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존 스토트는 그의 저서 『나는 왜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에서 “내 마음은 십자가 위에서 외롭고, 뒤틀리고, 고난당하는 예수님을 향해 가고 있다”고 고백하며, “십자가야말로 승리의 쟁취이며, 부활은 승리의 확인, 선포, 증거”라고 소개합니다. 그의 선포가 나의 고백이 된다면,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확실히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 7월호를 통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참된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해 보기 바랍니다.
무엇에 집중하며 살아야 하는가(눅 21장)
예수님께서는 앞서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서기관들(참조 20:45~47)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본문에서 가난한 과부가 드린 헌금에 주목하십니다. 부자가 드린 금액에 비하면 절대적으로 적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전 재산을 헌금으로 드렸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공격하던 서기관들과 당시 사회에서 천시받던 과부를 대조해 하나님께서 어떤 자를 기뻐하시는지 보여 주는 부분입니다(1~4절). 사실 물질에 대한 소유욕이 크면 클수록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쉽지 않기에, 주님께서 원하시는 제자의 길을 가려면 온전한 헌신에 대한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성전의 아름다움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장차 있을 이스라엘의 멸망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때를 묻는 사람들에게 성도들을 미혹시키는 소문과 현상은 계속 있겠지만 흔들리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5~9절).
또한 이 땅에 전쟁, 지진, 기근, 전염병, 하늘의 징조 등 재앙이 나타나고,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 박해를 받겠지만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0~19절).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의 멸망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재앙은 상상을 초월하는 참혹한 환난으로, 주님을 배반한 자들을 벌하는 도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현상과 함께 재림을 강조하시며,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온전히 그 역할을 감당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20~33절).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기억하며, 방탕함과 술 취함, 생활의 염려에서 벗어나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34~38절). 말세의 징조에 눌려 두려움에 떨지 말고 기도로 그때를 준비해야 합니다. 오직 주님께서는 말세의 현상보다 제자의 준비된 자세를 강조하셨음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심이 십자가에서 증명되다(눅 22~23장)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온갖 궁리를 했습니다. 백성들 사이에서 예수님의 인기가 상당해 함부로 예수님을 고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부의 도움이 있어야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상황에서 저자 누가는 “가룟인이라 부르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가니”(22:3)라고 표현합니다. 사탄은 주님의 제자인 유다를 돈으로 유혹했고, 그는 이 계략에 넘어갔습니다(22:4~6).
반면, 예수님께서는 묵묵히 유월절을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을 위해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예비된 장소에서 마지막 만찬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셨음을 기억하며 기념하는 날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베푸신 성만찬을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 됐습니다(22:14~23). 과거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흘렀던 은혜가 이제 모든 인류에게로 확장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후 계속해서 자신의 죽음과 관련된 일들을 설명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22:24~34)과 이제는 전대와 배낭과 검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22:35~38). 또한 마지막을 앞두고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오르신 후 땀이 핏방울같이 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22:39~46).
이처럼 주님께서는 자신의 죽음 이후에 있을 일들을 준비하셨습니다. 묵묵히 하나님의 뜻이 세워지기를 바라셨고, 그 뜻에 순종해 어둠의 권세를 섬기는 무리에게 붙잡혀 재판을 받으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으며(22:54~62),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희롱과 폭력 앞에서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붙인 ‘신성모독죄’라는 명목으로 공회 앞에 서시게 됐습니다(22:66~71).
사실 저자 누가는 누가복음을 기록하며,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계속해서 강조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집중 추궁한 내용 또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냐는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인 빌라도뿐만 아니라 헤롯도 예수님을 죽여야 할 이유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23:13~15). 결국 세상 권력은 예수님의 십자가형의 정당성에 대해 아무것도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입증하는 계기만 만들게 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악한 의도와 상관없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 고난을 감당하셨습니다. 이는 세상 통치자들의 일반적인 정복 방식이 아니라, 온 인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졌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악의 세력들을 무력화한 하나님 나라의 방법입니다(참조 골 2:15).
예수님의 십자가형이 집행되자 천지 만물이 반응합니다. 정오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빛을 잃어 온 땅에 어둠이 임했으며, 성소의 휘장 한가운데가 찢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의 손에 부탁하고 숨지셨습니다(23:44~46).
저자 누가는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이방인 백부장의 고백을 통해 다시금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합니다.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23:47).
부활 신앙을 계승하라(눅 24장)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부활을 믿을 수 있는 이유를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실례가 되셨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부활의 근거가 된다”라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부활을 통해 완벽하게 입증하셨습니다(1~6절). 이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며,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예언된 말씀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빈 무덤을 목격하고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여자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8~11절). 또한 엠마오로 가던 글로바라 하는 제자와 다른 제자도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주님의 부활 소식을 완벽하게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분이 예수님이신지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15~16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더디 믿는 자들’이라 책망하시고,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시며 예수님의 부활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25~27절). 이후 그들은 주님과 나눈 만찬을 통해 가려진 눈이 밝아져 예수님을 알아보게 됐고, 말씀으로 마음이 불타오르는 것을 깨달아 그길로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 소식을 알립니다(30~35절).
예수님께서도 제자들 앞에 나타나 부활하셨음을 증명해 보이셨습니다(33~43절).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모두 이뤄져야 함을 말씀하시며 성경에 예언된 그리스도의 부활을 깨닫게 하셨습니다(44~48절). 이처럼 주님의 부활은 성경에 이미 예언되고 성취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악한 권세가 더는 아무 힘도 쓰지 못함을 보여 주는 완벽한 승리의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성만찬을 기뻐하라(시 104편)
시편 104편은 여호와께서 창조주로 하신 일을 송축하며 시작됩니다.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신 분으로(1~4절), 땅에 기초를 놓으시고 깊은 바다의 경계를 정하는 창조주이심을 노래합니다(5~9절). 그리고 창조주 여호와께서 피조물의 아름다움을 위해 물을 공급하셨고(10~13절), 땅을 돌보는 역할을 맡은 인간을 위해서도 각종 먹을 것을 허락하셨음을 보여 줍니다(14~23절). 또한 생명의 근원이신 여호와의 업적을 열거하고(24~30절), 평생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찬양하겠다고 선포합니다(31~35절).
누가복음에 이어 묵상한 시편 104편은 성육신하셔서 우리에게 성만찬을 베푸신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반응이어야 합니다. 시인의 고백처럼 새 언약을 세우시기 위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평생 높이며 송축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 ‘성만찬’이라는 주제는 반드시 그리스도인의 삶으로 연결돼야 합니다. 사실 그리스·로마 문화에서 ‘십자가’는 수치의 표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사하는 유일한 통로이기에 승리의 상징이 됐으며,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을 이기신 일이기에 우리에게 승리를 확인시켜 줍니다.
이처럼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죄와 사망 권세를 완전히 이기시고, 성만찬을 통해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묵상하며,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또한 이 길만이 세상을 이길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