니다(2:6~3:6).
짤막하게 제시되고 있는 사사 옷니엘의 이야기(3:7~11)는 이후 이스라엘이 어떤 일을 겪게 될지를 보여 주는 하나의 모델입니다. 옷니엘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경험한 세대로서, 두 개의 강이 흐르는 땅, 메소보다미아의 구산 리사다임 왕을 이깁니다. 이는 나일 강이 있던 애굽의 바로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모세의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그리고 이후 사사들의 사역에서도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 시대를 연상시키는 모습들이 계속해서 나타납니다. 즉 사사는 근본적으로 전쟁 영웅이기 이전에 하나님과 그 백성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에훗, 큰 자들을 제압하다(3:12~31)
왼손잡이 사사 에훗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어이없는 실소를 터뜨리게 합니다. 당시에 왼손은 부정한 손으로 여겨졌기에 변을 본 후 뒤처리를 하거나, 동물을 도살해 그 사체를 다루는 등 부정한 일에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모압 왕의 이름 ‘에글론’의 뜻은 ‘소’(牛)입니다. 그리고 에글론은 실제 소가 도살되듯 왼손잡이 에훗에게 암살당합니다. 에훗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인 베냐민 지파였지만 실제로는 왼손잡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왼손잡이 에훗이 이 ‘소’를 도살하는 데 적임자라고 여기신 셈입니다.
모압의 신하들과 군사들 모두 몸집만 커다란 어리석은 소 떼나 다름없었습니다. 에훗이 오른쪽 허벅지에 숨긴 칼을 발견하지 못했고(3:16), 자기 왕이 오랫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음에도 그가 용변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신하들의 모습은 실소를 자아냅니다(3:24). 이후 모압 군대의 병사 1만 명이 모두 ‘장사’, 직역하면 ‘몸집이 큰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명도 도망하지 못하고 죽임을 당합니다(3:29). 이어 사사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백 명을 죽였다는 내용이 첨가됩니다(3:31). 이 역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어리석은 소 떼’ 정도로 여기셨음을 강조하는 이야기로,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드보라, 기술력을 제압하다(4~5장)
출애굽의 과정을 연상시키는 순서로 이스라엘의 대적들이 등장합니다. 애굽을 연상시키는 메소보다미아(3:7~11) 다음에는 요단 동편의 모압(3:12~31), 그다음에는 여호수아가 정복했던 가나안의 하솔 왕 야빈(4:2~3)과 같은 이름의 왕이 나타납니다.
가나안 왕 야빈은 철 병거가 주력이었습니다. 이전에 유다 지파가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 지역을 점령하고도 그 산지 거민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가 바로 이 철 병거때문이었습니다(1:19). 전쟁에 있어서 기술력의 격차는 병력 수를 뛰어넘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철을 다루는 기술이 없었던 이스라엘에게 철 병거는 커다란 위협이었습니다.
사사들 모두 당시 가치관으로 볼 때 부족한 면이 있었습니다. 에훗은 왼손잡이였고, 이후에 등장해 가나안에 대항한 드보라는 여자였습니다. 당시로서는 한 남자의 아내였던 드보라가 사사의 역할을 감당한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고(4:4), ‘천둥, 벼락’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바락이 드보라가 함께 가지 않으면 가나안과 싸우러 가지 않겠노라고 말하는 것은 더욱 의아한 일입니다(4:6~9).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연약한 여인의 손으로 철 병거를 이끄는 가나안 군대를 흩으셨습니다.
바락이 1만 명의 군대를 이끌고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이끄는 철 병거 부대 앞에 섰을 때, 하나님께서는 시스라의 철 병거와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셨습니다(4:15). 이후 드보라와 바락이 부른 노래에 의하면 ‘칼날’이란 곧 갑자기 불어난 기손 강이었습니다(5:21). 이는 홍해에서 애굽의 모든 군대가 수장된 사건을 연상시킴과 동시에, 가나안의 기술력도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는 헛된 것임을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시스라가 야엘에게 죽임을 당하는 모습도 인상적입니다. 철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하던 시스라는 여인 야엘의 손에 의해 관자놀이에 말뚝이 박혀 죽습니다. 말뚝을 박는 일은 장막생활(4:11, 17)을 하는 유목민이라면 여자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당시 최첨단 기술이었던 철기 문명으로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시스라는 유목민의 엉긴 우유 한 그릇을 얻어먹고는(4:19) 유목민의 평범한 기술인 말뚝 박기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4:21). 이를 통해 철 병거 역시 이스라엘이 두려워할 대상이 아니었음이 드러납니다.

