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베드로전·후서, 시편 74~75편
새해가 밝았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이 단 한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았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 앞에 놓인 하루, 한 달, 한 해를 주님과 함께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을 다시금 확립하고 목적의식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사도 베드로가 남긴 베드로전·후서는 우리에게 바로 이 주제에 대한 선명한 가르침을 전해 줍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나그네(벧전 1:1~2:10)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정체성은 바로 ‘나그네’입니다(1:1). 이는 비록 우리가 이 세상 속에서 살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라는 의식입니다. 베드로는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을 ‘나그네’라 칭하며, 오직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비방과 불이익을 당해야만 했던 그들이 오히려 크게 기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1:6).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 사람들이 갖지 못한 산 소망, 썩지 않고 더럽지 않으며 쇠하지 않는 유업, 즉 영원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1:3~4).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그 나라에 속했다는 증거는 확실합니다. 그 첫째 증거이자 주관적 증거는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얼굴 한 번 직접 본 적이 없는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본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자체가 구원을 얻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1:8~9).
베드로는 여기에 덧붙여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경으로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이라는 더욱 확실한 객관적 증거를 함께 제시합니다(1:11~12). 우리가 믿고 있는 복음과 구원의 확신은 이처럼 주관적인 증거와 함께 객관적인 증거까지 갖고 있는 확실한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늘에 속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1:14~19). 베드로는 그중에서도 ‘형제 사랑’을 가장 강조합니다(1:22). 그 이유는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아갈 때, 나그네들끼리 연합하고 사랑하는 것이 무엇보다 힘이 되고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석으로 하는 공동체(2:4~5), 즉 교회를 이루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이자 ‘거룩한 나라’라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교회를 근거로 형성됩니다(2:9~10). 마치 외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코리안 타운을 형성해 공동체성을 유지하고 고유문화와 가치관을 이어가듯이, 이 땅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인 역시 교회를 형성하고 서로 사랑하며 공동체를 이뤄 신앙과 진리를 지켜가게 마련입니다. 베드로도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그들이 본향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나그네임을 잊지 말고, 서로를 사랑하며 돕고 연합해 살아갈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변혁(벧전 2:11~4:11)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로 모이기 마련이지만, 이는 세상과 벽을 쌓고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세상 속에서 그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세상을 변화시키는 공동체가 되는 것, 그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 이를 위해 베드로는 세상의 권위, 즉 법률과 제도, 왕과 총독들에게 순종하라고 가르칩니다. 이는 세상에 굴복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비방하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의 선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2:13~15).
베드로는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강한 힘이나 높은 지위를 차지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낮은 자리에서 성실하게 주인과 남편을 섬기고, 선한 생활을 실천하라고 가르칩니다(2:18~20, 3:1~6). 예수님께서도 낮아지심과 고난 받으심으로써 세상을 구원하시고 통치하시듯이 교회 역시 예수님의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2:21~25).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 내부에서부터 서로 마음을 같이하는 것이 전제돼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을 향해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사랑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3:8~9). 혹 의를 행하고도 고난을 받는다면 오히려 이를 복으로 여기며 기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처럼 세상과 다르게 행동하면서 두려워하지 않고, 늘 복음 전할 준비를 하며, 선한 양심으로 살면 결국 교회를 비방했던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3:14~16).
물론 이런 삶을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늘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라고 권면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것이 곧 ‘마음의 갑옷’이라고 표현합니다(4:1). 아무리 큰 어려움에 처한다 해도 이 갑옷을 입고 맡겨진 일을 감당해 나가는 것이 바로 교회에 주어진 사명입니다.
본이 되는 지도자(벧전 4:12~5:14)
베드로는 추신처럼 교회의 지도자들을 향한 가르침을 덧붙입니다. 우선 교회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게 마련이며, 그 고난을 이겨냄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4:12~19). 그리고 그 고난의 한가운데 있는 지도자들에게 자원함과 기쁨으로 섬기며 성도들에게 본이 될 것을 권합니다(5:2~3).
사실 그들은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5:8)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교회가 핍박을 당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심한 고난을 당하는 이들이 바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베드로는 그들에게 근신하며 깨어 믿음을 굳건히 하라고 권면합니다(5:8~9). 또한 그들이 당하는 고난은 ‘잠깐’이라고 말하고, 곧 하나님께서 그들을 강하게 하시리라는 소망을 피력하며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합니다(5:10).
붙잡아야 할 말씀(벧후 1:1~21)
베드로는 자신의 유언장인 베드로후서를 통해(1:13~14) 신앙의 후배들에게 두 가지를 신신당부합니다. 첫째는 지식이요(1:2~3), 둘째는 성품, 곧 삶입니다(1:4~7). 바른 지식이 바른 성품의 기초가 되고, 바른 성품이 다시 바른 지식을 갖게 하는 선순환이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1:8).
지식과 성품 두 가지 중에 무엇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논리적인 순서를 따지자면 예수님을 아는 것, 즉 지식이 먼저입니다. 그래서인지 베드로는 예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강조합니다. 베드로가 가졌던 예수님에 대한 지식은 말이나 글이 아니라 변화산에서 직접 목격한 그분의 영광에 근거하고 있었습니다(1:16~18). 그러나 베드로는 직접 자신이 예수님을 목격했다는 사실보다 더 확실한 것이 바로 성경이라고 가르칩니다(1:19). 베드로는 자신을 포함한 사도들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신앙의 후배들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에 대한 지식을 확고하게 가질 것을 소망합니다.
멀리해야 할 거짓 선생(벧후 2:1~22)
문제는 교회 가운데 거짓 선생들이 들어와 이 지식을 흐리게 하며, 또 많은 사람이 이들을 따른다는 데에 있습니다(2:1~3). 그들은 지식을 왜곡하기 때문에 그 성품마저 올바를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결국 잘못된 신앙이 악한 행실을 낳고, 그 악한 행실이 다시 신앙을 왜곡하는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베드로는 아무리 많은 사람이 거짓을 따른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휩쓸리지 말고 바른 지식과 그에 근거한 성품을 갖출 것을 강조합니다(2:5~7). 베드로는 악행을 서슴지 않는 거짓 선생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을 선언하며 신랄한 어조로 비판합니다. 특히 아직 신앙이 어린 자들이 이런 거짓 선생들에게 유혹당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유의해야 함을 분명히 합니다(2:12~18).
소망해야 할 재림(벧후 3:1~18)
베드로는 특별히 거짓 선생들이 주님의 재림을 부인한다는 것에 주목합니다(3:3~4). 그들은 다시 오신다 하셨던 주님께서 아직도 안 오셨으니 재림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3:4, 9). 그러나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 다르며(3:8), 주님께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때에 다시 오실 것입니다(3:10).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주님께서 약속대로 다시 오셔서 세우실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해야 합니다(3:13).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주님께서 모두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오래 참으시기 때문입니다(3:9, 15). 이렇게 베드로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고 바라보는 바른 신앙을 강조하며 다시금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3:18)는 가르침을 주고 유언을 마칩니다.
나그네의 노래(시 74~75편)
시편 74~75편은 고난 가운데 살아가지만 주님께서 다시 임재하시고 세상을 이기실 것을 바라보며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지고 그분의 통치가 거둬진 것처럼 보이는 세상을 살지만, 다시 주님의 영광이 임할 것을 믿고 기쁨과 감사 가운데 그분을 예배하고자 하는 시인의 마음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나그네로서 세상을 변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거짓 가르침을 단호히 거부하는 성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다시 오실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 이것이 우리가 꿈꾸고 이뤄가야 할 이상입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말씀을 묵상해 하나님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