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날샘> 디렉터)
여호수아 22~24장, 시편 66~73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베푸셨습니다.
그 언약을 지키시기 위해 강물을 가르시고, 성을 무너뜨리시며, 태양을 멈추시기까지 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정착해 그 소산을 누리게 됐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하실 일은 끝났고, 이제 이스라엘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만 남았습니다.
3월에는 여호수아서의 에필로그라고 할 수 있는 22~24장과 함께,
몇 편의 시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에게 어떤 사명이 주어지고,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앙 공동체를 유지하라(수 22장, 시 66편)
전쟁 중에 여러 단과 돌무더기를 쌓았던 전력이 있는 이스라엘(4:9, 4:20, 7:26, 8:29, 8:30)은, 전쟁이 끝난 후에 세워진 돌단 하나로 내전에 휘말릴 위기를 맞습니다. 지금까지 요단 동편과 서편의 지파들은 서로 간에 갈등이 될 만한 요소를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요단 동편의 지파들은 이미 자기 분깃을 얻었으나 요단 서편에서 누구보다 앞장서서 가나안 족속과 싸웠습니다. 여호수아가 이들에게 축복하는 모습을 보면 이스라엘 지파들이 얼마나 한마음으로 함께 싸웠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22:1~6).
그러나 이들의 공동체 의식은 요단 동편 지파들이 요단 강 옆에 큰 제단을 쌓았다는 소식 하나로 깨질 위기에 처합니다. 요단 서편의 지파들은 이 소식을 듣고, 즉시 전쟁을 준비합니다(22:12). 이는 일반적인 전쟁의 양상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대부분의 전쟁은 남의 것을 빼앗거나 자기 것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충돌해 일어납니다. 그러나 요단 서쪽의 지파들은 자신들이 차지한 땅을 동쪽 지파들에게 나눠 줄 의사도 있었습니다(22:19).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언약이었습니다. 요단 동편 지파들이 세운 단은 자신들만의 예배 처소를 갖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오직 성막의 언약궤 위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아무리 함께 싸웠던 전우라 하더라도 율법을 어기는 행위에 대해서는 용서할 수 없다는 분명한 결의가 여기에 드러납니다.
다행히, 요단 동편 지파들에게는 다른 예배 처소를 갖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들과 후손들이 요단 동편에 있지만 서편의 다른 지파들과 같은 하나님을 섬기며, 같은 장소에서 예배해야 할 사람임을 확실히 하기 위한 기념비였습니다. 이는 어떻게 보면 오해로 인한 한 차례의 소동에 불과하지만, 이를 통해 이스라엘은 혈통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한 분을 섬기는 신앙에 의해 연합된 공동체임이 확인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 첫째 사명은 신앙 공동체인 교회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공동체의 연합은 인간적인 이해관계가 아니라 신앙에 의해 이뤄져야 합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하겠다는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후손에게 신앙의 유산을 전수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공동체, 교회입니다.
시편 66편은 하나님을 향한 개인의 신앙이 공동체와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시인은 먼저 이스라엘이 신앙 공동체로서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있었음을 노래합니다(66:6, 10~12). 그 이후에 자신, 즉 개인의 신앙을 하나님께 고백하며 자신이 환난 때에 서원했던 것을 갚으며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고백합니다(66:13~20).
시인은 이스라엘이라는 자신이 속한 신앙 공동체가 겪은 역사를 자신의 신앙에 대입하고 있습니다. 마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새긴 후에 백성들에게 하나님만을 섬기라고 가르친 것처럼, 시인은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함께하신 하나님을 묵상한 후에 하나님께 개인의 감사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각자의 신앙은 결코 공동체와 분리될 수 없으며, 하나님께서 온 백성을 구원하시는 구원 역사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음을 인식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라(수 23장, 시 69~71편)
여호수아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끼며, 실로에 모인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고별 설교를 합니다. 이 설교는 과거를 회상하고 있지만 상당히 미래지향적입니다. 여호수아는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시고 승리하게 하셔서 이 땅을 주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여러 땅들까지 반드시 허락하시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23:3~5).
