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휴가와 방학, 회복과 재충전의 기회라고 하는 이 시기에 과연 모든 사람이 ‘회복’을 누리고 있을까요? 그리고 회복은 ‘원래 상태로 돌아간다’는 뜻인데, 우리가 돌아가야 할 원래 상태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요? 여러분은 연초에 올 한 해를 이렇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그 모습으로 회복하고 계십니까? 연초의 계획이나 결심이 무엇이었는지는 기억하고 계신지요? 주님을 더 잘 섬기고,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겠다는 송구영신예배 때의 기도를 까맣게 잊고, 어느새 한 해의 절반을 보내버린 나를 발견하고 허탈감을 느끼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하지만 그렇게 허탈해하면서 또 늘 그랬듯이, 방학과 휴가철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7월에는 조금 무거운 본문이지만 요엘과 미가를 통해 회개와 회복에 대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두 선지자가 유다 백성들에게 선포한 말씀을 통해 짧게는 나의 지나간 반 년을, 길게는 지난 몇 년을, 더 길게는 내 인생 전체를 하나님 말씀 앞에서 진지하게 돌아보고 회개할 것은 회개하고, 결단할 것은 결단해 주님께서 주시는 회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회복의 길: 마음을 찢는 회개(욜 1장~2:17)
요엘서는 당시 유다 사람들이 겪었던 심각한 메뚜기 재앙으로 대한 탄식으로 시작합니다(1:2~4). 이 재앙으로 유다의 경제적 기반이 붕괴해 성전에 드릴 제물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요엘은 이 사태를 결코 단순한 천재지변으로 여겨서는 안 되며, 이를 계기로 각성하고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1:13~14). 요엘은 또한 재앙이 지나간 것이 아니라 메뚜기 떼보다 더 두렵고 큰 재앙, 전쟁의 참화가 눈앞에 있음을 경고하면서 유다 백성들에게 참된 회개를 촉구합니다(2:1~11).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며,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2:12~13). 지금도 유대인들은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 옷깃을 약간 찢곤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하나의 의식이 되어 하나님께 회개를 외치는 선지자가 나타나면 의례적으로 옷을 찢고 회개하노라고 고백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마치 매주 예배시간에 참회 기도를 드리는 순서가 되면 익숙한 기도로 중얼거리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으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는 길은 오직 대제사장으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이 이처럼 마음으로 돌이키는 회개로 하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2:15~16).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며 심판을 선포하시는 목적은 그들이 속히 회개하고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인간들은 아무리 가르쳐도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려 하지 않고, 자신의 죄 때문에 그 고통이 임했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능력만으로 안간힘을 쓰거나, 헛된 우상을 의지하곤 합니다. 적어도 이것은 신앙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 주변의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계실지 모른다는 말씀에 대한 민감함, 그리고 하나님께서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죄가 나에게 있지 않을까 늘 살피는 죄에 대한 민감함을 가지고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태도를 지녀야 합니다.
회복 1: 백성의 지위(욜 2:18~3장)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는 이유는 그들이 어서 돌아와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회복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엘은 유다의 모든 이들이 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복하며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메뚜기 떼가 먹어버리고 전쟁의 참화로 폐허가 된 땅의 모든 것을 회복하실 것이라 선포합니다(2:19~26). 그러나 참 회복의 핵심은 그저 땅이 기름지고 백성의 경제적 기반이 회복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이라는 언약관계가 새롭게 되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죄로부터 돌이켰을 때에 하나님의 영을 모든 백성들에게 부어 주시고 자기 백성으로 확증하기 원하십니다(2:28~29). 이 관계가 회복되면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칭해지는 자기 백성에 대한 신실한 구원자요, 보호자가 되십니다. 그 어떠한 두려운 이적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며(2:32), 하나님께서 유다를 징계하기 위해 사용하셨던 이방 민족들을 도리어 심문하시고, 그들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에 대해서 갚아주시되(3:1~15), 자기 백성에 대해서는 분명한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3:16). 결국 문제의 해결책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참된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모든 문제 해결의 첩경입니다.
회복 2: 진리의 말씀(미 1~2장)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회개를 촉구하시며 회복하기 원하시는 또 하나는 바로 ‘진리의 말씀’입니다.
