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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치과 대기실에 앉아 있을 때처럼 무의미한 기다림이 아니다. 알다시피 치과 병원은 늘 예약 초과이다. 그래서 예약한 시간이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직 대기실에 앉아 있다. 나는 남자이지만 지금 이제 여성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세계 최고의 치킨 요리법이 꽤 그럴 듯해 보여 이 페이지를 찢어 가려고 하는 순간, 내가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그와는 다르다. 기다림은 하나님의 임재와 약속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한 능동적인 삶이지, 이따금씩 의심에 사로잡히는 수동적 생활 방식이 아니다. 기다림은 활동 불능 상태라는 결과를 낳는 내적 고뇌가 아니다. 그렇다. 기다림은 담대한 행동이라는 결과를 낳는 내면의 안식이다.
기다림은 소명이다. 기다림은 축복이다. 하나님의 자녀는 모두 기다리는 사람으로 선택된 아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죄 때문에 이미 망가졌고, 아직 다시 새롭게 되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이미 오셨지만, 나를 영원히 본향으로 데려가려고 아직 다시 오시지는 않았다. 내 죄는 이미 사함받았지만, 나는 아직 죄에서 건짐받지는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다스리시지만, 예수님의 최종적 나라는 아직 임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이미 은혜가 주어졌지만, 그 은혜는 아직 고유의 사역을 다 마치지 않았다. 알다시피 우리가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시작하신 일의 최종 결말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라 소망 가운데 기다린다. 우리는 매일 아침 잠에서 깨어, 다가올 일에 근거해 행동하며, 어떤 일이 다가올지 확실하기에 우리가 하나님 이름으로 수고하는 일이 헛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기다리며 행동한다. 기다리며 일한다. 기다리며 달린다. 기다리며 예배한다.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다가올 은혜에 대한 자신만만한 확신에 근거한 행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