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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1월

귀환 불능 지점에서 돌아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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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이륙 후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그때는 이미 연료가 부족해 출발지로 돌아가려 해도 돌아갈 수 없는 지점에 있게 된다. 이것을 귀환 불능 지점이라고 한다. 인생이라는 등정에서도 어느 곳이 귀환 불능 지점인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시계추는 한 바퀴 돌아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시계 바늘이 아니라, 흐르는 강물처럼 지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시간 위를 지나고 있다. 한번 가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이기에 우리는 후회 없는 인생을 위해 겸손한 자기반성을 해야 한다.
‘만일 지역사회의 교회가 다 없어진다면, 그 교회의 신자들 외에 교회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을까.’ 밥 로버츠의 『T-라이프』라는 책을 읽다가 맞닥뜨린 도발적인 질문이다. 사실 이 질문은 교회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 했다면 매우 당연한 답을 묻는 우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목회자로서 이런 질문이 답답하고 심지어 거북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는 교회를 유혹하지만, 유혹에 빠진 교회처럼 처절하게 버림받는 경우도 없다. 교회가 세속화되면서 세속적인 사회는 천박한 동료 의식으로 교회를 반길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미 예수님은 2천여 년 전에 “소금이 맛을 잃으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라는 말씀을 통해 세속화된 교회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지를 경고하셨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만 추한 것이 아니다. 세상의 금권이나 권력에 취한 교회는 더 악취를 풍기는 법이다. 교회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금권과 권력에 취했을 때 4세기 교부였던 히에로니무스는 “교회의 벽은 금으로 번쩍인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 문 앞에서 가난한 사람의 모습을 하시고 죽어 가고 있다”라고 한탄했다.
자기반성의 힘은 사색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 역사적으로 대각성 운동은 말씀의 거울에 비춰진 자신의 추한 몰골을 깨닫는 데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