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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

심판과 구원, 그리고 회복

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우리는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분이면서 동시에 구원하시는 분임을 알면서도 이 두 가지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주어지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판과 구원은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 가운데 함께 나타납니다. 비유하자면 ‘회복’이라는 동전의
한 면은 ‘심판’이고, 또 한 면은 ‘구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경우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를 통해 구원을 얻는 사람과 심판을 받
는 사람이 다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볼 때 구원은 심판의 다른 면이기도 합니다. 이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이
지만, 이번 달에 묵상할 사무엘서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에게 이 신비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구원받는 자와 심판받는 자(17:1~18:18)
5월의 묵상은 다윗의 목숨이 경각에 달린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압살롬에게 제시된 아히도벨의 전략이 그것입니다. 즉 다윗이 전
력을 재정비하기 전에 아히도벨이 정예병으로 추격해 다윗만 죽이면 이스라엘은 압살롬의 통치 아래 들어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략이 실제로 시행되었다면 다윗으로서는 피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때 후새가 새로운 전략을 내세워 아히도벨의 전략을 막지 못했다면, 다윗은 아들을 피해 도망갔다가 자기 모사의 계략에 의해 객사한 왕으로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압살롬은 이스라엘 전역으로부터 병사들을 모아 친히 전쟁에 나서서 이스라엘 전체의 왕임을 과시하고,
다윗을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제압해 그를 따르던 모든 이들을 다 멸해 힘을 과시하라는 후새의 말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히도벨을 따르면 압살롬은 다윗을 죽이기 전에는 이스라엘의 왕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고, 또 다윗을 죽이는 공은 아히도벨
이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후새의 말을 따르면 압살롬은 이미 이스라엘의 왕이며, 자신이 다윗을 제압한 자가 되는 것이었습니
다. 결국 압살롬은 후새의 거짓 조언을 받아들였고, 덕분에 다윗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얻어 병력을 재정비할 기회를 얻을 수 있
었습니다. 바람 앞의 등불과 같던 다윗의 생명이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반면 다윗이 구원을 얻었다는 것은 곧 압살롬과 아히도벨은 심판 아래 놓이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아히도벨은 후새의 전략이
결국 압살롬을 따르는 자들을 패망으로 이끈다는 것을 꿰뚫어볼 정도로 뛰어난 지략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지
략은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 비참한 종말로 자기 자신을 몰아갑니다.
한편 압살롬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교만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압살롬은 군대를 이끌고 의기양양하게 출전했지만 요압
과 아비새, 잇대가 이끄는 다윗 군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전투에서 패하고 도망하는 길에 그의 허영심과 과시욕
을 상징하는 머리카락 때문에 상수리나무에 매달려 있다가 요압에 의해 죽는, 사실상의 처형을 당하고 맙니다.

