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제자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제자도는 예수님의 명령이자 부름받은 백성이 마땅히 감당해야 할 사명이기에,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영육 간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 4:13)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주님의 말씀이 삶 가운데서 이뤄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4~20장을 통해 내 삶이 주님의 말씀대로 다시 빚어져야 할 부분은 무엇이며, 제자도의 길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함께 묵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14:1~35)
제자도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부분은 ‘자기 부인’(自己 否認)입니다. 자기 부인이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께서 가신 길을 묵묵히 따라갈 때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삶과 한참 거리가 있었던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책잡기 위해 주님을 엿봤으며, 안식일에 병 고침에 대한 주님의 해석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습니다(14:1~6).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에 대한 부담이 전혀 없었고, 오직 정치적인 메시아를 통해 이 땅 위에서 높임받을 것만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들을 향해 주님께서는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1:14)는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또한 잔치를 베풀 때는 부유한 이웃보다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자들을 초대하라고 말씀하십니다(14:7~24). 바로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들의 모습이며, 제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기 부인입니다.
목자의 심정을 회복하라(15:1~32)
제자도의 핵심 중 하나는 한 영혼의 소중함을 깨닫는 목자의 심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아무리 많은 양을 보유하고 있어도,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애쓰시는 분입니다(15:1~7). 그뿐 아니라 주님께서는 열 드라크마 중에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먼지를 뒤집어쓰면서 부지런히 찾는 사람처럼, 죄인 한 사람의 회개를 간절히 원하시는 분입니다(15:8~10).
또한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아들이나, 거지가 돼 돌아온 동생에게 잔치를 베푸는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형이 우리의 모습이라 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한 영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15:11~32). 따라서 삶 가운데 온전히 제자도를 실천하기 원한다면, 주님께서 보여 주신 ‘단장지애’(斷腸之哀,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의미함)의 정신을 삶으로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지혜, 믿음, 용서로 무장하라(16:1~17:37)
제자의 길을 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는 지혜입니다. 주님께서는 옳지 않은 일을 한 청지기를 칭찬하시며 지혜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신의 부와 안위를 위해 이토록 약삭빠르게 행동하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의 한시적인 문제가 아닌 영원한 문제에 대해 그들보다 훨씬 더 지혜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16:1~13).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율법에 능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안다는 바리새인들이 오히려 영원한 문제에 대해서는 지혜롭지 못하고, 돈을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 때, 우리는 욕심 가득한 부자가 받은 고통이 아닌, 거지 나사로가 받은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16:19~31).
또한 제자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스스로 조심하고, 회개하고, 용서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믿음조차 소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소유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나병을 치유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마리아인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통해 증명됩니다(17:11~19). 은혜를 받고도 그 근원을 모른다면 육신은 회복돼도 영혼 구원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이처럼 내 안에 작은 믿음이 있기를 갈망하고, 이를 통해 구원받았음에 감사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온전한 제자로 성장해 갈 수 있습니다. 지혜롭고, 남을 용서할 줄 알며, 믿음으로 무장된 제자의 길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된 길입니다.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라(18:1~19:27)
주님께서는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 제자들에게 알리십니다. 온갖 희롱과 능욕, 그리고 채찍질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셨지만, 3일 만에 살아나신다는 사실이야말로 주님의 제자로서 반드시 깨달아야 할 진리의 핵심입니다(18:32~33).
이를 가르치시기 위해 주님께서는 불의한 재판장 비유를 통해 온전히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을 알리셨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자들에게는 세리의 가슴 치는 회개를 통해 자신을 낮추는 것이 높이는 길임을 알리셨습니다(18:1~14). 그뿐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믿음이 필요함을 가르치시고, 재물에 눈이 어두운 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18:18~30).
하지만 이런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주님의 길을 깨닫지 못합니다(18:34). 그들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께서 하신 일을 목격했지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예수님을 따르는 맹인보다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18:35~43). 주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주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명을 분명히 기억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입성 전 여리고에서 세리장이면서 부자인 삭개오를 만나십니다. 그는 죄인이라고 배척받던 자였지만 주님을 즐거움으로 영접했고, 착복한 재산도 나누겠다고 결단합니다. 비록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힘든 부자이자 죄인으로 불리던 자일지라도, 주님을 기쁘게 영접하고 실제적인 사랑을 실천하면 주님께서는 구원을 베푸십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과 동시에 므나 비유를 통해 사명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기 위해 먼 나라로 떠나면서 자신의 종들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당시 1므나는 석 달 치에 해당하는 삯으로 10므나는 2년 6개월에 해당하는 급료입니다. 따라서 종들은 주인의 마음을 헤아려 최선을 다해 사명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종이 주어진 사명을 바르게 이행하지는 않았습니다. 한 므나를 가지고 열 므나를 남긴 종은 열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지만, 주인을 엄한 사람이라 오해하고 사명을 이행하지 않은 종은 있는 것도 다 빼앗겼습니다.
여기서 더 주목해야 할 사안은, 왕이 먼 나라에 갔을 때 그가 왕 됨을 원치 않는다고 왕위 등극을 방해했던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죽음을 맞게 됩니다(19:11~27). 자신의 사명을 행하지 않은 종도 문제지만, 주님의 왕위 등극에 반대했던 자들, 즉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일컬어 비유하신 결과는 죽음과 심판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제시하신 제자도에 대한 바른 이해, 죽음과 부활의 중요성, 그리고 사명에 대한 충성이 온전히 세워질 때,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우리도 온전히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사명을 다하시다(19:28~20:47)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왕의 입성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초라합니다. 하지만 모든 장면이 사전에 계획된 장면과 같고, 누가도 예수님께 모든 주도권이 있는 듯 묘사해 예수님께서 스가랴 9장 9절의 말씀을 성취하고 계심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주님은 눈물을 보이시며, 이 성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십니다(19:41~44). 이는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하는 행위에 대한 예수님의 감정적인 표현으로, 이후에 있을 일들을 짐작하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셔서 기도와 예배 장소를 바로잡으셨고, 성전에서 가르치며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직접적으로 충돌하시기 시작합니다(19:45~48).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권위에 흠을 내기 위해 질문하고(20:1~8), 세를 바치는 문제(20:20~26)와 부활의 때에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에 대한 문제(20:27~40) 등을 두고 예수님을 모순에 빠트리려 합니다.
이에 대해 주님께서는 자신의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며, 세를 바치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것 모두 하나님께 대한 복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부활 후의 삶은 현재의 삶과는 전혀 다르다는 말씀으로 오히려 그들의 이중성과 위선을 경고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철저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르는 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제자도입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영혼 하나를 소중히 여기는 목자의 마음이 필요하고, 세상 사람들보다 지혜롭고, 겸손하며, 깨끗함으로 무장된 모습으로 변화돼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주님께서 행하실 사명을 기억하고, 이 일이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은 곳곳에 수많은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어서, 믿음으로 살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제자도가 너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고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을 따라 묵묵히 걸어간다면, 내 삶의 최고의 선물이 바로 제자도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 6월호가 이 같은 삶을 사는 데 소중한 이정표로 자리매김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