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평생 순종하며 형통하기만 한 삶을 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우리 각자의 인생도 뒤돌아보면 죄의 수렁과 영적 침체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시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내가 그때 그렇게 되었던가’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점검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다윗의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신앙인이 왜 영적으로 침체에 빠지며, 어떻게 하면 그런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 주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분명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지난달에 우리가 묵상한 사무엘하 1~10장은 하나님의 사람이 어떻게 승승장구하며 번성해 갈 수 있는지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서는 다윗의 밝은 면만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가 어떻게 그 자리에서 추락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되었는지도 가감 없이 기록해 후대 사람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줍니다. 4월에는 다윗이 어쩌다가 형통함을 잃고 추락했으며, 어떻게 다시 재기의 소망을 품게 되었는지를 함께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추락 1 - 영적으로 안일함(11장)
이스라엘이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궤도에 오르자 왕이 된 다윗은 안일함에 빠져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암몬과 전쟁 중이었지만 암몬의 군사력이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지 전쟁은 요압에게 맡기고, 자신은 왕궁에서 편안히 봄날을 즐기기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그런 선택이 왕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안일한 상황은 죄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게 합니다.
저녁이 되어서야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를 거니는 다윗의 눈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모습이 들어왔을 때, 다윗 앞에는 범죄를 막을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충성스러운 신하의 아내라는 사실(11:3)도, 자신의 최고 전략가인 아히도벨의 손녀라는 사실(23:34)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죄는 왕이라고 해서 쉽게 은폐하고 없었던 일로 돌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은폐하려고 하면 할수록 또 다른 죄를 잉태하게 마련입니다. 밧세바를 범한 후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윗은 그것을 또 다른 죄로 덮으려 시도합니다. 바로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불러들여 밧세바와 지내게 함으로써 자기 아이를 우리아의 아이인 것처럼 만들려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실패하자, 다윗은 요압을 통해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죽게 합니다. 결국 간음은 사기와 살인이라는 죄까지 잉태하게 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다윗이 순식간에 죄의 구렁텅이로 추락한 것입니다.
소망 1 - 회개하고 자기 직무로 돌아감(12장)
다행히 다윗은 끝없는 추락으로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고 즉시 자신의 죄를 인정했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다윗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소망의 씨앗이 됩니다.
다윗의 회개에서 높이 살 점은 그가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밧세바가 낳은 아이가 병에 걸리자 식음을 전폐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가 죽자, 놀랍게도 그는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을 단장하며 왕으로서의 직무로 돌아갑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은 후에는 그대로 순종한다는 삶의 원칙을 보여 준 것입니다.
다윗은 이 모든 문제의 핵심이 자기가 안일하게 왕궁에 남아있었기 때문인 것을 인식했기 때문인지, 이후 암몬과의 전쟁에 직접 출정했고, 암몬과의 전쟁을 자기 손으로 끝냈습니다. 이는 그가 잘못의 근원으로 돌아가 바로잡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죄의 악영향은 결코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추락 2 - 죄에 대해 우유부단함(13~14장)
다윗에게 새로운 위기가 생겼습니다. 자신의 죄와도 유사한 범죄가 아들 암논에 의해 벌어졌습니다. 암논은 이복누이인 다말에게 연애감정을 품었는데, 마치 아버지 다윗이 그랬던 것처럼 율법의 가르침(레 18:9, 11)을 따르기보다는 자기 욕망을 따르는 것을 선택해, 근친상간의 죄를 짓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다윗이 이 사실을 알고도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다윗은 심히 분노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암논의 죄에 대해서 분명하게 책망하고 벌을 내리기보다는 그냥 넘어가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다윗은 이전에 어떻게든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 했던 것처럼, 자기 아들의 죄에 대해서도 비슷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죄는 반드시 또 다른 죄를 유발하게 되는데, 이는 압살롬에 의해 이뤄졌습니다.
