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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의료선교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습니다. 뇌암에 걸린 50대의 남자분이었는데, 뇌 안에 생긴 혹이 뇌를 압박해서 심한 두통을 호소했고 가끔 발작 증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종양이 커서 수술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한국에서는 100원이면 두통약을 살 수 있지만 그곳은 사정이 달랐습니다. 여자가 한 달을 벌어야 비누 한 장을 살 수 있는 나라에서 진통제를 사먹는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필리핀도 의약분업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에 병원에 가서 처방전을 받아야 약을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처방전이 있어도 약을 구입할 수 없는 형편이라서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하루하루 죽음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머리가 차라리 깨졌으면 좋겠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그에게 진통제를 드리고, 우리가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선교사님에게 그 환자의 증상을 듣고 계속해서 약을 부쳐 드렸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약 2~3주, 길면 한 달 정도 더 사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6개월 정도 더 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남긴 마지막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더 살 수 있었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날 위해 기도해주고 계속 약을 부쳐준 선교팀에게 고맙다고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 집 앞뜰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분이 헌납한 땅에 세운 교회가 바로 ‘라굼 제4교회’입니다. 그분이 돌아가신 다음해인 1999년, ‘라굼 제4교회’에서 예배드릴 때 우리 모두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주님이 흘리신 피로 우리가 살았고, 수많은 순교자들이 뿌린 복음의 씨앗으로 우리가 복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한 영혼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그 영혼이 다른 영혼들을 위해 감사함으로 드린 땅 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이 교회를 통해 구원받을 수많은 영혼이 있다고 생각하니 그저 감사할 뿐이었습니다.