 

기드온, 무수한 군대를 제압하다(6~7장)
기드온과 다음 달에 다룰 아비멜렉의 이야기는 사사기의 절정부를 이룹니다(6~9장). 큰 몸집의 모압과 높은 기술력을 지닌 가나안 다음에 만난 대적은 수많은 무리였던 미디안이었습니다(6:5). 이스라엘이 악을 행하자 하나님께서는 미디안을 통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없게 하십니다(6:1~5). 이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던 모든 은혜를 취소하신 것과 같습니다(6:7~10).
미디안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은 기드온을 통해 이뤄집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불렀으나, 기드온에게서 사사의 역할에 걸맞을 만한 면은 과거 그 조상들에게 주어졌던 출애굽의 구원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밖에 없습니다(6:11~13). 기드온은 자신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만한 능력이 없음을 강변하는데, 이는 모세가 호렙 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의 모습과 매우 비슷합니다(6:14~18; 출 3:11).
기드온은 자신이 여호와의 사자를 만났음을 알고 난 후, 밤에 몰래 바알의 제단을 헐며 아세라 상을 찍어버립니다(6:19~27). 이를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기드온의 집에 몰려가 그를 죽이려 하는데, 여기서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6:28~32). 이스라엘의 진정한 대적은 미디안이 아니라 동족과 이웃이었으며, 미디안의 공격이 아니라 바알 숭배가 그들을 망하게 한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기드온은 여룹바알, 즉 ‘바알과 다투는 자’라는 새 이름을 얻습니다(6:32).
사실 전쟁을 준비하는 기드온의 모습은 그다지 용맹스럽지 않습니다. 기드온이 양털 뭉치로 하나님의 뜻을 시험하는 모습은 믿음이 아니라 불안한 마음의 표현입니다(6:36~40).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드온에게 그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다고 말씀하시며 두려워 떠는 자 2만 2천 명을 돌려보내셨고, 남은 1만 명도 너무 많다고 하시며 300명만을 데리고 가서 미디안을 치라고 하십니다(7:2~8). 앞에서 밝혔듯이, 미디안의 특징은 ‘숫자가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많은 숫자에 똑같이 많은 숫자로 대응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이 두려워하지 않도록 미디안 병사의 입으로 승리를 예언해 주십니다(7:9~14). 실로 기드온과 그와 함께한 300명은 보리떡 한 덩어리에 불과했지만, 그것이 미디안의 수많은 군사들을 쳐서 무너뜨릴 하나님의 도구가 됩니다. 적병의 입에서 나온 예언을 듣고 용기를 얻은 기드온은 하나님께 경배하며 칼이 아닌 나팔, 빈 항아리, 횃불을 갖고 미디안 진영을 향해 진격했고, 미디안은 친구끼리 서로 칼로 치며 자멸하고 말았습니다(7:15~23).

 

하나님의 백성이 무너지는 것은 외부의 대적이 강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몸집이 큰 자들을 대항하기 위해 몸집이 더 큰 사람이 되려 하고, 기술력이 좋은 자들을 대항하기 위해 더 뛰어난 기술을 가지려 하고, 수많은 적군을 대적하기 위해 더 많은 군사를 모으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닙니다.
세상의 방식대로 경쟁하려 할 때 우리 가운데 세상의 가치관과 우상이 자리 잡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강해지는 길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키고, 그 안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하는 사사기 묵상을 통해 세상을 이기는 참 길을 발견하는 우리 모두가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