미가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 우상을 숭배하고 있음을 질타하면서(1:1~7) 이스라엘 각 곳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선포합니다(1:11~16).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진리를 외치는 선지자에게 예외 없이 질타의 대상으로 진리의 말씀과는 양립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미가가 활동했던 당시는 탐욕스럽고 교만한 지도층이 진리를 말하는 선지자의 입을 막는 시대였으며(2:6), 선지자라는 자들이 거짓과 방탕을 찬양하는 시기였습니다(2:1~11).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우상숭배가 창궐했던 것입니다. 미가는 이러한 유다 지도자들을 하나님께서 다 심판하실 것이며 그들로부터 남은 자들, 즉 이런 악에 빠지지 않은 자들을 찾아 모으시리라고 선포합니다(2:12~13). 하나님은 거짓과 우상숭배가 난무하는 가운데에서도 진리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들을 찾아내시고 그들 가운데 미가와 같은 참 선지자를 세우시고, 진리를 회복해 가십니다.
회복 3: 메시아의 통치, 교회(미 3~5장)
미가 선지자 당시 정치, 사회, 종교 지도층들은 백성들을 수탈하며 자기 탐욕을 채우기에 바빴고, 이를 견제해야 할 선지자들은 오히려 그들의 앞잡이가 되어 마치 점쟁이들처럼 돈을 받고 좋은 예언을 해 줄 정도였습니다(3:1~5, 11). 이런 거짓된 자들은 오히려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하신다고 외쳤습니다. 그들이 신뢰한 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나 그 말씀이 아니라 성전 건물과 예루살렘 성벽이었습니다(3:10~12). 미가는 그들이 신뢰하는 성전과 예루살렘 성이 파괴되리라는 두려운 말씀을 선포한 이후에 그 성전이 무너진 시온 산에 이방인들이 몰려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행하는 일이 일어나리라고, 하나님의 도와 말씀이 건축물이 아닌 하나님의 전과 예루살렘에서 나오게 되리라고 선포합니다(4:1~2).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함으로써 참 평화가 선포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4:3~5). 사실 이는 유대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고통이 뒤따르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와 우상숭배에 빠진 자기 백성을 바로 세우시기 위해 이방인들로부터 고초와 수모를 당하게 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이나 성전, 그리고 그 모든 종교적 질서와 예식과 문화가 파괴되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거기에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며, 그 남은 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회복되고 승리하리라는 준엄한 메시지를 선포합니다(4:6~13). 특히 여기서 미가는 이스라엘을 회복할 메시아를 바라봅니다(5:1~4). 성전, 성벽, 종교적 질서, 제사 예식 등 모든 것이 파괴되고 사라진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해 새로운 메시아를 세우실 것입니다. 그가 모든 우상을 타파하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는 참 이스라엘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머리로 하는 참 하나님의 백성, 교회에 의해서 이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인 교회를 끊임없이 갱신해 가십니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하고 우상숭배에 빠질 때마다 하나님은 교회를 담금질하시며, 때로는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회복 4: 참된 예배(미 6~7장)
미가는 마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재판정에 고발하시는 비유를 사용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어기신 적이 없고, 오히려 더 큰 은혜를 베푸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하나님의 언약을 어겼음을 질타합니다(6:1~5). 하나님께서 그 많은 은혜를 베푸시면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셨던 것은 정의를 행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려야 했던 진정한 제사, 참된 예배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마치 이방 종교의 신들처럼 대했습니다(6:6~8).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한 후에는 가난한 자를 수탈하고 부정직한 매매를 자행했습니다. 이처럼 예배 의식과 형식만 있을 뿐 실천과 순종이 없는 종교 행위야말로 하나님께서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시는 바입니다(6:9~16).
미가는 이후에 이스라엘이 잘 되고 흥왕하리라는 전망을 내놓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너무나 절망적이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자가 없는 현실에서 그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바랄 뿐입니다(7:1~13).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올리는 찬양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마치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홀로 예배하는 예배자처럼, 그는 기도와 찬양을 하나님께 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시며, 언젠가 반드시 이런 참된 예배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참된 회복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번 휴가나 방학에 어디에서 어떤 활동을 하든지, 분주한 일상을 잠시 멈추고, 말씀 앞에서 진지하게 나의 삶을 평가하는 기회를 가지실 수 있기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잊지 않는 여름 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