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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세상은 이렇게 정복된다

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그리스도인들은 성탄절이 있는 12월이 되면 함께 모여 즐거워하며 선물을 교환하고 가난한 이웃을 돌아봅니다. 계절이 일치하지는 않지만, 유대인들도 마지막 달에 부림절이라는 명절을 기념하며 비슷한 시간을 보냅니다.
에스더서는 그 부림절의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림절과 성탄절의 의미는 상당히 비슷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하시며 세상을 통치하는 왕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눅 2:11).
인간의 눈으로 보면 돈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 통치자들에게 권세를 맡기시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해하려 한다면 그들을 무너뜨려 자신의 백성에게 그 권세를 넘기시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에스더서는 그 과정을 자세히 보여 줍니다.


허세로 가득한 제국(1~2장)
에스더서는 아하수에로 왕의 크고 화려한 잔치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자그마치 180일 동안 벌어진 잔치는 자신의 권세를 과시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1:4). 바사와 메대제국의 광활한 영토와 거기 속한 많은 민족을 다스리는 왕의 사치는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권세는 껍데기밖에 없었습니다. 왕이 왕후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려 그녀를 불렀다가 와스디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바사제국의 왕이 실제로는 자신의 아내도 다스리지 못한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말았습니다(1:12). 그리고 왕후를 폐위하는 과정에서도 왕이 직접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온 땅을 다스리는 바사제국의 왕은 사실상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결국 그는 지방 관리들 앞에서 신하 므무간이 말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1:21).
하나님의 세상 정복은 이런 허세 가득한 제국 가운데 두 명의 참 신앙인,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보내심으로써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왕후 폐위 사건을 사용하셔서 이 두 사람을 왕궁에 침투시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수많은 젊은 여인들 중에서 왕후로 뽑히도록 하시고(2:17), 모르드개가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를 간파하는 공을 세우게 하십니다(2:21~23). 하나님의 바사제국 정복을 위한 포석은 이렇게 완료됩니다.

 

악인과 의인의 대결(3~4장)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다루실 때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참조 시 5:10, 10:2). 대부분 악인은 세상에서 인정받는 강한 힘을 갖고 있는데, 에스더 때에는 그 악인이 바로 하만이었습니다. 어떤 공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각 사람, 즉 아말렉 사람인 하만이 최고의 자리에 올랐습니다(3:1).
악인 하만과 대결할 자는 세상 권력과는 그리 관계가 없는, 그저 자신의 신앙을 지키려는 모르드개입니다. 그는 하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는데, 이는 그가 유다인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유다인임을 밝히지 말라고 했는데(2:20), 이는 당시 바사제국에서 유다인들이 사회적인 불이익을 감수해야 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럼에도 그는 최고 권력자인 하만의 무릎을 꿇으라는 명령 앞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당당히 밝힙니다(3:4).
모르드개 단 한 사람에게 분노한 하만은 유다인 모두를 죽인다는 악랄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리고 왕의 허영심과 탐욕을 만족시키는 제안을 합니다. 왕의 법을 지키지 않는 무익한 민족을 진멸하기 위해 은 일만 달란트라는 거액의 자금을 바치겠다고 했고, 왕은 이를 승인합니다(3:8~11). 사실 한 나라의 왕이라도 자신이 다스리는 민족들 중 하나를 진멸한다는 결정을 이렇게 쉽게 할 수는 없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리더십과 분별력은 그야말로 최악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이런 어리석음도 사용하셔서 유다인의 대적을 치십니다.
마지막 달인 아달월 13일에 유다인들을 살육하라는 왕의 조서가 공포되자 모르드개를 비롯한 유다 백성들은 절망에 빠집니다(4:1~3). 유일한 희망은 왕후 에스더에게 있었지만, 에스더 역시 왕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는 신앙으로 에스더를 설득하고, 에스더는 그에 화답해 신앙의 결단을 내립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내시 하닥을 통해 주고받은 대화 내용은 이들의 신앙이 어떤지를 보여 줍니다. 절망적인 상황이지만 모르드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시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에스더는 자신의 백성을 위해서 죽을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결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4:13~16). 그리고 그 일을 실행하기 위해 3일 밤낮을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세속의 눈으로 보면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사용하고 있는 ‘금식’과 ‘기도’라는 방법은 왕의 반지로 인친 하만의 조서에 비하면 너무나 부질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무엇이 더 강한지는 그 금식과 기도가 끝난 날에 드러납니다.

