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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5월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에서 보여 주신 제자도

과월호 보기 조철민 목사(<날샘> 디렉터)

마이클 윌킨스는 ‘예수님의 제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제자란 영생을 얻기 위해 예수님께로 와서, 예수님을 구주와 하나님이라고 시인하고, 그분을 따르는 삶을 시작한 사람이다.” 그리고 이 제자들이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삶을 위탁하고, 종과 증인으로 실제 생활 속에서 구현한 원리를 ‘제자도’라고 부릅니다. 누가복음 9~13장에는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을 결단하신 주님께서 제자도의 여러 가지 유형을 가르치시는 장면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제자도의 주요 주제들을 살피면서, 제자의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제자의 사명과 가야 할 길(9:1~62)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자격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주님께 삶의 모든 것을 맡기는 ‘전적 위탁’,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며 우리의 구주가 되셨다는 사실에 대한 ‘증인’, 그리고 주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기꺼이 섬기신 ‘종’의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누가복음 9장 서두부터 이와 같은 전적 위탁, 증인, 종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요구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신 후 그들에게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전파하는 증인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전도여행을 위해 아무것도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제자의 모습은 그들이 오직 주님만 의지해 하나님 나라 확장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9:1~6). 이것이 바로 전적 위탁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요구는 오병이어 사건에서도 드러납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듣기 위해 찾아온 많은 무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말씀하십니다(9:13). 하지만 제자들은 이를 감당할 믿음의 용량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이성적 판단에 갇혀서, 주님께서 부어 주신 권위와 능력으로 사역한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런 그들을 향해 자신 스스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이심을 증명하셨고, 앞으로 자신이 가셔야 할 길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 주님의 핵심 메시지입니다(9:18~27).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이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눈 그 장소가 좋았지, 주님께서 가셔야 할 제자의 길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9:33). 심지어 제자들은 서로 누가 큰지 변론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 했습니다(9:46~48). 또한 예수님을 거부한 사마리아인들에게 불을 내려 멸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습니다(9:51~56).
이런 그들에게 주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기보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고, 이를 위해 스스로 본을 보이시며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가르치신 참된 제자도의 모습입니다(9:57~62). 주님께서는 제자로 우리를 부르실 때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않으셨습니다. 권위와 능력을 주실 뿐만 아니라 스스로 모범이 되셨고, 제자의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제자가 기억해야 할 모습(10:1~11:54)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 파송 이후, 다시 칠십 인의 제자들을 파송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10:9, 11)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도의 길을 가기 위해 복음 전파는 반드시 이뤄야 할 사명임을 가르치십니다. 그뿐 아니라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열두 제자에게 요구하신 바와 같이 전적 위탁의 필요성도 알리셨습니다(10:4).
이런 역할을 감당하고 돌아온 칠십 인의 제자들은 주님 앞에서 기뻐했다고 합니다. 사실 이들이 기뻐한 까닭은 그들이 누린 권능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구원받음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죄인 된 우리에게 기뻐할 수밖에 없는 궁극적인 목적을 가르치신 것입니다(10:17~20). 결국 예수님을 이 땅 위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10:21~24).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구원받은 제자가 행해야 할 모습에 대해 가르치십니다. 특히 강도 만난 자의 비유를 통해 이웃에 대한 범위를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 확장시켜야 함을 알려 주십니다. 또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자신의 것들을 내줄 수 있는 헌신이 필요함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마땅히 이웃을 사랑해야 함을 알리신 것입니다(10:25~37).
한편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를 통해서는 많은 일로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히기보다 주님과의 교제에 더욱 힘쓰라고 말씀하십니다(10:38~42). 그리고 아버지의 뜻을 알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교제가 반드시 필요하며, 이를 위해 기도하는 자가 돼야 함도 말씀해 주셨습니다(11:13). 이처럼 구원받은 제자라면 주님의 마음을 품고, 주님께 무릎을 꿇으며 간구하는 자가 돼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 가운데 일련의 충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과연 하나님께로부터 나왔는지, 사탄으로부터 나왔는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더러운 영들은 함께 일하며(11:24~26), 참된 기쁨은 하나님께 순종함을 통해 나오고(11:27~28), 표적을 주시는 분이 표적 자체보다 더 중요하며(11:29~32), 마지막으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권능을 부여받으신 분임을 알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11:33~36).
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상관없이 여전히 탐욕과 악독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 주님의 말씀을 책잡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는 결코 제자의 모습이 아니며, 우리들이 경계해야 할 모습입니다.



제자를 향한 경고와 교훈(12:1~13:9)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고자 하는 자들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주님의 인기도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인도하십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누룩에 대한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누룩은 ‘위선’을 뜻하는데, 위선은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12:1~3). 그뿐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시며,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2:4~7).
또한 사람 앞에서 주님을 시인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주님도 그를 시인하시며, 부인하는 자는 부인당할 것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12:8~12). 마지막으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시면서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며, 인간의 세속성에 대해 경고하십니다(12:13~21).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고 간구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12:22~34).
아울러 종말의 때를 늘 준비하라고도 말씀하십니다.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 도둑이 올 때를 준비하는 주인, 주인의 의도에 따라 종들을 잘 관리한 청지기를 통해 종말의 때에 주님의 뜻을 준비하고 성실하게 감당해야 함을 말씀을 통해 가르치셨습니다(12:35~48).
하지만 주님께서 주신 교훈은 세상이 소화하기 어려운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으로 인한 분쟁은 피치 못할 일이었습니다. 주님도 하나님의 뜻을 세우시기 위해 당시 기득권층이었던 유대인 종교지도자들과의 분쟁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우선돼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이 회개를 통해 하나님께로 돌아와 다시 한번 열매 맺기를 원하셨습니다(12:49~13:9).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예리한 경고와 교훈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세우기 위해 준비된 자로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사역의 특징(13:10~35)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세워 가고자 다음과 같은 사역들을 행하셨습니다. 안식일에 귀신 들린 여자를 고치신 일은 안식일이라는 율법적 한계에 갇혀 생명 사역을 포기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어서 겨자씨와 누룩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점점 더 확장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좁은 길로 들어가기를 힘쓰며 믿음을 통해 하나님만을 신뢰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또한 자신의 사명을 성취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셔야 했고, 그곳에 사는 백성에 대한 애정도 보이셨습니다. 결국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약속된 말씀을 성취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한 발자국씩 나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은 스스로 제자도의 모범이 되셨고, 제자도의 핵심을 가르치시기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누가복음에는 광의적인 의미로 ‘제자’라는 용어가 제시돼 있습니다. 이는 열두 제자뿐만이 아니라, 칠십 인의 제자들은 물론 주님의 사명을 받은 자, 보냄받은 자라면 누구나 제자의 삶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명확한 주님의 명령은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 9:60b)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길을 이루기 위한 예루살렘으로의 여정은 결코 높은 자리로 다가가기 위함도,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길도 아닌,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러 가시는 길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날마다 솟는 샘물> 5월호를 통해 제자의 길을 다시금 생각하고, 주님께서 먼저 가신 그 길을 따라가는 주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