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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09월

자유의 이름, 자유의 법

과월호 보기 박희원 목사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가 미국의 독립을 주장하는 연설 중에 했다는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말은 이 세상에서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덕목인지를 잘 드러내 줍니다. 그러나 실제로 ‘자유’란 그것을 누릴 만한 자격과 능력이 되는 사람에게만 유익이 되는 덕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유를 누릴 준비가 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자유민의 능력을 기르도록 가르치셨는데, 그 가르침마다 ‘하나님의 이름’이 중요하게 제시됩니다. 


용사(15:1~21)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끝나는(15:1, 21) 이 찬양은 하나님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표현하고 있는데, 특별히 눈에 띄는 하나님의 이름은 ‘용사’(15:3)입니다. 이는 직역하면 ‘전쟁의 남자’라는 뜻입니다. 즉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그 백성에게 자유를 부여할 만한 충분한 무력을 보유하셨음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용사로서 대적에 맞서 싸워 주심을 이스라엘로 하여금 확신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사람은 자신을 종으로 삼으려는 세상의 모든 악한 세력들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치료자(15:22~17:7)
마실 물이 없어 일어난 다툼으로 시작하고 끝나는(15:22~27, 17:1~7) 이 단락에서 제시되는 하나님의 이름은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15:26)입니다. 자유는 좋은 것이지만, 가끔 쓴맛을 내기도 합니다. 사흘 동안 광야를 걸어 겨우 찾아낸 물이 써서 마실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자유의 쓴맛(15:23)을 느낀 이스라엘은 모세를 원망합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어려움에 처할 때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시절로 회귀하려 합니다. 출애굽 후 두 달 정도 지나 양식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홍해와 마라와 엘림(15:27)에서의 기억보다 애굽에서 먹었던 고기와 떡의 기억이 먼저 떠오릅니다(16:3). 사실 그 고기와 떡을 먹기 위해서 가혹한 노동을 견뎌야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식량이 떨어진 두려움 앞에서 그들의 뇌리에는 종살이의 고달픔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이전에 갖고 있던 양식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만나는 아침마다 밖에 나가서 거두는, 즉 매일 추수라는 최소한의 노동만을 요구하는 양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동도 하루의 양식만큼으로 제한됐습니다.
오직 안식일 전날에만 하루 더 비축이 가능했습니다. 안식일에는 만나를 거두는 최소한의 노동조차 금지됩니다. 가혹한 착취를 당하면서도 먹고 살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모아 미래에 대한 공포에 대응하기 위해서 노동했던 이스라엘은 이제 매일 양식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최소한의 노동만으로 살게 됐습니다.
물론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따라 이동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수확하는 등의 노동을 해야 했지만, 노동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이라는 공포와 재물을 축적해 다른 이들보다 더 우위에 서려는 탐욕으로부터 자유를 얻게 됐습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이런 자유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탐욕과 공포에 휩쓸리지 않는 삶’을 뿌리내리는 데에도 훈련이 필요했습니다(16:20, 27~2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광야로 이끄셔서 깊이 뿌리내린 탐욕과 공포로 인한 고통을 치료하고 계셨습니다.

