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3년 06월

우리는 누구인가?

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과거를 잃어버린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현재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이는 개인뿐 아니라 민족, 국가 등의 차원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역사를 모르는 민족은 사실상 한 민족이라 하기도 어렵습니
다. 그래서 국가는 기념일을 만들고 구성원들로 하여금 역사를 되새기도록 독려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리스도인의 공동체, 교회
가 그 역사를 잃어버리는 ‘영적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면 어떨까요? 교회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을 겪게 되고, 무엇을 어
떻게 실천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오늘날 드러나는 교회의 여러 약함과 문제점은 과거를 잊어버렸기 때
문인지도 모릅니다.

이같은 문제의식 아래 <날마다 솟는 샘물>은 ‘바울 신학의 왕관’(the Crown of Paulinism)으로 불리는 에베소서를 선택했습니
다. 역사를 되돌아보게 되는 시기인 6월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교회의 과거와 현재를 묵상하며 교회, 곧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
에 대해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에베소서는 크게 두 단락으로 나뉩니다. 마치 예배 의전에 사용할 것 같은 거창하고 화려한 언어를 사용한 전반부(1~3장)는 주
로 바울 자신을 포함한 교회의 과거를 회상합니다. 원래 교회가 어떤 지위를 가진 존재였는지, 정체성을 밝혀 주는 것입니다. 그
리고 후반부(4~6장)에서는 정체성을 깨달은 교회가 어떤 원칙으로 살아야 할지를 세세하게 가르쳐 줍니다.

정체성1: 창세전에 예정된 지위(1장)
바울은 교회가 누구인지를 밝히기 위해 궁극의 과거, 즉 ‘창세전’(1:4)까지 회귀합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모임이나 단체,
국가나 민족도 그 기원을 창세전에 둘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오직 교회만이 그 기원을 창세전에 둡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
로 입양된 자들의 모임입니다. 이 입양은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창세전부터 계획하셨던 것이기에 결코 변경되
거나 취소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입양, 곧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하나님께서 영적인 세상을 포함한 온 세상 만물을 통치하심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사
역입니다. 또한 이 구속사역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뤄집니다. 즉 성도가 택함 받고, 예정되고, 속량 받
고, 결국 만물을 통치하시는 섭리에 참여하는 모든 것은 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모든 놀라운 일이 이미 과거에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일어났다고 선언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
나님의 아들이 된 자들이 교회를 이루고, 이들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갈등과 분열을 제거하고 만물을 하나로 통일하시는
사역에 쓰임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을 다스리시는 도구는 바로 교회이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다스리시는 도구 역시 교회입니다. 왜
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섭리는 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나는데, 교회가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 얼마나 위대한 지위를 부여받았는지를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기도
제목은 에베소 교인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교회 가운데 행하신 능력이 얼마나 크고 풍성한지를 깨닫는 것이었습니다. 교
회는 이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사회이며 새로운 인류입니다. 하나님의 도구이자 통치 수단입니다.

정체성2: 믿음으로 변화된 관계(2장)
바울은 이처럼 궁극의 과거, 창세전부터 이뤄진 하나님의 사역을 기억하게 한 후, 가까운 과거를 기억하게 합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지위를 얻을 수 있게 되었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본래 에베소 교인들을 포함해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런 지위를
얻을 만한 자격이 있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들이었고, 아무 소망이 없는 절망 가운데 있던 자들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들을 살리시고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관
계였던 자들이 은혜로 인해 아들이 되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상황으로, 그야말로 초고속 신분 상승을 이뤘습니다. 그
런데 이 신분 상승을 위해서 그들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기에 무엇을 잘했다고 자랑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제는 ‘유대인과 이방인’ 식의 나뉨이 의미 없음을 선포합니다. 이제는 모두 성도요,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
의 권속일 뿐입니다. 모두가 연결되어 하나의 건물이 되는 것처럼, 성령 안에서 한 성전으로 지어져가는 관계가 됩니다. 예수 그
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은 자들 사이에서는 결코 경쟁이나 나뉨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한 분으로부터 났고, 한 분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하나 됨을 꾀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정체성3: 복음으로 변화된 사명(3장)
바울은 이제는 자신의 과거, 곧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사명을 회상하면서 에베소 교인들에게 자신을 모범으로 제시합
니다. 바울은 지금 ‘갇힌 자’(죄수, 3:1)의 신분입니다. 그러나 그는 많은 환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복음의 비밀을 맡은
일꾼이 되었음을 찬송하며,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경륜(계획)이 드러나게 되었음을 기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이방인들 사이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닫게 했던 것처럼, 교회가 이 세상 가운데 들어가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하는 자로서 존재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전반부를 마무리하는 기도(3:14~21)의 핵심은 ‘알게, 깨닫게’ 해 달라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곧 교회를
얼마나 사랑하시며 교회를 통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행하실지 아는 것, 다시 말해 교회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사명1: 지켜야 할 가치, 하나 됨(4:1~16)
바울은 교회의 정체성을 선포한 후, 교회가 지켜야 할 가장 우선되는 사명으로 ‘하나 됨’을 꼽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결코 분열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 여러 직분이 있지만, 그 다양한 직분은 모두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맡은 바 직분
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것이 교회를 나누는 데 사용되는 것이 아님을 인식해야 합니다. 교회는 다양한 직분이 연합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명2: 하나님을 본받는 새 사람(4:17~5:14)
교회는 ‘초고속 신분 상승’을 경험한 사람들의 모임이므로, 당연히 그 이후의 삶도 변화된 신분에 맞게 변해야 합니다. 바울은 신
분 상승, 곧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기 전의 상태를 ‘옛 사람’이라고 부르고, 그 이후를 ‘새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새 사람은 하나님을 본받는 사람입니다. 옛 사람과 새 사람의 삶은 빛과 어둠처럼 선명하게 구분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둠 가
운데 살던 생활을 청산하고 빛의 자녀로 사는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

사명3: 새로운 생활(5:15~6:9)
바울은 옛 사람과 새 사람, 어둠의 자녀와 빛의 자녀를 대조한 후에 그리스도인들이 새 사람, 빛의 자녀로서 삶 가운데 어떤 실천
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월을 아끼며 지혜롭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술에 취하는 것이 아
니라 성령의 충만을 받고, 헛된 노래와 인간관계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를 섬기며 피차 복종하는 사람들
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든 일상생활에 있어서 그리스도께 복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이 됩니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에는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가 적용되어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와 부모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하고 존중함으로써 이뤄지는 관계가 됩니다. 종과 상전의 관계 역시 종은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상전은 자기
보다 더 높으신 이가 계심을 의식하며 살아야 합니다.

결론: 전신 갑주(6:10~24)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는 새로운 인류, 곧 교회가 세상 가운데 침투하게 되었으므로 그리스도 밖에 있는 세력과의
계속되는 영적 전투를 위해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는 권면으로 서신을 마칩니다.
바울뿐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로부터 세상으로 파견된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세상 나라에 들어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고 있는 우리는 세상과 어쩔 수 없는 갈등을 경험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흔들리지 않고 우리 자신을 지키는 삶이 바로 하
나님의 아들들의 삶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쇠사슬에 매인 사신’(6:20)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을 잘 수행할 수 있
도록 기도를 부탁하며 서신을 마무리합니다.

우리는 교회의 정체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요? 한 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과거 역사를 반추
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들과 베푸신 은혜, 그리고 부여하
신 사명을 지속적으로 되새겨야 합니다. 6월,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되새기는 매일의 시간을 가지시
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