그러나 여호수아의 말이 낙관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든지 이 땅을 다 차지할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율법을 지켜 행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사랑해야 합니다(23:6~11).
여기서 특이한 점은 남은 땅을 다 정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군사적인 힘이나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보다 군사적으로 강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에 승리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여호수아는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거민들의 문화와 종교의 영향을 받으면 결국 그 땅에서 멸망하리라고 경고합니다. 전쟁에서 패배할 때 멸망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같아질 때 멸망한다는 것입니다(23:12~16). 이는 전 시대에 걸쳐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명심해야 할 가르침입니다. 세상에서 승리하는 방법은 상대보다 더 큰 힘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며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69~71편의 시인은 원수들로부터 어려움과 곤란을 당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며, 원수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69:22~28, 70:2~3, 71:24). 그러나 시인은 마음의 초점을 자신을 공격하는 원수들에게 두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맞추고 있습니다. 그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이 오직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며 사랑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69:30~36, 70:4~5, 71:5~9, 22~24). 이처럼 세상에서 겪는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그 어려움을 주는 원수보다 내가 더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강하신 하나님을 의뢰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언약을 계승하라(수 24장, 시 72편)
실로에서 지도자들을 대상으로 고별 설교를 마친 여호수아는 세겜으로 이동해 온 백성 앞에서 다시금 하나님만을 따를 것을 촉구하며 언약을 갱신합니다. 여호수아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해 아브라함 시대로부터 가나안을 정복할 때까지 면면히 이어져 온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선포합니다(24:2~1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언제나 떠나지 않고 함께 계셨음을 다시금 되새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과거를 돌아본 후, 여호수아는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다!”(24:15)라고 선포하며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도전합니다. 이에 모든 이스라엘도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대답하는데(24:16~18), 여호수아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세 차례에 걸쳐서 이스라엘이 이 언약을 어기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를 하게 합니다(24:19~24). 이에 여호수아는 큰 돌을 세워 그 언약의 증표로 삼습니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언약을 갱신한 이유는 명백합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가나안 땅이 주는 혜택을 누리게 하되 그 땅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잊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됐지만, 그들의 관심은 그 땅이 아니라 그 땅을 주신 하나님께로 향해야 했습니다.
이후 가나안 정복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태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는 증거의 돌을 성소 옆 상수리나무 아래에 세워 이후 세대에까지 그 언약을 전수하기를 원했습니다(24:26~27).
이 역시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명심해야 할 과제입니다. 신앙은 반드시 대대로 계승돼야 합니다. 후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않게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떠나지 않도록 언약을 계승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시편 72편은 이스라엘의 언약을 계승할 왕이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를 따르고(72:2),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통치를 해야 합니다(72:12~14). 또한 늘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이름을 높이는 자로서 살아야 합니다(72:18~19). 이스라엘이 하나님만을 섬길 때 그 땅의 혜택을 누릴 수 있었던 것처럼,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법도에 따라 하나님만을 높일 때 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 이유(시 73편)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이틀 동안에는 시편 73편을 묵상하면서 의인으로서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되새겨 보고자 합니다. 시인은 ‘왜 이 세상에는 악인이 더 번성하고 의인은 오히려 고난을 당하는가’의 문제로 고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지혜를 통해 세상에서 악인이 형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마지막 승리는 의인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하나님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악인들로부터 고난을 받으시고 죽임을 당하셨으나, 결국 부활하심으로써 승리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교회의 거룩함과 연합을 지켜야 하는 사명이 맡겨졌습니다. 우리는 세상 가운데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며, 세상과 다르게 사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만을 사랑하는 삶으로 세상을 이겨야 합니다. 그리고 이 신앙을 대대로 전수해 우리의 후손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은혜를 만끽하도록 해야 합니다. 3월에는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누리는 기쁨과 사명을 묵상하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