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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

날 준비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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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아이가 태어난 지 일 년이 지났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바로 예방 주사. 의사는 팔에 네 방의 주사를 놓는 동안 아이를 무릎에 앉힌 채 꽉 잡고 있어야 한다고 내게 당부했다.
바늘이 살을 뚫을 때마다 우리 딸은 죽은 자도 깨울 만큼 크게 비명을 질렀다. 딸은 내가 하는 행동이 자신을 사랑함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이유도 이와 같지 않을까? 잠시 고통스러운 주사가 내 딸의 삶을 더 건강하게 만들어 줬던 것처럼, 인생의 고통도 훨씬 더 크고 행복한 영원을 낳는 게 아닐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18, 22)
“비교할 수 없도다.” 바울은 고통이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 게 아니다. 고통은 현실이다. 다만 바울은 너무도 대단한 뭔가가 오고 있어서 우리가 지금 겪는 최악의 고통조차도 그것에 비할 바가 못 된다고 말한 것이다. 현재의 고통을 축소하거나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라는 게 절대 아니다. 단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더욱 키우자는 말이다.
우리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주사를 놓는 의사나 우리의 인내심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스포츠 감독처럼 하나님은 그 미래를 위해 고통으로 그분의 백성을 준비시키신다. 현재 세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은 아니지만 ‘가장 좋은’ 세상을 위해 우리를 준비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세상이다.
하나님의 계획은 단순히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는 게 아니라 천국을 우리 안에 넣어 주는 것이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을 단순히 행복을 위한 곳으로만 본다면 도무지 참기 힘들다. 하지만 훈련과 교정을 위한 곳으로 본다면 그리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