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유대인들에게 레위기는 어릴 적부터 회당에서 읽고 습득하는 중요한 성경이지만, 오늘날 현대인들은 파악하기 힘든 규례들이 가득 차 있다는 선입견 때문에 가급적 기피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레위기의 히브리어 이름인 “봐이크라”(그리고 그가 부르셨다)에서 알 수 있듯이, 레위기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출 19:6)으로 부르신 지침서입니다. 신학자 고든 웬함은 레위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를 설명하면서, “회막 앞 제단에서 행해진 제사의 이해는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처럼 레위기에 제시된 제사는 하나님의 임재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레위기에 제시된 각종 제사들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번제, 헌신과 감사(1장, 6:8~13)
번제는 ‘태우는 제사’를 뜻하며, 히브리어로 ‘올라’라고 부릅니다. ‘올라’는 히브리어 동사 ‘알라’에서 파생된 용어로 ‘올라가다’라는 의미인데, ‘제단 위의 짐승을 불로 태워, 향기가 하나님께로 올라감’을 뜻합니다. 사실 번제는 누구든지 자신이 원하는 때에 성전에서 드릴 수 있었던 제사였고, 가장 많이 시행됐습니다.
번제의 1차 목적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헌신입니다. 이를 위해 경제적 형편에 따라 다양한 짐승을 드리는 것이 허용됐습니다. 번제에는 소, 양, 염소, 비둘기가 허용됐는데, 비둘기에 대한 규정을 제외하고는 대체로 흠 없는 수컷 짐승을 바쳐야 했습니다. 당시 통상적인 관념상 수컷 짐승을 귀히 여겼는데, 이를 통해 빈부 격차에 따라 제물의 종류는 달라도 모두가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번제의 절차는 먼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준비한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고 직접 죽입니다. 이후 피는 제사장이 제단에 뿌리고, 짐승의 각 뜨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하며, 제사장은 이를 제단 위에 올립니다. 그러고 나서 짐승의 내장과 정강이 세척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하고, 마지막 짐승을 태우는 일은 제사장이 감당합니다(1:3~9).
안수를 통해 짐승에게 죄가 전가되면 짐승을 죽이는 작업은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 직접 했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제물 되신 이유가 죄인인 ‘나’ 때문이라는 사실로 연결됩니다. 예수님을 죽인 자는 ‘나’이며, 그렇기 때문에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항상 구원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충성과 헌신으로 삶 전체를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소제, 곡식으로의 감사(2장, 6:14~23)
소제는 제물로 곡식을 드리기에 피 없이 드리는 유일한 제사입니다. 소제를 뜻하는 히브리어 ‘민하’는 ‘선물’ 또는 ‘공물’을 의미하며, 일종의 감사 제사입니다. 번제 다음으로 항상 소제를 드렸고, 번제와 화목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제사 중 하나입니다(2:2).
기본 제물은 고운 가루, 기름, 유향이며, 요리한 제물은 굽는 방식에 따라 화덕에 굽거나, 철판에 부치거나, 냄비로 굽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누룩과 꿀을 섞는 것은 금지됐습니다(2:4~11). 그 이유는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2:13)는 구절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데, 발효를 일으키는 누룩과 꿀은 ‘부패’와 ‘변질’이라는 부정적 변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소제는 곡식으로 드리는 감사 제사로, 짐승을 바치기 어려운 가난한 사람들도 소제물을 가지고 나아와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올릴 수 있는 제사입니다. 또한 제사장에게는 식량을 공급하는 원천(2:10)이 돼 제사장들이 제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했습니다.
화목제, 수직적·수평적 교제(3장, 7:11~36)
화목제는 히브리어로 ‘쉘라밈’이며, 어근인 ‘샬람’이 ‘샬롬’에서 파생됐기에, ‘평화, 화목, 안녕’이라는 뜻이 담긴 제사로 이해됩니다. 화목제는 번제와 소제와 같이 향기로운 냄새를 일으키기 위해 불에 태우는 화제(3:5, 14, 16)이며, 고백제(감사제), 자원제(낙헌제), 서원제로 드립니다.
화목제는 짐승(소, 양, 염소)의 암수 구분 없이 드렸는데, 이는 화목제물의 고기로 함께 식사교제를 할 수 있었기에 바치는 사람의 재량에 따라 행할 수 있었습니다.