깃발(17:8~18:27)
출애굽 당시만 해도 이스라엘은 그저 종들의 집단이었습니다. 아말렉 군대는 이런 이스라엘에게 실로 큰 위협이었을 것입니다(17: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산 위에서 두 손을 들 때 여호수아가 이끄는 군대가 이기게 하셨습니다. 이에 모세는 ‘여호와 닛시’ 즉 ‘여호와는 나의 깃발’이라는 이름의 제단을 쌓았습니다(17:15). 이로써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 모이는 하나님의 군대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군대로 조직화된 것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공이 컸습니다. 이드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가운데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펼치셨음을 들었고, 여호와께서 모든 신보다 크신 참 하나님이심을 확신했습니다(18:1~12).
그러나 그 하나님의 권위가 이스라엘 전체에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장인 이드로를 만나기 전까지 백성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일일이 판결해 줘야만 했습니다(18:13~16). 이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부여하신 권위가 다른 이들에게는 나눠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이드로는 이 모습을 보고 모세에게 주어진 권위가 백성들 사이로 나뉘어야 함을 지적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규례를 가르치고, 백성 중에 지혜로운 자들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삼아 그 규례대로 일을 나눠 함께 담당하도록 했습니다(18:19~23). 모세의 가르침은 법이 됐고,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들의 다스림은 질서가 됐습니다.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명실상부한 하나의 공동체이자 군대가 됐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깃발 아래 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주권이 모든 백성에게 미침으로써 법과 질서 아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하나님과 언약 체결(19:1~25)
출애굽 후 3개월 동안 이스라엘은 용사요, 치료자요, 깃발이신 하나님을 체험하며 시내 산에 도착해 하나님과의 언약 체결을 준비합니다. 이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요,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이라는 지위를 얻게 될 것입니다(19:5~6). 이는 이전에 애굽 왕 바로의 종이었던 이스라엘이 온 땅의 주 여호와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계를 소유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소유’로 삼으시겠다는 말씀은 단순한 동어반복이 아닙니다. 소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세굴라’는 당시 신하들 중 최고의 자리에 있는 자를 가리키는 말로서, ‘2인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스라엘로 하여금 온 세상 나라 중 최고의 나라가 되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셔서 이들을 통해 온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권을 펼쳐 가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예식은 아주 엄숙한 분위기에서 거행됐습니다. 이스라엘은 옷을 빨고 자신을 정결하게 했을 뿐 아니라, 셋째 날까지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했습니다(19:10~15). 하나님께서는 강림하셨을 때에도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계속 주의를 주십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을 보려 한다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기에 언약 체결식은 그만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19:20~24).

자유와 생명의 법을 주신 하나님(20:1~21:36)
20장부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제시하신 법이 어떤 것인지가 서술되기 시작합니다. 모든 율법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 십계명(20:1~17)은 ‘자유’와 ‘생명’의 가치가 이스라엘에서 가장 중요시돼야 함을 선포합니다.
애굽에서 종교란 피지배민들을 종교적 터부나 저주 등으로 위협하고 얽매어 궁극적으로 통치자 바로에게 굴복하게 만드는 도구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은 그런 이방종교의 신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는 조각한 우상이나 다듬은 돌 제단, 계단 등을 사용할 수 없었고, 오직 흙이나 자연석으로 간소하게 쌓은 제단만을 사용해야 했습니다(20:4~6, 22~26). 하나님의 이름을 마음대로 들먹이며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 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명령하는 것도 금지됐습니다(20:7). 하나님의 법은 철저하게 소수의 통치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모든 사람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어떻게 예배할 것이냐를 가르친 이후에(20:22~26) 즉시 다뤄진 문제가 ‘노예제도’라는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21:1~11). 세상의 법은 대부분 최고통치자에 대한 규정부터 시작하게 마련인데, 하나님의 법은 노예제도 운영법에 대한 규정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예제도 자체를 바로 금지하지는 않으시면서도 종의 인권을 지킬 수 있도록 명령하셨는데, 이는 당시 종의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조건 금지했을 때 오히려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종들이 있음을 잘 알고 계셨기에 제도 자체는 인정하시면서 그 제도에 의해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것을 최소화하는 법을 세우신 것입니다.
노예에 대한 가르침이 끝난 후, 하나님께서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확립하십니다(21:12~36). 고의로 살인한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해야 하며, 실수에 의한 살인이라 하더라도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면 역시 생명에 준하는 벌을 받도록 규정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유민은 인간의 생명을 최우선의 가치에 둬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의 종이었던 우리에게 자유를 주셔서 의의 종이 되게 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셨습니다. 출애굽의 이야기와 율법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이 큰 은혜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과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는 9월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