다말의 오빠였던 압살롬은 암논을 잔치 자리로 유인해 암살합니다. 그의 주도면밀한 계획은 마치 아버지 다윗이 우리아를 전쟁에서 사지로 몰아넣었던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 다윗이 간음과 살인을 저질렀듯이 그 아들 암논에 의해 간음이, 압살롬에 의해 살인이 발생합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다윗이 암논의 근친상간 행위에 대해서 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했던 것과 같이, 압살롬의 살인행위에 대해서도 분명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자신의 형을 살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압살롬을 사랑하는 마음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암논이 다말에 대해 악한 행위를 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임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다윗은 압살롬의 죄에 대해서 분명한 처벌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압살롬에게 분명한 대처를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고 있었습니다.
암논은 결국 자기 죄의 결과로 죽임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다윗은 압살롬에게 죗값을 치르게 한 후에 다시 받아들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우유부단했습니다. 결국 요압과 압살롬의 꾀에 압살롬을 다시 왕궁으로 불러들인 이후에도 압살롬을 처벌한 것도 아니고, 완전히 용서한 것도 아닌 어정쩡한 태도로 대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우유부단함은 결국 압살롬으로 하여금 반역을 도모하게 하는 불씨가 됩니다.
소망 2 - 초심으로 돌아감(15~16장)
영적인 안일함과 그로 인한 범죄, 그리고 죄에 대한 우유부단한 대처는 다윗을 나락으로 떨어뜨렸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무척이나 사랑한 아들의 반역에 의해 왕위를 버리고 달아나는 다윗의 모습은 ‘비참하다’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런 상황에까지 떨어뜨리시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재기’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주십니다. 바로 ‘초심으로의 회복’입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꾀한 곳은 헤브론입니다. 헤브론은 원래 다윗이 왕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았던 곳으로 다윗은 이곳에서 왕이 된 이후 예루살렘으로 천도하기까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 승승장구했으나, 예루살렘에 왕궁을 짓고 거기 편안하게 거하기 시작하면서 안일한 삶을 살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왕궁을 짓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거둬들인 많은 세금은 백성들의 마음에 보이지 않는 앙금으로 남았습니다. 이는 아버지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앙심을 품은 압살롬이 백성들에게 다가가기 좋은 구실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도망하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이전에 사울을 피해 도망하던 시절을 기억했을 것이고, 헤브론에서 왕으로 세워졌을 때 품었던 마음을 되새겼을 것입니다. 사울의 눈을 피해 광야를 헤매고 블레셋의 신하 노릇을 해야 했던 시절에는 오직 하나님 말씀만을 따랐고, 바보스러울 정도로 말씀에 순종하던 다윗이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되어 승승장구하게 되니까 초심을 잊고 백성들로부터 세금을 거둬 왕궁을 짓고 전쟁은 신하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안일하게 지내며 죄를 범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다윗은 자기 아들들의 죄에 대해서 분명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세월 속에 덮으려 했던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이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고 회개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어려움을 통해 다시 초심을 되찾아갔습니다. 가드 사람 잇대와 육백 명의 군사들이 자기를 따를 때에도 그저 기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고, 사독과 아비아달이 법궤를 끌고 다윗을 따르려 할 때 법궤를 다시 성소로 돌려보내며 자신은 하나님께 순종할 뿐임을 확인합니다. 압살롬 진영에 뛰어난 전략가인 아히도벨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를 깨달은 다윗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했고, 그 기도 응답으로 후새를 보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도 체험했습니다. 므비보셋에게 종으로 주었던 시바에게서 음식을 얻는 다윗의 모습은 사울을 피해 도망해 제사장 아히멜렉으로부터 진설병을 얻어먹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삼상 21:1~6). 그리고 시므이의 저주를 묵묵히 들은 다윗은 자신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로 이해합니다.
사실 하나님이 다윗을 이렇게까지 다루신 것은 그만큼 그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초심을 잃지 않고 이스라엘 왕의 전형으로서 서길 원하셨고, 다윗이 안일함과 범죄에 빠지자 철저히 이 문제를 다루셨습니다. 다윗은 자기 아들들의 죄에 대해서 우유부단하게 행동했지만 하나님은 다윗과 같은 방식으로 죄에 대처하지 않으셨고, 또 그렇게 하셨기에 다윗은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추락,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재기의 소망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읽으며, 우리 모두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른 감정을 느끼고 다른 적용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모든 일련의 사건이 사실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놀라운 사랑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살아가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이 우리의 연약함에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한 훈계하시며,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하나님을 묵상하는 4월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