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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7월

세상을 향해 도전하는 천국 복음

과월호 보기 김철우 목사

천국 복음은 세상의 가치관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어둠은 물러가고 광명한 날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세상 가운데 거하며 어둠의 일을 행하던 자들에게 복음은 좋은 소식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거침없는 행보는 세상의 가치관에 젖어 살던 유대의 종교인들에게는 눈엣가시처럼 여겨졌을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이 되어 순종의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그분의 제자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며 묵상을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13장 예수님이 안식일에 18년 동안 귀신 들려 앓고 있던 한 여인을 고쳐 주십니다. 이 일로 유대인들의 비난을 받게 되자,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비유를 통해 그들의 현주소를 깨우쳐 주십니다. 선지자들을 죽이는 예루살렘을 향해 안타까움과 애통함을 가지고 마치 암탉이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과 같이 하였노라고 하십니다. 천국은 겨자씨같이 참으로 작고 미미한 것이어서 사람들의 눈에 무시당하지만, 나중에는 큰 나무로 자라 새들이 깃들이게 될 것입니다.

 

14장 예수님은 자신을 엿보는 눈이 있음을 아시고도 마땅히 하실 일을 행하십니다. 영혼을 구원하고 생명을 살리는 일은 안식일에도 계속되어야 합니다. 잔치에서 높은 자리를 탐하며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바리새인 같은 자들에겐 굉장한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낮추고 가난한 이들과 몸에 장애가 있는 이들을 섬기라고 하십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높이시고 갚아 주실 것입니다. 천국의 주인공은 이런 자들이라고 하시며, 참된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15장 잃어버린 양과 드라크마, 작은아들에 관한 비유가 이어집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자들에게 지대한 관심과 한없는 사랑을 보이시는 예수님은 아흔아홉 마리 양을 들에 두고 한 마리 잃은 양을 찾도록 찾으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허랑방탕한 작은아들을 매일같이 기다리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던 큰아들의 모습 속에서 당시 종교 기득권자의 모습뿐만 아니라, 오늘날 수많은 종교인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16장 두 가지 유명한 비유가 소개됩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해석상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지극히 작은 것인 세상의 재물에도 충성하지 못하면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을 맡길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앞 장의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비유, 그리고 이어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연결하여 읽으면 예수님의 의도가 좀 더 분명히 느껴질 것입니다. 율법은 헌신짝처럼 여기면서도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천국 비유였을 것입니다.

 

17장 예수님은 계속해서 한 영혼의 소중함에 대해 교훈을 주십니다.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죄악인지를 말씀하시는 한편, 죄지은 형제를 무한히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종이기에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순종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 고침 받은 열 명 중에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이 감사한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은 적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냐고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안에 있다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대답을 주십니다.

 

18~19장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는 재판장을 통해서는 기도하는 믿음을,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통해서는 기도의 자세를 가르치십니다.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나아오면 결코 외면하지 않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리고 성의 한 맹인처럼 간절히 소리 질러 주님의 도움을 구하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시며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러 오신 천국 복음의 진수를 몸으로 보여 주십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예수님의 비장한 모습과 “호산나!”라고 환호하는 백성들의 소리가 묘하게 대조되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통해 구속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천국 복음은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겐 황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비밀입니다. 세속의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던 형식적인 종교인들의 눈에 우리 예수님의 언행은 가히 혁명적이었을 것입니다. 영혼 구원에 초점을 맞추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나아가시는 예수님 앞에 종교 지도자들은 올무를 놓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결코 뜻을 굽히지 않으십니다. 그것이 천국 복음의 본질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땅은 잠시 잠깐 만에 사라지는 유한한 세상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한다면 우리의 가치관이 변해야 합니다. 세상을 향해 강력하게 도전해 오는 천국 복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