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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은 매우 어린 시절부터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이십 대에는 그가 자살할까 봐 이웃들이 가끔 한두 주씩 자신의 집에 데리고 있을 정도였다.
이십 대와 삼십 대에는 세 번이나 자살을 시도한 뒤로 스스로도 두려워서 주머니칼을 지니고 다니지 않았다.
정규 교육을 1년밖에 받지 않은 변호사였던 링컨은 공직에 출마했다가 수없이 떨어진 전적이 있었다. 결국 대통령이 되었을 때는 시골뜨기요 망신거리라는 조롱을 받았다. 수많은 사람이 그가 죽기를 바랐기 때문에 대통령 취임식 날 그는 도둑고양이처럼 몰래 워싱턴 D.C.로 들어와야 했다.
대통령 초기도 실패로 점철되어 있었다. 그로 인해 사방에서 온갖 악독한 조롱이 날아왔다. 링컨의 장군들은 남북 전쟁 초기에 번번이 패했다. 가장 사랑했던 자녀 윌리가 11세에 세상을 떠나자 링컨은 깊은 충격에 휩싸였다. 남북 전쟁이 끝날 때까지 15~40세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이 목숨을 잃었다. 3천 2백만 명의 국가에서 무려 52만9천 명이 사라진 것이다. 사실상 모든 가정에서 통곡이 터져 나왔다.
그럼에도 그 시기에 링컨이 이룬 개인적 영적 발전은 실로 대단했다. 그는 하나님이 남북 전쟁에서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셨고, 전쟁은 노예제도라는 죄의 결과라고 분명히 말했다. 이에 전 국민에게 9일간의 금식기도를 촉구했다. 전쟁이 끝난 뒤 그는 적들에게 그 어떤 미움이나 복수심도 품지 않았고 항복한 남군 장교와 병사들에게 용서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조슈아 울프 솅크는 저서 《링컨의 우울증》에서 링컨이 자신의 우울증과 실패를 더 큰 목적으로 승화시킨 과정을 자세히 묘사했다. 솅크는 링컨이 나중에 위대한 인물로서 우뚝 솟고 개인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도 고난과 약점 덕분이었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