심판을 통한 구원(18:19~19:39)
압살롬과 아히도벨이 심판을 받음으로써 다윗은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입장에서 자신의 구원은 곧 하나님의 심판이었
습니다. 다윗의 군대는 압살롬의 죽음을 슬퍼하는 다윗 때문에 전쟁에서 승리하고도 기뻐하지 못하고 오히려 슬퍼하는 역설적인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시고 주신 승리가 곧 자신의 죄를 심판하는 칼날이 되어 돌아왔던 것입니다. 다윗
에게 있어서 압살롬의 죽음은 그가 밧세바를 범한 후 선언된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12:10)는 심판 예언
의 성취였습니다.
결국 다윗은 이처럼 아픈 심판을 통해 구원을 얻었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다윗은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생긴 모든 문제를 치유하고 회복하기 원하심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등을 돌리고 압살롬을 따
랐던 사람들에게 복수 대신 용서를 선택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압살롬을 따랐던 유다 지파 사람들을 품고, ‘다윗을 따랐느냐 압살롬을 따랐느냐’로 이스라엘이 나뉘는 일이 없도
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래서 도망하는 길에 자신을 저주했던 시므이를 용서했고, 시바의 거짓 정보 때문에 오해했던 므비보셋
에게도 시바의 밭을 나누도록 했습니다. 시바에게 당장 벌을 내리지 않은 것은 더 이상 복수가 복수를 부르는 악순환이 계속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다윗의 의지를 보여 줍니다. 이런 회복에는 바르실래와 같이 자신의 공을 주장하지 않고, 겸손히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았던 사람들의 기여도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회복의 반대자(19:40~20:26)
그러나 아무리 다윗이 회복과 화합을 위해 노력해도 끝까지 문제를 일으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회복을 반대하는 자들 중에는
세바와 같은 불량배뿐만 아니라 다윗의 심복 요압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힘으로 반대파들을 누름으로써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다윗이 유다 지파 사람들만을 중용한다는 질투 때문에 세바를 리더로 하는 반란 세력들이 다시 결집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다
윗은 세바를 진압하는 첫 임무를 자신의 심복인 요압이 아니라 이전에 압살롬의 군대장관이었던 아마사에게 맡겼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군대가 ‘압살롬파’와 ‘다윗파’로 나뉘는 것을 막고, 아마사에게는 압살롬을 섬겼던 과거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자 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마사는 그 일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상황이 급하다는 판단을 한 다윗은 요압과 아비새에게 아마사를 도와 세
바의 난을 진압할 것을 명령합니다. 하지만 요압은 아마사를 질투해 그를 암살하고 맙니다. 여기에서 세바와 같은 반란의 무리뿐 아니라 요압과 같은 심복들도 다윗의 뜻을 제대로 받들지 못하는 모습이 여과 없이 드러납니다.
다행히 세바의 난은 아벨 성의 한 지혜로운 여인의 중재로 세바만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원했던 이스라엘의 회복은 요압과 같은 장군이 아니라 한 여인에 의해서 겨우 얻어질 수 있었습니다. 오직
지혜가 이스라엘을 평화로 이끌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누구인가?(21~24장)
사무엘서는 다윗이 왕으로 회복된 이야기로 일단락한 후(20장까지), 결론과도 같이 다윗의 통치 가운데 있었던 일들과 다윗의 노
래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다윗을 심판하시고 구원하시며 다시 왕으로 회복시키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며, 이스라
엘의 궁극적인 왕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 사울의 학정을 심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이스라엘
에 3년간 기근을 내리셔서 다윗으로 하여금 기브온 사람들에게 사울의 집안사람 7명을 내줘 그들의 원한을 갚도록 하셨습니다.
다윗은 이 과정에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지켰을 뿐 아니라 사울의 아내 리스바의 행적을 보고 그 아들들의 시신을 정중히
장사합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 사울의 집안을 심판한 것은 개인적 원한에 의한 것도, 정치적 후환을 없애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에 의해 훼손된 이스라엘의 정의를 회복하기 원하셨기에 다윗이 그 뜻을 따라 그 일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다윗 개인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할 수 있도록 싸운 용사들이
었더라면 이스라엘의 왕 다윗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용사들을 주신 이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매우 긴 찬
시(22:1~23:7)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이 왕이 되었음을 인정하며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심을 선포합니다. 그리
고 그 찬송시의 앞뒤에 다윗과 함께했던 용사들을 소개함으로써(21:15~22, 23:8~39),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 용사들을 붙여 주
시고 그들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에 다윗 왕 자신이 있을 수 있었음을 선포합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만한 뛰어난 능력도 없었고, 사울에 비해 더 나은 점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입
니다. 사무엘서 마지막 결론이 다윗에 대한 찬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교만해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한 죄에 대한 언급으로 끝나는 이유는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최종적으로 선포하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왕으로서의 권위를 세우고 군대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 인구 조사를 요압에게 명령했고, 그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삽니다. 사울이 기브온 거민
들을 핍박한 죄로 3년의 기근이 왔고, 그 때문에 7명의 사울 집안사람들이 죽게 되었지만,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죄로 인해서는
단 3일의 온역으로 이스라엘 백성 7만 명이 몰살을 당하는 참변이 일어났습니다.
여기서 다윗과 사울이 다른 점은 단 하나뿐입니다. 바로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다시 고백했다는
점입니다. 다윗은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을 사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림으로써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회복을 이뤄냈습니다. 하나님
과의 회복이야말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입니다.

다윗에게 있었던 심판과 구원, 그리고 회복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이 선포된 이야기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일
어난 영적 사건과 일맥상통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의 사건이었습니다.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
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심판을 경험하고, 또한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아남으로써 구원에 동참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 회복에 들어가게 되며, 그때 내 삶의 주인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게 됩니다.
우리의 회복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이 회복될 때 가능합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신비이며 진리입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묵상하는 5월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