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가나안 정복을 목전에 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몇 가지 불안 요소가 있었습니다.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의 리더십 교체, 이미 땅을 분배받은 지파들도 전투에 참여하게 하는 것, 아간처럼 거룩함을 훼손시켜 내부 전력을 소진하는 일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이 앞으로 맞이할 가나안 뉴 노멀 시대를 준비시키십니다. 이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불안 요소가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답게 뉴 노멀 시대를 준비해야 합니다. 이달에 묵상하는 여호수아서가 뉴 노멀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희망의 지침서로 자리매김하길 소망합니다.
말씀을 지켜 행하라(수 1장, 8:30~35)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지도자로 부름받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명령이자 약속인 가나안 정복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사실 여호수아는 리더십 교체에 대해 누구보다 염려하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리더십 교체는 공동체에 큰 도전이자 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함께하셨던 것처럼 여호수아와도 동행하실 것을 약속하시며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수 1:6). 이것은 가나안 정복 전쟁을 지휘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가나안 정복 전략은 율법책을 입술에서 떠나지 않게 하고, 묵상하며, 지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말씀을 가까이 둠으로써 하나님과 함께하는 축복을 받는 것이, 가나안 정복을 일궈 내는 하나님의 전략이었습니다(수 1:1~18).
이것은 이스라엘이 여리고성에 이어, 아이성을 정복하고 에발산에서 제단을 쌓을 때에도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아이성 전투를 통해 승리와 실패를 모두 경험한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대로 에발산에 제단을 쌓습니다. 여호수아는 복과 저주의 율법을 선포하며,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아이성까지 정복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했기 때문임을 전합니다(수 8:30~35).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필승 전략입니다. 시대와 장소, 환경이 바뀌더라도,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귀하게 여기는 자에게는 생명이 주어지고, 그렇지 않은 자에게는 죽음뿐임을 기억하길 바랍니다.
라합과 아간을 기억하라(수 2장, 7:1~8:29)
여호수아는 여리고에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 정찰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보고를 합니다. 이에 여리고 왕은 라합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이때 성경은 라합이 두 정탐꾼을 “이미 숨긴지라”(수 2:4)고 기록하며, 라합의 행동을 믿음의 행동으로 표현합니다. 라합이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됐는지는 쓰여 있지 않지만, 라합이 하나님을 깨달은 순간 ‘인간의 책임’을 다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
당시 상황에서 이방인이자 기생 신분인 여자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특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수 2:11)는 라합의 고백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이 혈통과 신분에 제한받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이 같은 고백은 두 정탐꾼에게도 이어져, “여호와께서 온 땅을 우리 손에 주셨으므로 그 땅의 모든 주민이 우리 앞에서 간담이 녹더이다”라는 믿음의 보고를 하게 합니다(수 2:24). 이처럼 하나님 백성의 정체성은 상황과 상관없이 어떤 신앙고백을 하느냐에 따라 가늠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수 2:1~24).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간의 경우처럼 한 사람의 범죄로 이스라엘 전체에게 진노하신다는 것도 말씀해 주십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한 이스라엘은 아이성에 삼천 명만 보내도 승리할 수 있다는 정찰꾼들의 보고를 받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패로 이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바친 물건을 탐하는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물건을 훔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는 행위입니다. 언약이 다시 회복되려면, 죄를 회개하고 공의의 심판을 따라야만 합니다. 아간은 자신의 욕망을 따르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간이 죽은 자리에 돌무더기를 쌓게 하심으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는 자의 최후가 무엇인지를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처럼 선택받은 유다 지파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잘못된 ‘인간의 열심’을 보인다면, 그 결말은 패망입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승리에 도취된 아이성 사람들의 마음을 이용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승리를 주십니다(수 7:1~8:29).
이처럼 라합으로 사는 것과 아간으로 사는 것의 차이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서 순종하느냐, 도전하느냐로 정리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하나님의 주권 앞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있으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자에게는 패망만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략을 실행하라(수 3~4장, 6장)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정복하려면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요단강은 평소에는 성인이 건널 수 있을 정도의 수위지만, 범람 시기가 되면 도하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언약궤를 앞세우고, 백성에게 그 뒤를 따르라고 명합니다. 여기서 언약궤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신다는 상징물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뜻합니다.
그런데 언약궤를 따르는 백성은 먼저 자신을 성결하게 해야 했습니다(수 3:5). 왜냐하면 요단강은 하나님의 도우심만으로 건널 수 있었는데, 백성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려면 성결이라는 기본 조건이 충족돼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요단강 도하 사건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임재만이 약속의 땅에 입성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임을 보여 줍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범람하는 물도 세우시는 주권자이심을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수 3:1~17).
요단강을 도하한 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열두 개의 돌을 취해 기념비를 세우게 하십니다. 기념비의 의미는 홍해에서도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요단강에서도 도우셨다는 사실을 세대를 넘어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간과 공간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시고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뉴 노멀 시대에도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온전히 순종하는 주님의 제자로 살아야 합니다(수 4:1~24).
하나님께서 여리고성 정복을 위해 지시하신 전략은 언약궤를 들고 나팔 부는 제사장들의 뒤를 따라, 여리고성을 매일 한 바퀴씩 6일 동안 돌고, 7일째 되는 날에 일곱 번 도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수아의 명령에 따라 크게 함성을 지르고 양각 나팔을 불자 여리고성 성벽이 완전히 무너집니다.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그들의 행위는, 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이며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행위였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해 싸우심을 알리는 최고의 전략이었습니다(수 6:1~27). 이처럼 뉴 노멀 시대가 도래해도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세상을 이기는 최고의 전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를 가장 두려워하며,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자를 통해 자신의 전략을 펼쳐 가신다는 사실을 잊지 맙시다.
거룩한 백성으로 살라(수 5장)
여호수아 전반부인 1~8장에서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장면은 길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할례를 행하는 장면입니다. 여호수아는 여기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을 만나는데, 적진 앞에서 행하는 할례는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길갈은 여리고에서 불과 4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지녀야 함을 일러 주십니다.
특히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군대 대장 앞에서 신을 벗는 장면은 거룩함 없이는 어떤 승리도 없음을 보여 줍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뉴 노멀 시대가 도래해도 하나님의 백성답게 거룩함을 지키며, 겸손히 하나님만 신뢰함으로 승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전투에서 승리하려면 신발 끈을 꽉 묶으면서 결의를 다져야겠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는 것이 우선임을 잊지 맙시다.
새 시대를 여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새 시대에도 쓰임받으려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 위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성을 무너뜨린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성도는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이 모든 기적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은 뉴 노멀 시대라고 불리는 지금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많은 변화가 예상되는 시대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세상은 가나안 족속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로 주눅 들게 하지만,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중심에 두고 거룩한 백성으로 사는 것이 유일한 삶의 방법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