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월호 보기

2010년 02월

우리를 붙드시는 보이지 않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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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예단에서 그네 타는 사람은 계단을 하나하나 올라가서 단 위에 있는 그네를 잡고 선다. 그러고는 단 위에서 뛰어내려 공중에서 곡예를 한다. 잡아 주는 사람은 그네에 다리를 걸치고 손을 아래로 뻗어 잡아 줄 준비를 한다. 그네 타는 사람이 그네 잡는 손을 놓는 순간, 중요한 진리가 드러난다. 그는 자신을 받쳐 줄 아무런 버팀대도 없이 공중으로 붕 몸을 날린다. 그를 추락사에서 구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심정이 어떨까?
잡아 주는 사람은 시간을 정확하게 재고 있다가 그네 타는 사람이 공중제비를 하고 내려오는 순간에 그의 팔을 손으로 잡아 준다. 그네 타는 사람은 그를 볼 수 없다. 그의 위치에서는 모든 것이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중에서 자신의 팔을 잡아채는 손길은 느낄 수 있다. 그 손이 그를 데리고 단으로 데려갈 때 얼마나, 얼마나 기쁘겠는가!
여기에서 믿음의 문제가 부각된다. 그네 잡은 손을 놓는 것은 신뢰하는 행위다. 곡예단 리더에게 헨리 나우웬이 물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죠?” “비결은 그네 타는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는 것입니다. 잡아 주는 사람이 모든 것을 하지요. 조한테 날아가서 그냥 팔을 뻗고 기다리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것도 안 한다고요?”
“그네 타는 사람은 몸을 날려야 하고 상대는 반드시 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네 타는 사람은 팔을 뻗어서 상대가 자신을 잡아 주려고 기다리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네 타는 사람은 잡아 주는 사람을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손을 놓아야 한다. 그러면서 누구에게 뛰어내릴지 선택해야 한다. 확실한 정도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믿어야겠다는 신념으로 선택해야 한다. 믿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믿음에는 우리가 알아야 할 또 하나의 단면이 있다. 무엇을 믿는지 알아내기가 참으로 어렵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