화목제도 자발적인 제사였기에 언제든 짐승을 드릴 수 있었고, 여호와께 화제로 드린 고기로 하나님과의 수직적 교제뿐만 아니라, 식사를 통해 사람들과의 수평적인 교제도 나눌 수 있는 특징을 가집니다(7:15~16). 화목제의 특성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예배를 보면, 하나님께 대한 집중뿐만 아니라 성도들 간의 나눔과 화해도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임재한 곳에서 이뤄지는 교제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베푸신 성찬식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과 각 개인의 관계, 그리고 성도 간의 관계 등 모든 관계가 참된 화목과 평안 안에 있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속죄제, 죄의 문제 해결(4:1~5:13, 6:24~30)
속죄제는 히브리어로 ‘하타트’라 하며, ‘하타’(죄를 짓다)라는 동사로부터 파생됩니다. 이는 부지불식간에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한 제사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제단에 피를 뿌리는 행위와 고기를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있습니다.
속죄제는 죄를 지은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다양한 제물로 드렸습니다. 제사장이 죄를 범했을 때나 온 회중이 부지중에 허물이 있다가 이후 깨닫게 됐을 때는 수송아지, 족장은 숫염소, 평민은 암염소를 드렸습니다. 그 외에도 암컷 어린양, 산비둘기, 집비둘기 등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고, 너무 가난하면 고운 가루 10분의 1 에바를 바칠 수 있었습니다.
속죄제는 불가항력적으로 지은 죄라도 죄가 발견되면 언제든 드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항은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단을 비롯한 주요 성물들을 피로 씻어 내는 것은 물론, 성소 전체를 씻어 내야 했습니다.
이는 죄를 씻어 주는 속죄제의 기능을 보여 주기 위함으로, 번제·소제·화목제를 설명할 때는 죄 고백에 대한 언급이 없지만 속죄제에는 반드시 자신의 죄에 대한 깨달음과 고백이 필요합니다(4:13~14, 23, 28, 5:4~5).
이같이 속죄제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신다는 예표와도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를 위해 속죄제물이 되셨고, 우리는 그 피로 인해 거룩함을 입었습니다(히 13:11~12). 또한 제사장과 온 백성이 죄를 지었을 때 속죄제물로 바친 고기는 진영 밖에서 태웠는데(4:11~12, 21), 이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보여 주는 행동입니다.
속건제, 피해 배상(5:14~6:7, 7:1~10)
속건제는 히브리어로 ‘아샴’이라 하는데, ‘죄책감을 느끼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는 죄책을 지는, 배상을 해야 하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죄를 해결하는 제사라는 측면에서는 속죄제와 비슷하지만, 속건제는 하나님과 사람에게 재산상의 피해를 입혔을 때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하는 점이 다릅니다.
여호와의 성물에 죄를 지은 자는 숫양으로 속건제를 드리고, 피해를 입힌 값에 5분의 1을 더해 배상해야 했습니다(5:16~18). 또한 이웃의 소유권을 침해해 물질적인 피해를 준 경우에도 숫양으로 속건제를 드리고, 피해를 입힌 금액에 5분의 1을 더해 배상해야 했습니다(6:1~7).
속건제는 내 죄로 하나님께 입힌 피해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인해 완전히 보상됐음을 드러내는 제사입니다. 또한 사람 간에도 피해를 입혔을 때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책임질 줄 알고, 자신의 잘못에 대해 뉘우치는 자세는 오늘날에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제사의 모습입니다.
거룩함을 준비하라(7:37~9:24)
제사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7:37~38),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식이 이어집니다. 레위기 8장은 크게 제사장 위임식 준비(8:1~4), 위임식 순서(8:5~32), 위임식 기간(8:33~36)으로 구분합니다.
우선 아론과 아들들이 제사장 임명을 받기 위해 준비했고, 제사장들에게 입힐 의복과 관유, 제물로 드릴 수송아지, 숫양 두 마리, 무교병 한 광주리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위임식에는 온 회중이 참여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사람을 세우는 자리에 모든 회중이 마땅히 참여할 의무가 있음을 알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위임식의 모든 과정 중 가장 중요하게 여기신 부분은 ‘거룩함’입니다. 제사장으로 취임하기 위해 몸을 씻고, 속죄제를 드리고, 피를 제사장의 특정 부위와 제단에 바르는 행위는 거룩하지 않고서는 제사장직을 감당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는 의식입니다.
아론의 첫 제사(9장)를 통해서도 거룩함에 대한 강조는 여전히 드러납니다. 7일간의 위임식 동안 제사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8일째 되는 날 또 속죄제를 드리라고 하신 까닭은 인간의 죄악과 부패가 너무나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내 몸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롬 12:1) 전적 헌신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거룩함을 요구하셨습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 반드시 회복돼야 할 하나님의 속성으로, 자신의 백성을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셨기에 타협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백성과 자신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 사이의 관계 회복을 위해 예배를 통한 진정한 회개가 일어나기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자로 바로 서기 위해 날마다 회개하며,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삶이 변화돼야 합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 8월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옷으로 갈아입는 데 꼭 필요한 도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