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하나님께서는 21세기, 2016년에도 여전히 온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자신의 백성 하나하나를 아시고, 그 머리털까지 세시며, 죄와 악을 미워하시고, 선과 의를 높이 드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권세를 자기 백성, 곧 교회를 통해 발휘하십니다. 교회는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도구로 이 세상에 보내졌고, 지금도 그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부족한 우리 눈에 이 사실이 현실로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세상은 통치자들과 억만장자들이 다스리는 것 같고, 악한 자들의 노랫소리 배후에 억울한 자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기 전, 이스라엘 역시 같은 문제를 겪고 있었습니다. 율법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온 땅의 모든 나라 위에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다고 기록돼 있지만, 현실은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 대제국들의 세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시인들은 그 현실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의심하거나, 세상의 영역과 하나님의 영역을 이분법으로 나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눈앞의 부조리와 고통 때문에 탄식하면서도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 하나님을 믿었으며, 오히려 더욱 당당하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주권을 선포하고 노래합니다.
역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76~78편)
인간 세상에는 수많은 신들의 이야기가 존재하지만, 신화가 아닌 역사 가운데 실제로 존재하는 신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다른 신들은 가상의 공간, 인간의 상상 속에 존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현실 역사 가운데 존재하시고, 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앗수르의 군대를 물리치신 사건(76편)과 홍해를 가르고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신 사건(77:16~20)은 모두 실제 역사 가운데 일어났던 일입니다.
시인들은 이렇게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일하셨던 하나님을 노래함으로써 자신의 후대들이 하나님을 신화의 세계, 가상의 세계에 속한 분으로 여기는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지금, 바로 이곳에 계셔서 여전히 온 땅을 다스리시고, 악인들을 징벌하시며, 의인을 높이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습니다.
특별히 78편은 출애굽에서 다윗 왕조에 이르기까지의 이스라엘 역사를 개관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스라엘을 포함한 모든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을 거부하며 죄를 범했는지를 고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 베푸셨음을 기억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의 통치가 지금 눈에 선명히 보이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다른 차원에 존재하시기 때문도 아니며, 이 땅을 통치하시지 않기 때문도 아니라, 오직 우리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고 죄를 범했기 때문이라고 강변합니다. 역사가 그것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의 유일한 소망은 인간 역사 가운데 개입하셔서 언약을 맺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그 왕조를 견고하게 하시겠다던 약속은 역사적 사실이기에 시인은 그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통치하시는 하나님(79~83편)
‘역사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은 결코 과거에 계신 하나님을 뜻하는 말이 아닙니다. 역사는 과거를 다루지만, 그 과거는 현재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치고, 현재 가운데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시인들 역시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하나님께서 지금도 동일하게 통치하고 계심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 불순종했던 과거, 곧 역사 때문입니다. 그래서 79편의 시인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압제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비웃는 현재의 절망적인 상황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면서도(79:1~4), 이것이 이스라엘의 범죄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을 인정합니다(79:8~9).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이방 나라들을 고발하며 그들을 심판해 주실 것을 간구합니다(79:10~12).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과거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스라엘의 목자이시며, 지금도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80편). 이스라엘이 절기를 지키는 이유는 과거에 하나님께서 하셨던 일, 곧 역사를 기억하기 위함이지만, 또한 그 하나님의 역사는 과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발휘되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81편).
그래서 82편은 하나님께서 지금도 다스리고 계시며, 특히 가난한 자와 고아들을 위해 정의를 실현하시는 분이라고 선포합니다(82:3~4). 비록 세상에는 불의가 존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계셔서 약한 자들을 돌보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세상의 악한 세력에 맞서 자기 백성과 연약한 자들을 지키고 계시기에, 이 땅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 사이에 영적 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세상은 지금도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 동맹을 맺고 그 백성을 치고 있습니다(83편). 여기서 ‘세상’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 에돔, 모압, 암몬, 아말렉, 블레셋, 두로, 앗수르 등 실재하고 있었던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치고 있었던 것처럼, 교회와 세상의 전투는 우리의 ‘현실’ 가운데에서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수들이 모략을 펼쳐 이스라엘을 무너뜨리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같게”(83:13) 하실 것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은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부르짖는 백성(84~88편)
이처럼 영적 전쟁터 속에서, 마치 하나님께서 이 땅을 통치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일 때 성도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지 시인은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도는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어야 합니다(84:5).
이는 지금 당장은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없고, 그 성전에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 마음은 언제라도 하나님의 성소로 달려가려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황폐화된 현실이 눈앞에 있더라도 다시 회복시키시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85편).
현실과 신앙의 괴리를 느낄수록 성도는 끊임없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됩니다(86편). 가난하고 궁핍한 상황에서도, 환난을 당하며 교만한 자들이 나를 치는 상황에 처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구원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성도입니다. 죽음과도 같은 어려움에 처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전혀 나를 돌보시지 않는 것만 같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나를 치시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에도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듣고 계심을 의심하지 않습니다(88편).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께서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고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확신하기에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최악의 가난과 궁핍, 환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긍지를 품고 있어야 합니다(87편). 바벨론, 두로, 구스 등 세상의 거대한 도시들보다 하나님의 성산에 있는 시온이야말로 하나님의 도읍이며, 막강한 힘을 가진 세상의 도시들도 바로 이 시온에서부터 났다고 선언할 수 있기 때문에 결코 세상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 거룩한 자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회복의 미래를 바라보다(89편)
이처럼 성도는 과거 역사 가운데 일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면서 현재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언젠가 모든 것을 회복하실 하나님의 미래를 바라보며 소망하는 사람입니다. 89편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근거해, 지금도 통치하시고 세상의 불의를 이기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며, 그 하나님께서 무너진 다윗의 왕조를 새롭게 회복하실 것을 바라보는 노래입니다. 시인이 이렇게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과거에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89:4). 하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 그 말씀이 반드시 지켜지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바르게 인식하고 있습니다(89:38~45).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과 다윗의 왕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89:35). 시인은 하나님 앞에서 현실을 탄식하고 있지만, 대적들이 이스라엘을 비방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이라고 고발하며(89:51),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현실을 직시하되 그것에 붙잡혀 있지 않고, 언젠가 모든 것을 회복하실 하나님을 굳게 믿는 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도 통치하고 계신가?” “하나님께서 지금도 나를 사랑하며 돌보시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될 때, 우리는 지난 역사 가운데 자신의 백성을 신실하게 이끄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왜 이런 현실에 처하게 됐는지를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 언젠가 다시 오셔서 이 땅을 하나님의 나라로 완성하실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 신앙과 현실의 괴리가 느껴질 때, 시편의 노래를 내 노래로 삼아 묵상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힘을 경험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