 

한순간에 역전되다(5~6장)
유다인 모두의 절망과 모르드개와 에스더 사이에 오간 비장한 대화와는 좀 어울리지 않게, 문제는 너무 쉽게 풀려나갑니다. 금식기도를 마치고 왕궁 안뜰에 선 에스더를 발견한 왕은 그야말로 그녀에게 반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왕권의 상징인 금 규를 내밀고, 그녀의 어떤 요구라도 들어주겠다고 합니다(5:2~3). 바사제국의 권력이 유다인 왕후 에스더에게 이양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아하수에로가 했던 것처럼 잔치를 준비합니다(5:4). 에스더서에서 ‘잔치’란 곧 ‘권력의 발휘’를 뜻합니다.
하만과 모르드개의 상황 역시 단 하루 반 만에 역전됩니다. 하만에 의해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했던 모르드개(5:14)는 과거 왕에 대한 암살 음모를 막았던 공적이 드러났고, 하만은 자신의 꾀에 빠져 모르드개에게 굴욕을 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6:11~12).
이 역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아하수에로의 형편없는 리더십과 하만의 극단적인 교만이 초래한 결과입니다. 자신에 대한 암살 음모를 막아낸 신하에게 아무런 포상도 하지 않고 수년이 흐른 후에야 그 사실을 깨달은 무능한 왕이 없었다면, 그리고 감히 왕의 옷을 입고 말을 타고 성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높이려 했던 교만한 신하가 없었다면 모르드개가 이렇게 단번에 영예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상 모르드개와 에스더를 비롯한 유다인들은 3일 밤낮을 금식하며 기도한 것 외에는 특별히 한 것이 없습니다. 유다인들은 실제로는 아무런 위기도 겪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금식과 기도는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보다 훨씬 강력했습니다.

 

대적이 무너지다(7~8장)
왕과 하만이 참석한 에스더의 둘째 날 잔치에서 나라의 절반이라도 기꺼이 주겠다는 약속이 반복됩니다(7:2). 에스더가 가진 권세는 하만과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막강해졌습니다. 에스더는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7:3)라는 자신의 민족 정체성을 드러내는 한마디 말로 하만을 파멸시킵니다. 결국 하만은 모르드개를 매달아 죽이려고 했던 그 나무에 자신이 달리고 말았습니다(7:9). 그리고 그의 재산은 에스더에게, 그의 권력은 모르드개에게 넘어가게 됩니다(8:1~2).
만약 하만이 유다인을 모두 죽이라는 조서를 왕의 반지로 인치지 않았다면(3:12), 하만의 죽음으로 모든 문제는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의 조서는 철회될 수 없었기에, 이 조서의 효력을 막기 위해서는 유다인이 자신들을 해치려는 자들에게 대항하게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8:8~11). 결국 “왕의 반지로 인친 조서는 누구든지 철회할 수 없다”라는 제국의 질서는 유다인들의 대적들을 멸절하는 데 사용됩니다.
이제 각 지방의 유다인들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합니다(8:17). 이미 언급한 대로, 에스더서에서 잔치는 권세를 가진 자들의 통치 방식입니다.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밝힐 때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던 유다인들이 이제는 각 지방을 다스리는 자들이 됐습니다. 아하수에로 왕과 와스디 왕후의 잔치는 그들의 권세가 껍데기뿐임을 드러냈지만(1장), 각 지방의 유다인들이 벌이는 잔치는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과 승리의 기쁨을 노래하는 자리가 됩니다.

 

승리의 잔칫날(9~10장)
아달월 13일, 즉 유대력 12월 13일은 유다인들을 죽이라는 하만의 조서와 그에 대항하고 보복하라는 모르드개의 조서가 함께 실행된 날입니다. 어처구니없지만 왕이 자신의 제국 내에서 내전을 벌이라고 명령한 셈입니다.
그러나 하만의 일족이나 심복들이 아니라면 죽은 하만의 조서를 따를 자들은 없었습니다. 결국 그날에 유다인을 두려워한 많은 이들을 통해 유다인의 대적에 대한 숙청작업이 시행됩니다. 더욱이 에스더는 기한을 하루 더 늘려 14일까지 대적들에 대한 확실한 심판을 단행합니다(9:13).
이 일을 계기로 유다인들은 아달월 13일과 14일에 잔치를 베풀고, 예물을 교환하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명절로 삼아 자손 대대로 지키게 됩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웃과 기쁨을 나누는 일을 유다인들은 부림절에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날을 통해 유다인들은 그들이 이방 나라에 살면서 무능한 권력자와 악한 이웃들 때문에 고통 받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통해 세상을 통치하고 계심을 기억하는 날로 삼은 것입니다.

 

연말과 성탄절을 맞아, 로마제국의 한 식민지에 나셔서 결국 세상을 정복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합시다. 그리고 함께 모여 먹고 마시는 잔치를 베풀고, 선물을 교환하며,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가운데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권능의 주님을 선포합시다. 에스더서를 통해 우리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기쁨을 묵상하는 12월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